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여름, 나는 잠깐 외갓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무화과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외갓집 식구들이 저녁을 먹던 풍경이 지금도 또렷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동생들이 없는 낯선 밥상.
따뜻한 소고기 뭇국과 숯불에 구운 민어가 있었지만, 밥상은 내게 너무 컸고 낯설었다.
텅 빈 구멍이 한가운데 뚫린 듯, 목이 메어 한 술도 삼킬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마음에 큰 구멍이 생긴 듯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무화과나무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무화과 철이 되면 무화과를 바게트 위에 올려 먹기도 하고, 잼을 만들어 빵에 발라 먹기도 하면서 그 달콤함에 묘한 위로를 느낀다.
무화과를 먹을 때마다 그날의 풍경이 떠오르는데도, 그 맛이 좋다. 이게 참 이상한 일이다.
무화과는 원래 꽃이 열매가 되고, 열매가 꽃이 되는 신비한 과일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꽃이 열매 속에서 피어난다.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감춘 꽃.
꽃이 밖으로 드러나는 법이 없으니, 무화과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마치 마음속 결핍처럼, 우리 내면에는 작은 구멍들이 숨어 있다.
우리는 그 구멍을 감추며 메우려고 애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애정을 쏟고, 흐트러진 관계를 되돌리려 하지만, 구멍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구멍 난 곳에도 예상치 못한 달콤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틈이 있는 구석이 있어야 바람이 통하고, 바람이 지나는 길을 느낄 수 있다.
어린 날,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느꼈던 빈 구석이 없었다면, 나는 결핍이라는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핍은 여전히 곁에 있다. 결핍이야말로 나를 가장 인간답게 한다.
살다 보면 만족과 충족보다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과 더 친하다.
모든 게 다 갖춰진 날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고, 오히려 비어 있는 날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
채운다는 건 잠깐일 뿐, 배가 불러도 또 배가 고파지고 늘 허전하다.
오히려 부족함은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충만한 날은 더 바랄 게 없지만, 모자란 날은 다시 움직이고 노력한다.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것들은, 미흡한 상태로도 괜찮아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무화과를 잘라서 두부 위에 올려 먹는다.
창문으로 빗겨 내리는 따뜻한 햇살과 살갗을 비비는 바람이 좋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차오른다.
결핍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간구다.
결핍은 나를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Deficiency makes me the most human.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감사하게 여길 때 온다.
Happiness doesn't come from getting what you want,
it comes when you appreciate what you h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