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6번 시 중
어두운 밤도 모자 한 개를 가졌는가, 몇 개의 모자를 모아두고 얼마나 자주 갈아 쓰는가, 밤이 모자를 쓸 때 어떤 기분인가, 밤은 모자를 어디에 두는가, 밤이 모자를 쓴다면 누가 씌어주는가, 밤이 모자를 쓰지 않을 때도 있는가, 밤의 모자는 얼마나 자주 세척을 하는가, 밤의 모자는 왜 구멍이 난 건가, 밤의 모자는 구멍이 하나가 아니라 왜 구멍투성이인가, 밤이 나는 것이 아니라 밤의 모자만 날아다니는가, 밤의 모자를 움직이게 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밤의 모자에 날개가 있는가, 파블로! 밤의 모자가 왜 구멍투성이로 나는지 당신은 보았는가, 남편을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구멍투성이인 밤을 잘 지내는가, 세상이 잠든 밤에 모자(母字)는 가라앉지 못하고 날아다니는가, 밤은 누가 만들었는가, 밤의 모자는 누가 주었는가...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밤의 모자는 왜 구멍투성이로 날까?"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 6번 시 중 첫째 연에 해당하는 질문이다. 네루다의 질문에 대해 개인적인 시적 상상의 답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엮이고 풀리는 과정들이 재미있다. 반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살얼음 같은 후회나 실수를 만나고 설익은 사랑과 살갑게 살피지 못했던 아픔이나 경험들을 만난다. 나와 얽힌 사연들 언저리에 당신, 너와 그와 그녀, 그리고 우리를 만난다. 각혈하듯 새빨간 혈연의 애환을 닦기도 하고, 학교와 사회와 나라와 지구의 어두운 구석을 웅크려 더듬기도 한다. 한동안 아파하다가 무심코 창을 베고 거실에 드러누운 햇빛을 보고 너무도 따뜻해서, 서늘한 것들을 데려오는 동안 놓치거나 다시 놓아주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겨울, 밤, 고드름, 댑바람, 서리, 눈발, 빙판... 온도만 있고 체온이 없는 것들이 어둠에 휘날리는 사이, 저 너머로 따스한 기운을 키우는 힘들을 창조주는 만들고 계신다.
mocalemon
저 찢긴 어둠의 조각 사이로 희미한 별빛을 불러들이고
모든 것을 덮으려는 듯, 휘청이는 몸으로 날아다닌다
구멍 난 밤의 모자여,
어떤 손이 너를 꿰매려 했는가
다시 벗겨질 줄 알면서도 몇 겹의 어둠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감싸려 했는가
어쩌면 울음을 잉태한 기도 같은 것
밤이 모자를 쓸 때마다
숯불이 머리 위에서 타고 있는 것만 같다
어머니를 울린 밤의 모자,
아버지의 바램이 닿지 않는 밤의 모자,
아이의 날개를 달지 못한 밤의 모자,
당신과 그와 그녀의 곁을 이기지 못한 밤의 모자,
우리의 불안을 꺾지 못한 밤의 모자
구멍 사이로 흐르는 눈물과 날숨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고 싶은 밤
눈발 속을 가로지르고
댑바람 속을 헤치며
끝내 어둠의 기도를 바친다
하얗게 꺾인 대지 위에서
뾰족한 고드름 아래서
밤의 모자는 우리를 덮고
기도처럼 빛을 흘린다
빛과 어둠의 틈으로
잠든 세상의 온기를 지키는 손이여,
그 손이 밤의 모자를 흔들며 말한다
구멍투성이일지라도,
너는 여전히 누군가의 하늘이 된다
밤은 늘 모순적이다. 낮이 끝나고 모든 것이 가라앉는 시간 같으면서도, 오히려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별빛이 떠오르고, 잊고 싶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낮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진짜 감정들이 떠오른다. 밤의 모자는 이 모든 것을 덮는 듯하면서도, 구멍을 통해 그 감정들을 새어 나오게 한다.
구멍투성이인 밤의 모자라면, 내 삶의 순간들이 그 구멍 하나하나로 새어나갈까 염려했었던 학창 시절.
어두운 방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곤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 속에서의 부끄러운 실수들, 그리고 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기분. 일찍 가정의 경제사에 눈을 뜬 장녀의 눈치, 그 모든 순간이 어둠의 구멍 사이로 나를 빠져나가게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온 별빛 같은 위로들은 계절마다 택배처럼 배달되었다. 새벽마다 이마에 손을 얹는 할머니의 기도, 백일장 대회에서 받는 상, 친구와의 수다, 국어 선생님의 따스한 칭찬, 그리고 책장 속에서 우연히 꺼내든 문장들... 선물과도 같은 구멍이 있어서 오히려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밤의 모자는 어둠을 덮기도 하지만 느슨한 틈새로 빛을 들이기도 하고 내보내기도 했다.
진로문제로 엄마와 골이 깊었던 어느 겨울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드름이 달린 처마 끝 아래서 한참을 멈춰 섰던 기억이 있다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내 숨이 허공에서 하얗게 맺혔다. 고드름은 물이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물이 떨어지지 못하고 잠시 멈춰 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 앓이를 자주 하는 아버지는 한밤중에 홀로 마루에 앉아 계시곤 했다.
“왜 잠을 안 주무세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 좀 하느라. 너야말로 빨리 자거라.”
밤이라는 시간이 아버지에게도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밤의 모자는 그에게도 구멍투성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말없이 앉아 계셨던 시간의 언저리에, 아버지만의 구멍 사이로 스며드는 빛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가족을 버티게 한 희미한 빛이었다는 걸, 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빛을 필요로 하고, 그 빛을 따라 나아가고자 한다.
구멍 난 모자는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숨구멍이며, 빛을 들이는 통로다.
밤이 나를 덮을 때, 나는 그 구멍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구멍 사이로 빛나는 별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만난 당신, 너, 그와 그녀. 우리.
어쩌면 우리의 모든 관계는 뚫린 것 투성이의 모자와도 같다.
완전하지 않지만, 우리는 각 개의 모자를 쓰고 서로를 지탱하며 신의 은총과 은혜를 구한다.
구멍투성이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하늘이 된다.
밤의 모자는 왜 구멍투성이일까?
당신은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에 머물러서, 나만의 아포리즘을 만들어보자.
질문 속에 피어나는 아포리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기도다
Finding light in the dark is
man's oldest prayer
내가 만드는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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