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닿는 시 3
외출하지 못한 살림살이 중에는 언제나 닫힌 서랍이 있다
서랍은 방 한구석에 뿌리를 내렸다
작은 빨강 스웨터, 손때 묻은 연필, 귀퉁이가 닳은 책
너의 손바닥만 한 흔적들이
서랍 속에서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장롱 앞에 몇 번이고 멈춰 선다
손잡이를 당기려다 멈추고
닫힌 문을 한참 보다 돌아선다
칸 사이마다 네가 남긴 것들과
내가 감춘 것들이 잔뿌리처럼 얽혀 있다
서랍을 열 때마다 너의 작은 발이
다시 방 안을 돌아다닐 것 같다
하지만 네모난 공간은 조용하고 너는 거기 없다
남은 것은 먼지가 된 너의 날들뿐
어떤 날은
서랍 속에서 너를 꺼내
거리를 걸으며
멈춘 계절이 아니라
움직이는 꽃을 살고 싶다
닫힌 서랍은 무겁고 너는 늘 늦는다
네가 희미해지는 동안 여전히 서랍 앞에 서 있다
열지 않는 사람처럼
닫지도 못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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