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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Apr 17. 2023

[수필] 밴쿠버 아리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발견된 후7년간의 식민지 전쟁을 겪고 영국의 승리 후 식민 상태로 있다가 캐나다 연방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다. 그리고 많은 유럽인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캐나다 원주민들에게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캐나다 땅을 점령했던 백인들은, 문명을 교육한다는 이유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와 격리해 “기숙 학교”에 모아 그곳에서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없애기 시작하였다. 더 큰 문제는 성직자라는 타이틀로 둔갑한 일부 범죄자들이 기숙학교를 관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원주민들을 감정적, 신체적, 그리고 성적으로 학대하였다.


지난 2015년,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 기숙학교 진실화해위원회”라는 것을 열어, 그 당시 학대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였고, 현재 캐나다의 총리인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원주민 청소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겪었던 그 당시의 비극은, 세대를 거쳐 대물려 오면서 또 다른 비극을 낳게 되었다.


감정적, 신체적, 그리고 성적인 학대의 환경에서 자라 온 그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것은 동일한 감정적, 신체적, 성적인 학대였다. 무분별한 성관계와 가족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문화로 인해, 근친상간과 강간등으로 인해 아이들이 태어나고 출생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캐나다의 원주민들은 국가가 지정해준 구역에서 거주하게 되면, 경제적 지원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정책은 비극의 대물림에 더해져서 마약, 도박, 게임 중독, 자살 충동과 무분별한 성적 쾌락의 유혹 속에서 살아가게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님이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3년 전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내가 봉사하고 있는 선교 단체도 원주민 청소년들을 위해 세워진 단체다. 이 단체는 해마다 두 차례씩 원주민 청소년 캠프를 열어서 밴쿠버 서부에 있는 여러 원주민 마을에서 청소년들을 불러 모아서 3박 4일 동안 함께 지낸다.


이 선교 단체가 가지고 있는 비전은 원주민 청소년들이 비전을 가지게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자신들의 마을에서 리더가 되어 다른 원주민들을 돕는 자들로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캠프를 통해서 리더로 세워질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선발하여 매년 7월 한국에 2주 동안 비전트립을 보낸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한국에 보내는 이유가 있다. 100년전 우리 한민족이 겪은 역사가 캐나다 원주민들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은 언어와 문화를 말살당했고, 많은 사람이 태평양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이후 남북전쟁이라는 더 큰 비극을 겪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 속에서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이 되었다.


원주민 청소년들은 비전트립 기간에 판문점,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등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고,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도 방문한다. 또한 한국인 가정에서 홈스테이하면서 정상적인 가정을 경험하고, 한국의 중고등 학생들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회를 가진다.


비전트립을 통해서 우리가 원주민 청소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전쟁과 환란의 시대를 겪었지만, 학교가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기업이 세워지면서, 많은 리더를 배출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19년전 캐나다로 유학을 왔을때, 나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동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학교에 다녔다. 어느 날 인근 도시의 고등학교 합주부가 우리 학교에서 공연을 하였는데, 어느 한 곡을 연주하기 전, 지휘자가 연주할 곡에 관해서 설명하였다. 백인 지휘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곡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바이올린 소리에 나는 소름이 돋고 말았다. 백인 합주 밴드의 연주 속에서 우리 전통 민요인 “아리랑”이 흘러나온 것이다.


어디에서 누가 처음 시작한 지도 모르는 우리의 노래 아리랑은, 한국인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을 가진 노래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 민요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공통적인 반복 여음 후각 지방마다 또 부르는 사람마다 그들이 감정의 표현 된 사설이 붙어서 불렸다.


아리랑의 여음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여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라며 사설을 붙여 노래한 여인도 그 당시 자신의 감정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여음 앞에 맡기어 자신의 희로애락을 표현하였다.


아리랑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며 용기를 얻었기 때문일까? 우리 한민족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과 기근을 겪어오면서도 절대 부러지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 강함을 보였고, 아리랑은 그런 우리 민족의 얼이고 정체성이 되었다.


우리가 밴쿠버에서 원주민들을 향해 부르는 아리랑도 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의 여음이 원주민 청소년들의 마음에 전해져 그들이 삶에 용기를 얻고 꿈을 가지는 사설이 붙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밴쿠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흩어져 황폐한 땅에서 부르는 한민족의 아리랑이, 그들이 돕는 손길이 전해지는 모든 민족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이 주기를 소망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우리의 노래가 멈추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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