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카레몬 Oct 15. 2024

장미와 우산

우리 시대의 아버지

장미와 우산


열대야의 습도가 낭자한 신촌은 사람들도 젖어 있었다. 

걷기만 해도 땀이 솟아 흘렀다. 

저녁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날의 잊지 못할 장면을 우연히 마주쳤다. 

보라색 우산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 모퉁이의 작은 섬 같았다. 

체구가 작은 노인이 화단 벽돌 위에 골판지를 깔고 몸을 누인 채, 두 팔을 가슴 위로 얹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편안했고, 곁에 피어 있는 분홍색 장미 한 송이가 우산 그늘에서 고요했다. 

평온한 잠.

'저 노인은 왜 여기서 잠들었을까? 가족이 있을까? 평생 누구를 위해 살아왔을까?‘

묘한 낭만이 있는 노인의 모습 언저리에 고단한 삶이 보이지 않게 깔려 있는 듯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멀미가 심했던 아버지는 늘 버스나 차를 타는 게 힘들어 회사를 여러 번 옮겨 다니셨다. 

직장이 멀어질 때마다 그 고통은 몸을 따라갔고, 매번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아버지는 몸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가족을 위해 번듯한 대문에 문패 하나 달고, 

안정된 삶을 이루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그 바람은 늘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 나에게도 아버지의 고단함은 못처럼 가슴에 박혔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버지에게도 자신만의 보라색 우산을 펼치고, 잠시라도 멀미와 삶의 고단함을 잊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하는 불안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 보이지 않는 무게를 감당했던 

아버지에게도 장미꽃 한 송이 처럼 지키고 싶은 소중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가족을 지키고 싶은 사랑이자, 이루고 싶지만 손에 닿지 않는 희망, 노력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었으리라. 

온 힘을 다해 살아온 아버지의 시간 속에도 보라색 우산 같은 공간이 있었을까? 

우산 그늘의 장미꽃 한 송이처럼 아버지도 작은 낭만을 꿈꾸며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셨을지도 

모른다. 

평온하게 잠든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보청기도 막힌 귀의 터널을 뚫지 못하고 입모양과 먼 음성으로 나를 읽어내는 아버지.

생의 장편은 커녕,

무심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사소하게 지나친 아버지의 잠 한 편도 단편으로 읽어내지 못한 

큰 딸이다.


아버지의 삶은 우리 집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 땅의 노인이 된 아버지들이 그러하다. 

한때 핏줄을 위해 평생을 바쳐 일해 온 그들도 이제는 더 이상 가장의 자리가 아닌,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은퇴를 지나 가장자리에서 배회하다 삶의 길목에서 이리저리 밀려나고, 더 이상 가족의 중심에 서 있지 않다. 

외곽으로 밀려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장미를 품고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도 장미꽃 한 송이 지켜내느라 아버지의 우산을 빌려 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오늘의 아포리즘

세상의 무게를 떠받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들이다. 

Admit that I can't solve it on my own. 

A new direction will be seen


'리처드 바크'의 아포리즘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보지 못한 곳에서 여전히 계속된다. 

True love still continues where we haven't seen it.


내가 만드는 아포리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