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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물 밖 세상을 거부한 개구리

변화를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by 황코치
0_1.jpg 우물 밖 세상을 거부한 개구리

깊은 우물 속, 한 늙은 개구리가 살았습니다. 그는 우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우물 속 세상이 전부라고 믿으며 살아왔죠.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뒤 한 어린 개구리가 우물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늙은 개구리는 처음 보는 낯선 개구리가 신기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죠? 저는 큰 호수에서 살다가 폭풍우에 휩쓸려 이곳까지 왔어요."


"호수라고? 그게 뭐지?"

늙은 개구리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호수는 이 우물보다 수천 배는 더 넓은 물웅덩이예요. 수련도 피어있고, 물고기들도 헤엄치고, 잠자리도 날아다니죠."


늙은 개구리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우물이 세상의 전부란다. 네가 본 것은 아마도 꿈이었을 거야."


어린 개구리는 답답했지만, 늙은 개구리를 설득하려 노력했습니다.

"우물 밖으로 나와보세요. 제가 호수로 가는 길을 알려드릴게요. 거기서는 달빛에 반짝이는 호수 위로 반딧불이들이 춤추는 것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늙은 개구리는 완고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80번의 봄을 보냈다. 한 번도 문제된 적 없어. 넌 아직 어려서 허황된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심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우물의 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죠. 어린 개구리는 초조해졌습니다.


"이러다가 물이 마르면 우린 모두 죽어요! 얼른 나가요!"


하지만 늙은 개구리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습니다.

"걱정 마라. 80년 동안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비가 오면 다시 물이 차올랐단다."


어린 개구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늙은 개구리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죠. 결국 혼자 우물을 빠져나왔습니다.


얼마 후, 우물은 완전히 말라버렸습니다. 늙은 개구리는 마지막 순간에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평생 믿어왔던 확신이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몇 달 뒤, 어린 개구리는 호수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끔 그 우물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힘이구나."




우리는 흔히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던지는 함의는 단순한 비난을 넘어서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은 그의 저서 'Mindset: The New Psychology of Success'에서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과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야기 속 늙은 개구리는 전형적인 고정 마인드셋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80년간의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벽이 된 것이죠.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도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동굴 속 죄수들이 그림자를 실재라고 믿었듯, 우리도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전부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이런 착각이 단순한 무지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보와 기회를 거부하는 적극적 방어기제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왜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설명합니다. 익숙한 환경은 불완전하더라도 예측 가능성과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객관적으로 더 나은 선택지가 있어도 현재 상태를 고수하려 합니다.


이 우화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첫째, 경험은 양날의 검입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전문성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조직심리학자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는 이를 '숙련의 함정(Competency Trap)'이라고 불렀습니다.


둘째, 안전지대(Comfort Zone)는 때로 위험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 개구리가 지적했듯, 변화하는 환경에서 고정된 관점을 고수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이를 '성공의 역설'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째, 진정한 지혜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뿐이다"라는 겸손한 인식이야말로 성장의 출발점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 잡힌 시각'입니다.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존중하되,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 우물 속 깊이와 우물 밖 넓이를 모두 아우르는 통찰력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당신이 서 있는 작은 원이 당신의 우주라고 생각하지 마라. 더 큰 원을 그려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독일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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