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65번 시 중
mocalemon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벤치 밑,
바람 같은 소리들이 잎사귀를 비집고 지나간다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는
얇고도 긴 뱀 한 마리,
구불구불 희미한 웃음과
무표정 사이를 꿈틀대며 스쳐간다
네 혀끝에서 비늘 같은 단어 하나
툭, 떨어져 미끄러지면
발음의 잔해 속에
마음은 오래된 굴을 판다
너는 말을 고르다가 자주 놓쳤지
긴장된 순간에 허물을 벗고
슬며시 빠져나간 낱말들
그 자리에 발가벗은 말 하나,
우리 사이에 꽂혀 있다
말끝에 닿지 못하는 지점
수수께끼 같은 틈을 남긴 채,
뱀처럼 미끄러진 말들이
서로를 물고 또 삼키지
어느덧 돌아가지 못한 경계에서
언제든 말을 잇고자 하든가
다시 기다리든가
완벽하게 돌아서든가
낱말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단어로 어절을 만들고 문장을 엮어낸다. 낱개의 낱말들이 서로 얽히고 풀리며 대화라는 유기체를 살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낱말의 본질을 깊이 생각할 기회를 우리는 거의 갖지 않는다.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은 과연 온전히 서로를 잇는 다리일까, 아니면 미끄러지는 뱀처럼 우리 사이에 간극을 남기고 사라지는 걸까. 파블로 네루다는 <질문의 책> 65번 시 중에서 “낱말은 때때로 뱀처럼 미끄러질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언어적 궁금증을 넘어서, 인간관계의 복잡한 실타래와 삶의 미묘한 순간들을 붙잡게 한다.
그림자도 잡아먹는 한여름 정오, 강남 대로에서 친구에게 들은 한 마디가 불쑥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낱말은 깊숙이 파고들어, 이미 어두운 굴이 여러 개 나 있는 내 마음을 휘젓고 갔다. 마치 오래 쌓인 둑이 무너지듯, 그 말은 친구가 넘었던 경계와 선을 넘어 아프게 몰려오는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밀함과 서운함을 지닌 채 만남을 이어간다. 예전 같지 않은 기분이나 말로 풀리지 않는 감정이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네루다에게 답변하는 <무심코> 시 속에서는 두 사람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의 대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뱀처럼 느껴진다. 뱀은 얇고 긴 존재로, 그 몸짓은 구불구불 미끄러지며 길을 만든다. 우리의 말도 이와 닮았다.
대화는 늘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희미한 웃음과 무표정, 무감각, 무취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뜻밖의 방향으로 굴절된다. 우리의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정확히 닿지 못할 때, 낱말은 허공에서 길을 잃은 채 방황한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오래된 굴을 파며 의미의 잔해 속에 갇히기도 한다. 친구의 마음에도 나의 무심코 한 말이 뱀처럼 미끄러져 갔을지도 모른다.
되짚어보면, 말의 미끄러짐은 때때로 사람을 실족하게 만든다. 긴장된 순간에 혀끝에서 미끄러진 말 하나가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거나 다치게 한다. 말이란 실체가 없기에 더욱 위험하다. 그것은 허물 벗은 뱀처럼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 스며든다.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말했지만, 그 말이 상대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가는지 알지 못한다. 말끝에 닿지 못한 지점은 서로를 연결하기보다, 더 큰 틈을 만들어버린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오해와 갈등을 만들어내는지 보이지 않는 단어 하나가 균열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고, 사이를 단절케 한다.
그러나 낱말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꿰맬 수도 있다. 말이 때로는 상처를 남기지만, 또 다른 말들은 그 상처를 보듬는다. 우리는 다시 말하고, 다시 말을 건넨다. 언제든 다시 말을 잇고자 하고, 기다리기도 하며, 완벽하게 돌아서기도 한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나지 않고 이어지며, 삶이라는 길 위에서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네루다의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말은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 말을 이루는 낱말이 경계가 되어 우리를 막고, 때로는 다리가 되어 우리를 잇는다. 뱀처럼 미끄러지기도 하고, 단단히 박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의 언어는 끝없이 움직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낱말이 미끄러지든, 단단히 자리 잡든, 우리는 그것에 기대어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 애씀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
이렇듯 낱말의 미끄러짐은 우리의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대화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붙잡으려 고 노력한다. 말이 미끄러지는 순간을 지나, 다시 이어지려는 그 다리 위에 함께 서 있다. 네루다의 질문을 개인적인 상황으로 초점을 맞춘다면 생각을 이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
친구가 이 글을 언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의 진심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깊은 굴이 여러 개 있을 것이다. 나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하지만 여전히 풀지 못하는 너의 말이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어렵다.
질문 속에 피어나는 아포리즘
말은 방향이 없다.
방향을 주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이다.
Words have no direction.
It is only our minds that give direction.
내가 만드는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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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 중 '소위' 작가님의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글을 좋아합니다.
낱말의 궤적이 주는 울림이 개인적으로 컸습니다. 예전에 부사로 쓴 여러 편의 시들을 다시 펼쳐보는 계기가 되었고, 네루다의 65번 질문 중에서 글의 제목이 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