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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BAND Apr 21. 2020

'끼'의 이해 part 1.

완벽 또는 완성을 향해 가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좋은 말이 반대 의미로도 사용되는 말이 ‘끼’이다.

사람들이 ‘끼’를 화제 삼을 때, ‘끼’란 비범한 재능이거나 바람끼, 색끼처럼 상식을 넘어선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사고의 다양성을 하나로 말하기 어렵듯이, 끼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끼'란 무엇인가?



끼란 자신에게만 머물렀을 때는 재능(talent)에 그치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면 ‘하늘이 내린 선물’, 은사(gift)가 된다.


‘끼’는 완벽한 제어가 어렵다.

‘끼’는 ‘마음의 에너지’이며 흐름과 방향성을 가진 힘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힘을 크게 파스칼, 벡터로 구분하는데, 방향성을 가진 힘을 벡터(vector)라고 한다. ‘끼’는 이면에서 벡터(vector)적 성향의 힘이다.



‘끼’는 형태로 표현해 보면,  ‘불’과 ‘얼음’ 같은 상극의 에너지이다.

공존하기 어려운 이 두 에너지가 한 몸처럼 사람의 마음에 담겨있다. 그래서 ‘끼’를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면 불처럼 스스로를 태우거나 데인 상처를 만들고, 얼음처럼 그 끝을 모를 공허와 혼돈 속에 가두어 꼼짝달싹 못하게도 한다.


‘끼’를 가진 사람들은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며,

삶의 성취 욕구가 강렬한 사람들이다.


‘끼’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양식들이 여러 모양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다. 작가는 글로, 미술가는 그림이나 조형물로, 뮤지션은 연주와 노래로, 정치가는 사람을 움직이는 연설이나 공약, 정책으로, 경영인은 비전에 따른 사업적 성취라는 실물가치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식들이 주는 메시지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도도한 외침’이거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란 ‘치유의 메시지’로 대개 정리된다.


완벽을 향해가는 아티스트(사람)

 vs 완성을 향해가는 아티스트(사람)


끼를 가진 사람을 잘 표현한 말이 아티스트(artist)이다.



이 글에서는 끼를 가진 사람을 ‘아티스트’라 한다.


‘아티스트’에게 삶이란 ‘아트웍의 발자취’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발자국이 많거나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남기는 족적은 깊고도 넓다. 아티스트의 꿈이 실현되는 장소는 무대이다. 이들에게 무대(stage)란 자신의 존재가치를 선언하는 곳이자 창작물의 출생을 알려 기념하는 곳이다.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곳이며,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모두가 ‘소망의 항구’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힘든 바다 폭풍이나 여름 장맛비 같은 삶의 복병을 만나기 때문이다. 힘겹게 헤쳐 나가 보지만 한 치 앞을 나아갈 수 없기도 하다. 매일 같이 밀물과 썰물을 오가는 파도에 해안의 모래톱의 모양이 변해가듯이 고약하고 변덕스러운 자신과의 싸움에 속절없이 무너질 때도 있다.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글, 그림, 음악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종종 나눌 때가 있다. 대개 아티스트의 작품(활동)을 의미하는 ‘아트웍(artwork)’에 대한 견해가 두 갈래로 나뉘며,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아트웍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크다. 한 편은 아티스트의 작품은 모름지기 ‘완벽’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편은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이다.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의 상여 전에, ‘완벽’이란 세상에 보기 드문 고귀한(완) 구슬(벽)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에서 그 뜻이 유래되었다. 완벽은 ‘티나 흠집 하나 없음(flawless)’, ‘100% 완전함(perfection)’,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처럼 원죄 없음(immaculate)’처럼 바늘 하나 먼지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이상적으로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완벽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구조적으로 가변성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다. 완벽만을 추구하면 잘한다고 하는 것이, 스스로를 ‘벽(wall)’에 가두거나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귀한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을 나름 신경 써 만들었지만 정작 손님의 기호에 맞지 않아 불편을 끼치는 경우처럼 말이다.



