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대본 쓰기
강물이는 글을 쓰고 있다. 책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의 작가 스즈키 루리카의 나이가 강물이를 자극했다. 한 번 써볼까?’라는 일시적인 도전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일회성의 시도는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다. 강물이가 꾸준히 쓰도록 독려를 해준 것은 엄마인 나의 영향과 잔소리는 아니고 훌륭한 작가, 그들의 책, 그리고 원고료(이런저런 글을 쓰면 엄마인 내가 주는 고료)이다.
‘한국 작가회의’에서 ‘작은 서점 지원사업’을 한다. 말 그대로 몇몇 도시의 작은 서점을 선정하여 상주작가를 두고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도움을 주는 사업이다. 내가 살고 있는 군산에는 ‘한길문고’, ‘우리문고’, ‘예스트서점’ 이렇게 세 곳의 서점이 해당된다.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참가한 것들은 ‘작가 초청 강연회’와 ‘글쓰기 강연’이다. 나는 ‘글쓰기 강연’으로 이 사업과 첫 인연을 맺었다. 군산에 살고 있는 배지영 작가의 가르침을 받아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일상을 소재로 쓰는 글 속에는 아이들(강물이와 마이산)이 빠질 수 없다. 특히 강물이는 자신의 말, 행동, 생각이 녹아있는 글에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은 내가 쓴 글뿐만 아니라 내가 읽는 책, 내가 참가하는 강연으로 확대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독서 단계를 올려주고 싶었던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그릿」,「어린이를 위한 그릿」과 「에너지 버스」,「어린이를 위한 에너지 버스」처럼 어른용, 아이용으로 나온 책들을 먼저 읽어보도록 했다.
마이산 : 엄마랑 같은 책을 읽으니까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아.
물론 나도 같이 읽는다. 아이는 엄마와 같은 책을 읽는다는 자부심, 나는 아이에게 해박한 지식을 방출할 수 있는 동질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같은 작가의 아이용 책을 구해주는 것이다. 내가 김탁환 작가의 책「이토록 고고한 연애」를 읽을 때, 아이들 역시 김탁환 작가의 책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를 읽는다.
마지막으로 아이는 내가 읽고 있는 책 중 제목이 재밌고 특이한 걸 좋아한다. 최민석 작가의 책「꽈배기의 맛」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강물 : 엄마, 이 책「꽈배기의 맛」재밌어. 뭔가 비꼬는 듯하는 이야기인 거 같은데 나쁜 말이 아니야.
나 : 그 작가 강연 딱 1번 남았는데. 가볼래?
강물이와 마이산은 박효미(동화작가)의 강연뿐 아니라 문경수, 김동식, 김탁환 등 어른 책의 작가 강연에도 참가했다. 아이들이 읽은 책과 나에게 전해 들은 책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그들을 강연장으로 이끌었다. 이 경험들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다.
‘특정 시기에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해’라는 생각, ‘아이는 아이 책을 읽어야지’라는 경계가 허물어졌다. 아이는 아이 나름의 필터를 장착하고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을 받아들인다. 어른인 나는 내 기준을 아이에게 적용하고 있었음을 후회하며 반성했다.
아이가 쓰는 글은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 글보다 영상을 먼저 접하고 3D 게임과 가상현실, 증강현실로 만들어진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에 이런 상상력이 더해지면 참신한 글이 된다.
강물이는 글로 쓰기도 하지만 입으로 말하는 걸 더 좋아한다. 아이는 좋아하는 걸 자주 하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도록 내 시간(책 읽고 영화 보고 싶은 시간)을 기꺼이 내준다. 내가 도와주는 건 이야기를 들어주고 “글로도 써 봐. 그래야 이야기가 남아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한마디가 전부이다.
연극 <벌거벗은 여왕님>은 그렇게 탄생했다. 강물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2학기가 끝날 무렵에 학급 발표회를 한다. 관심사가 같은 아이들이 작은 무리를 만들어 공연 준비를 한다. 물론 스스로 한다. 어른들(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도움은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다. 강물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각색하여 <벌거벗은 여왕님>이란 연극을 하고 싶다며 줄거리를 이야기해줬다. 어른인 내가 듣기에는 유치한 면이 없진 않지만, 또래 아이들은 재밌어한다. 이 연극에도 게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판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강물이는 국어 수업에서 희곡의 구성을 공부했고, 교과서를 참조해서 연극 대본을 썼다. 아이는 혼자서 교과서를 떠올리고 책에서 도움을 받았다. 연극 대본을 써 본 것은 강물이에게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완성한 대본을 내가 타이핑해주었다. A4용지에 11포인트로 작성된 연극 대본은 손 글씨로 썼던 것보다 양이 적었다. 강물이는 처음엔 실망했지만 동시에 다른 작가들의 책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깨달았다.
아이의 연극은 성공적이었다. 스스로 쓴 대본, 주인공 배역까지 강물이에게 5학년의 발표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아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생각과 글을 창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