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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귤 Nov 28. 2018

배우 류아벨이 영화 <샘>에 대하여

 ready-made love 레디메이드러브: 발견하는 아름다움


안녕하세요. 배우 류아벨입니다. 3년 전에 찍은 영화 <샘>이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봉을 맞이하여 여러분들께 릴레이로 글을 연재 중입니다. 감독님과 준영 배우가 이미 촬영 현장 이야기를 해서, 저까지 현장 얘기를 하면 지루해 하 실 것 같아 더 지루한 얘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영화를 이제 곧 보실 관객분들, 이미 보신 관객분들께 알고 보면 조금 더 재밌어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ready-made love 레디메이드 러브 : 발견하는 아름다움



마르쉘 뒤샹 <샘>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대 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사상으로 레디메이드 Ready-made라는 용어와 개념을 정착(확립) 시켰습니다. 

뒤샹의 작품은 그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였고, 이로 인해 뒤샹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영화는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레디메이드는 개인 취미의 문제이다. 발견된 오브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른바 발견된 오브제가 아름다운 것인가 특이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기호인 것이다. 기성품의 선택은 미적인 즐거움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선택은 시각적인 무관심에 기초한 것이다.”.    -마르쉘 뒤샹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면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 보다 ‘나만이 부여할 수 있는 스토리 텔링이나 의미’에 더 많은 의중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를 처음 끌어올린 것이 마르쉘 뒤샹의 ‘샘’입니다. 그는 뉴욕 공중화장실에 납품하는 남자 소변기 하나를 가지고 와 사인을 하고 <샘>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감독님은 제목부터 대놓고 여기서 영감을 가지고 온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마두상의 이름은 마르쉘 뒤샹에서 가지고 왔고 마두상은 감독이 많이 투영된 인물입니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황규일 감독님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어두운 생각들 보다,) 내면에 동화 같은 순수함을 (더) 많이 가지고(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https://vimeo.com/ondemand/aniseeddeaf   (황규일,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링크)

요즘 세상에 이런 인물이 어디있어? 라고 할 만큼 때가 안 타는 마두상의 선함은 감독이 생각하는 자신의 가장 동화 같은 모습입니다.


 그는 안면인식 장애로, 시각적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두상은 (어린 왕자를 읽으며)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마음으로 첫사랑을 찾으러 서울로 상경합니다. 

마두상을 연기한 최준영 배우는 이런 동화 같은 모습을 현실에 있는 인물로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배우였습니다. 준영이는 수줍은 미소와 훌륭한 이해력, 소화력을 가진 배우 입니다.(진지함과 순수함?) 



영화에서 러닝 타임 내내 찾아다니는 것은 ‘샘’입니다. 여러 중첩적인 의미가 있는 ‘샘’은 마두상의 첫사랑이자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녀의 이름이고, 그의 인생에서 그녀가 가지는 의미일 것입니다. 

두상이는 타인의 얼굴을 알아보지(인식) 못하지만, 그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의 직감? 육감으로 그녀를 찾을 수 있다고 맹신합니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샘’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활한 바다나 드넓은 강처럼, 인생 전체를 걸 만큼의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찾습니다. 어쩌면 근처에 있지만 발견하지 못한 ‘샘’


 우리는 언젠가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무언가에서 평소와는 다른 (어떤)것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 겨울이 지나고 새삼스레 보이는 도시의 꽃 같은 것들 이랄까요?.


 사람도 사랑도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적에는 지나가는 사람이었다가, 늘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가, 언젠가 문득 - 지나가는 것을, 그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저 사람이었다가 내가 무언가를 발견할 때 그 사람은 내게 특별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가도, 내가 사랑을 발견했을 때 또는 사랑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것은 사랑이 되기도 하지요.


 그 발견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내가 알 수 없는 때에 이미 시작됐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보이진 않지만 아련하고 또렷이 느끼고 있던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 어린 왕자 이야기처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시작된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은 궁핍한 현실로 이어집니다. 

따뜻했던 기억이긴 하지만, 첫사랑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이 정말 현실에 있을까요? 

제가 그러지 못해서인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놀리면서도 응원해주고 싶네요. 

(너는 바보야. 첫사랑 밖에 모르는 사랑 바보)


 서울로 상경한 두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들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지나가다가, 일을 하다가, 잠을 자다가, 이 정체 모를 여자들은 어디선가 튀어나옵니다. 그녀들 덕분에 두상이는 현실을 직시 하기도, 일상이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두상에게 그녀들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얼굴이라 알아보지도 못하지만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변주를 과하게 주기보다 오히려 두상에게 기성품(?)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배우로서 저는, 그녀들이 어떻게 두상과 관객들에게 모호함을 줄 수 있을지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엔 처음에 감독님이 처음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던 밤을 생각했습니다. 마르쉘 뒤샹의 <샘> 이야기를 한참 했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공중 화장실에 가서 변기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장소와 *시간과 *경우에 따라 같은 사물이나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등등의 것들이었죠.

그리고 감독님이 저의 어떤 면을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며 감독님과의 추억을 최대한 끌어 모아, 그 기억들을 레퍼런스로 인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글이 올라가는 날은 영화 <샘> 이 개봉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느낌을 가지실 지도 궁금하고요.

이 글은 영화를 만든 저의 생각이며 느낌입니다. 여러분의 감상에 해가 되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P.S

제가 이 글을 쓰다가 오랜만에 둘러본 저의 예전 자료들 속에서 이 사진을 찾았습니다. 

스무 살 때의 저와 준영이가 서울예대 사진과 졸업 사진의 모델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여기도 선유도 공원이었어요. 

신기하게도 거의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또다시 그곳에서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이것 또한 오랜만에 발견한 아름다움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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