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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레몬 Nov 29. 2024

루비는 석류주스 앞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14번 시 중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에는 언제나 상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그중 14번 시 첫 연의 질문이 재미있어서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물었다. 

"네가 루비라면 석류주스에게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아?" 

답변을 생각하느라 머뭇거리는 이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해서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니 애비가 누구야?", 

"그나마 나는 단단해서 다행이지, 너는 결국 피를 흘리는구나.", "갱년기 여자들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너의 존재는 없어져 버리는구나. 그래도 나는 그 여자들의 목을 빛나게나 하지."와 같은 답변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대답은 각기 달랐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맞물리는 흐름이 있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서로 다른 답변 속에서도 하나의 맥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자투리 천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져 새로운 퀼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 답변들을 꿰어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 본다.




루비는 석류주스 앞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루비는 석류주스를 앞에 두고 속삭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저 말의 무게는 무엇일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일까, 아니면 관계의 뿌리를 묻는 일종의 절규일까. 그러자 석류주스가 낄낄거리며 대답한다.
“유전자 확인증을 떼어와 봐!”

그 순간 웃음이 터지고, 우리는 관계의 본질을 깨닫는다. 너무 진지한 질문은 답으로 무너지고, 너무 무거운 대답은 삶의 유머로 가벼워진다. 세상은 늘 이런 식이다. 관계란 서로의 결을 문지르며 깨달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정체성의 뿌리를 묻고, 서로의 일부였던 흔적을 찾으려 하지만, 정작 그 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연히 흘러나온다.


“니 애비가 누구야?”
루비는 도발적으로 묻는다. 그러자 석류주스는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답변을 끌어와 응수한다.

“내가 니 애비다.”

웃음을 참고 싶었지만, 끝내 실소를 뿜고 말았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늘 진지하기 마련인데, 그 진지함을 농담으로 치환해 버리는 능력. 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서로를 향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답 대신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것. 그러면서도 농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리는 것 말이다.


“그나마 나는 단단해서 다행이지. 너는 결국 피를 흘리는구나.”
루비의 말에 석류주스가 또다시 웃으며 답한다.
“칫, 여자들 목이나 조르는 게. 그래도 나는 목을 축이게 하고, 호르몬에 도움이 되잖아!”

그 말은 뼈가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자주 비교한다. 서로의 단단함과 부드러움, 눈에 보이는 빛과 눈에 보이지 않는 스며듦을. 그러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루비는 자신이 단단하다는 자부심으로 석류주스를 깎아내리지만, 석류주스는 자신의 흐름으로 삶에 더 깊이 스며드는 존재임을 주장한다.

단단함과 흐름, 빛과 스며듦,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둘의 대립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평가하고, 때로는 깎아내리기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으깨질 운명, 지켜보기 힘들다. 위로의 건배를!”
루비가 말한다. 그리고 석류주스가 그 말을 받아친다.
“너, 내 안에 있다.”

이 대화는 단순한 농담 같지만, 사실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 누군가를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흐트러뜨려도 그 흔적은 늘 존재한다. 관계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흐르고, 스미고, 박히고, 흩어지면서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삶이란 것이 결국 관계의 무늬를 따라 흘러가는 과정이다. 루비와 석류주스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서로의 다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서로 달라도 함께 하기에 소중한 마음을 표현한다.


“너, 내 안에 있다.”

드라마 대사였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의 태도다. 우리는 서로 안에 있고, 서로를 통해 존재하며, 서로를 통해 삶을 살아낸다. 

루비가 석류주스에게 말하는 마지막 말을 읊조려 본다.


“위로의 건배를!”
이 말 한마디는 관계의 모양새를 가장 잘 보여준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흘러가고, 때로는 단단한 방식으로 서로를 붙잡으며 살아가는 것. 우리 모두 그렇게, 서로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너를 만나 제각각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떻게든 함께 공존한다.

루비와 석류의 속성이나 존재 방식이 달라도 우리는 그것을 보고 비슷하다, 닮았다 말한다.

전혀 다른 너와 내가 만나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공존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답변한다.


"루비가 석류주스 앞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떤 답변을 하겠는가.





붉은 공존    / mocalemon



내가 흐를 때, 너는 단단히 박혀 있었다
내가 무너질 때, 너는 빛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붉음을 품고도 서로를 알지 못했다
너는 나를 본 적 없었고, 나는 너를 헤아리지 않았다
내 안에서 너는 점점 더 작아졌고
너의 겉에서 나는 스며들었다


흐르는 것도 단단한 것도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나는 너의 빛을 부러워했고
너는 나의 생을 두려워했다


흩어지고 스며들며
우리의 붉음은 서로를 지운다
희미해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색이었다


서로를 마주할 수 없는 우리가
끝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너는 내 안에 있었고

내 안에 네가 있었다




질문 속에 피어나는 아포리즘

우리의 삶은 서로를 닮아가는 공존의 흔적이다

Our lives are traces of coexistence that 

resemble each other


나만의 아포리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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