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코치 Apr 01. 2016

나는 왜 쓰는가?

1년 안에 책쓰기 프로젝트를 앞두고...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언제나처럼 녹색창을 열고 ‘나는 왜 쓰는가’라는 키워드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검색결과 제일 상단에는 동물농장, 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저서와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국내 서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다수의 블로그와 카페글에 동일한 화두로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녹색창’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다. 단지 검색만 해봤지 의지를 가지고 관련 콘텐츠를 읽지 않았다. 이유는 자명하다. 조지 오웰의, 한창훈의, 여러 블로거들의 생각들을 내 것인양 그럴 듯하게 포장할수 있는 내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PR업무를 하면서 나의 ‘글쓰기 행위’ 프로세스는 다양한 소재와는 상관없이 대체로 일관적이었다. 먼저 고객사의제품/서비스/기업경영/기업임직원 정보 등을 확보하면, 포탈 검색을 통해 이와 유사한 동종업체의 기사 등을 참고한다. 이런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보도자료를 구성한다. 담당자 코멘트도 언제나 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관용적인 용어들로 고르면 무난하다. 뉴스기사를 염두로 작성해야 하니 너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표현해야 한다. 이종격투기 홍보부터 청국장 제조기, 수입자동차, 정부 공공기관, 글로벌 IT기업 등 국내외 다수의 고객사 PR업무를 진행해왔지만 ‘글 쓰는’ 프로세스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고문도 마찬가지다. ‘고스트 라이터(유령작가)’로 다양한 기업의 CEO로 변신했었다. 어떤 때는 한중FTA를 주의깊게 바라보는 정부 관계자 입장을 대변하다가, 때론 소프트웨어 저작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외국계 S/W 기업 CEO로 변신했다.간혹 내 성별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소재는 다양했지만 프로세스는 얼추 위와 동일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말은 적어도 PR일을 하는데 있어 100% 동의한다. 글쓰기가 주된 작업 중 하나인 PR업종을 택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업무에 최적화된 ‘기능적 글쓰기’ 능력을 쌓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질문해본다. ‘나는 왜 쓰는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그간 누군가를 대변하기 위해, 내 생각을 담지 않고 그들의 생각을 담은 글을 써내려 왔다면, 이제 내가 ‘나됨’을 글을 통해 온전하게 드러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겐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여지를 던져주고 싶다. 또한, 이를 통해 ‘황상현’이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지 글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고 싶다. 


한편으로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기도라는 행위’와 유사성이 있다. 절대자에게 가식없이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점,  어떠한 목적이 이뤄지기 위해 요청하는 바가 명확하다는 점, 누군가 들어주는 청자가 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가장 큰 공통점은 둘다 꾸준히 하기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거다.


또, 글을 쓰는 건 치료이자 탈출구이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 건 태고 이래 변함없는 진리라고 확신한다. 생물이든 동물이든 하물며 고스트 바둑왕 ‘알파고’든 결국 아웃풋을 위해 인풋을 쌓는다. 인풋은 잔뜩 쌓였는데 아웃풋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다. 마치 마개가 막힌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나가거나 명절음식을 잔뜩 먹어 괴로운데 헛방귀만 나오는 경우라고나 할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린 다양하고 많은 인풋(스트레스를 포함한)을 손가락 놀림을 통해 시원하게 뱉어낸다. 물론 뱉어내는 정도가 지나쳐 자기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정말 더러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이젠 그렇게 치부하기엔 포탈 사이트에 악플을 다는 익명의 ‘소화불량자’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적어도 나에겐 ‘글쓰기’는 치료이자, 탈출구이다.    


글을 쓰는 건 전문성을 확보하는 행위이다. ‘연필을 잘 깎는 방법’에 대한 책을 낸 저자가 소개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실제 누구보다 연필을 잘 깎는 재주를 갖고 있을지언정 이게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려면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를 보다 강화해주고, 보편타당하게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글’, '책'이다. 개인적으로“이제 글을 쓰고 싶다”에서 “글을 써야 한다”로 바뀌게 된 계기로 이 점이 가장 크겠다.


끝으로 왜 나는 글을 쓰는가?, 쓰고 싶은가?, 쓰려고 노력하는가?라고 다시 되물어본다면, 뭔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류의 자산을 티끌이라도 하나 더 보태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속도는 나무늘보가 슈퍼맨으로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느리게 발전해왔다. 물리학자 뉴턴은 본인의 업적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거인이 딛고 있는 흙 역시 50억년의 시간이 쌓아온 거대한 티끌의 모습이 아닌가?


부족하겠지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바램이 글을 쓰려는 동기이다. 

결국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오히려 ‘나는 왜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는가?’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이렇게 글을 써야할 이유들이 자명한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정글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