‘완성’은 ‘완전히 다 이룸’이란 뜻이다, 무엇인가 이루어 나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큰 의미가 있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 도형이 되며 도형의 면들이 모여 입체가 되듯이 과정의 합으로서 성취를 지향한다. 완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설프고 부족하며  결점이나 결핍 투성이인 불완전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추구하는 가치, 아트웍이란 스스로의 한계와 결핍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며 이를 삶의 기쁨으로 여긴다. 또한 자신의 삶 자체가 걸작품(masterpiece)이 되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그 연장선에서의 아트웍은 반드시 정복해야 할 산의 정상이 아니다. 삶의 여정 속에 우연처럼 만나 필연이 되었음을 알게 되는 소명이자 사명이며, 깨달음을 통해서만 오르게 되는 계단이다. 이들의 이러한 시각은 열린 사고를 가능하게 해 자신과 타인에게도 매임 없는 자유를 선사한다.


전공자나 비전공자나, 아마추어나 프로나 작품 활동 시, 완벽 또는 완성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특히 사람들과 만남의 축복에 대한 의미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렇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전이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새로움으로 전이된다. 익숙함이 당연함 또는 새로움으로 인식되는 이 분기점에서 만남의 의미가 희석되거나 소멸되며 아니면 새로운 단계로 전이된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인정에 목마르며 매이게 되어있다. 자족을 몰라 이미 가진 것 마저 헤아릴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점점 매력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이와 달리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빈틈이 부끄럽지 않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매이지 않기에 자유인이 된다. 빈틈이 타인의 공감과 배려가 머물 공간이 되고, 어설픔이 타인에게 삶의 여유를 주는 유머가 된다. 이들의 삶은 서로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눌 넉넉한 여백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 삶은 화해와 평화를 오가며 미소란 삶의 그늘을 주변에 제공한다.


익숙함이 당연함이 되지 않으려면 자기 부인,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양보와 배려의 삶을 사는 것인데 한 마디로 자기주장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이 당연함이나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이 분기점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크게 엇갈린다. 대개는 십중팔구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러나 나름 셈은 잘했는지 몰라도 정작 손해를 이미 보았거나 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삶의 목표와 선택이 확고한 것은 좋지만 독선이나 극단에 빠지진 말아야 한다. 목표가 확고하다는 것은 동기 역시 강하다는 것이다.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 가족, 친구들이 불가피하게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확실한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의 문제를 낳았음을 알아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보라. 자만에 빠져 안하무인이 되어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와 달리 성공의 의미를 깨닫고 타인과 나눔의 삶을 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수는 소수이다.


아티스트는 자의든 타의든 타인의 시선을 늘 받고 사는 사람이다. 삶이란 무대에서 그 누구보다 성공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살필 필요가 있다. 흔히 사람들이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부를 얻었는지 몰라도 명예를 얻은 것은 아니며, 명예를 얻었다고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며, 명성을 얻었다고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얻지 못했다면, 후대에게 남겨줄 믿음의 유산이 없는 허무하며 빈궁한 삶이었을 뿐이다.



아티스트는 그 누구보다 ‘신뢰’, ‘확신’처럼 ‘믿음’이 무엇인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마음에 여백이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믿음은 그 누군가의 믿을 만하며, 사랑이 담긴 말을 듣게 될 때 생겨난다. 그래서 믿음에 근거한 대화만이 사람이 지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화 속에 깨닫게 되는 ‘앎’의 경험이 없다면, 타인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져도 그것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도, 나아가 세상도 변화를 줄 수 없다.


아티스트의 ‘끼’는 자신에게만 머문 재능을 넘어서,
 타인을 향한 ‘선물(gift)’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행복이란 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 내 곁에 ‘함께(with)’란 함박미소로 자리해 있다는 것을 서로가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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