단기 실적과 지속가능 성장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투자팀장 강혁수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테크스타트업 '퓨처윙스'의 분기별 실적보고서였다. "이게 말이 되나..." 혁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 시리즈 A 투자를 결정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퓨처윙스는 AI 기반 교육 플랫폼 스타트업이었다. 공동창업자인 CEO 박민재와 CTO 서지원은 스탠포드와 MIT 출신으로, 개성은 달랐지만 교육의 미래를 바꾸겠다는 비전을 공유했다. 특히 지원의 뛰어난 기술력과 통찰력은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있었다.
"민재 씨, 이번 분기도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네요." 혁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 더 이상 변명은 결과를 바꾸지 못해요. 이사회에서도 우려가 많습니다."
민재는 책상 위 거위 모양 피규어를 만지작거렸다. 출시 초기 첫 수익이 났을 때 지원이 선물한 거였다. "기적의 거위"라며 농담 삼아 건넸던 그 선물이, 지금은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6개월 전부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시리즈 B 투자 유치 후, 투자자들은 더 빠른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요구했다. 신규 기능 출시 일정은 빨라졌고, 개발팀은 밤샘을 거듭했다. 지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품 안정성 테스트는 최소화됐다.
"또 버그 리포트예요." 지원이 피로한 얼굴로 민재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용자 이탈도 심각해요. 이러다가..." "미안해. 잠깐만 견뎌줘. 이번 분기만 잘 버티면..." 민재의 말끝이 흐려졌다.
다음 날 아침, 지원이 면담을 요청했다. "관련 업계에서 좋은 제안이 들어왔어요.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민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함께 시작했는데... 내가 많이 부족했나?" "아니요. 민재 씨는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우리가 꿈꾸던 방향과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이 너무 달라졌어요."
지원은 떠나기 전, 마지막 경영회의에서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했다. 무리한 일정과 과도한 단기 성과 압박이 제품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결국 회사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경고였다. 회의실을 나서며 지원은 책상 위 거위 피규어를 잠시 바라봤다.
"거위는 죽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죽이고 있어요."
지원의 퇴사는 조직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개발팀 내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했고, 주간 회의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채용시장에서는 "퓨처윙스의 핵심 개발자들을 데려오라"는 헤드헌터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결국 3개월 만에 시니어 개발자 다섯 명이 추가로 퇴사를 선택했다.
새로운 버전 출시는 연기됐고, 경쟁사들은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갔다. 투자자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강 팀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민재가 입을 열었다. "처음엔 저도 몰랐어요. 매출, 성장률, 지표... 숫자에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 무엇인지를..."
혁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도 이 업계에서 10년을 보내며 비슷한 패턴을 수없이 봐왔다. 단기 실적 압박이 혁신기업들을 어떻게 갈아넣는지. 하지만 그 또한 시스템의 일부였고, 그가 가진 답은 현실의 냉혹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CTO를 영입하면..." "아뇨." 민재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더 이상 땜질식 처방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해요." 민재는 서랍에서 한 장의 문서를 꺼냈다. 퓨처윙스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었다. "우리는 단기 성과에 집중하다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어떤 방향으로요?"
"지원이 늘 강조했던 겁니다. 거위는 황금알을 낳지만, 그건 거위가 건강할 때만 가능하다는 걸요."
현대 기업 경영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단기 실적주의(Short-termism)와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딜레마를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레베카 헨더슨 교수는 그의 저서 "Reimagining Capitalism"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단기 실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기업의 면역체계를 파괴한다." 마치 우리 이야기의 거위처럼 말이죠.
여기서 잠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왜 수많은 경영자들이 이 함정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할까요?
맥킨지의 2023년 보고서는 흥미로운 통계를 보여줍니다. 글로벌 기업 CEO들의 78%가 단기 실적주의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들 중 63%는 여전히 분기별 실적 압박에 굴복한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시스템적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합니다.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시리즈 B 이후 스타트업들의 가장 큰 실패 요인 중 하나가 '과도한 성장 강박'이었습니다. 마치 거위에게 더 많은 황금알을 강요하다가 결국 거위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죠.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구글의 전 인사 책임자 라즐로 복은 "People Strategy"에서 세 가지 핵심을 제시합니다:
1. 인재 자본의 재정의: 인재는 비용이 아닌 장기 투자 대상입니다.
2. 심리적 안정감의 보장: 혁신은 안정된 토양에서만 자랍니다.
3. 가치 정렬: 조직의 미션과 개인의 성장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우리 스토리에서 CTO 서지원이 말한 "거위는 죽지 않았지만, 우리가 죽이고 있다"는 경고는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합니다. 조직의 근간이 되는 핵심 가치와 인재들이 소진되어가는 현실을요.
결국 이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자주 강조했던 "Day 1 Company" 철학은 이런 맥락에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실적보다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추구하되, 그 과정에서 조직의 핵심 자산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관점입니다. 거위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황금알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요. 그것은 아마도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다시 쓰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성장에는 적절한 속도가 있다. 식물을 심었다고 매일 뿌리를 뽑아서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 피터 드러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