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실존의 근거
장소를 갖지 못한 자들은 거점 공간을 갖지 못한 채 변두리를 떠돈다. 장소는 집, 거점, 실존의 근거다. 노숙자들과 난민들과 철거민들은 그것을 갖지 못한 처지이기에 환대받을 권리도 환대할 권리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실존에의 의지는 장소들을 갖기 위한 뜨거운 투쟁으로 번진다.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다산책방. 55쪽
장석주 작가의 책을 읽다가 마음에 묵혀두었던 구절이다.
부동산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뉴스를 틀어도,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부동산이 빠지지 않는다. '영끌해서 집을 샀다"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끌어모으고, 집값은 계속 오른다. 전세 대란이니 투기 세력이니, 모든 뉴스 헤드라인이 부동산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난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을 넘어, 가진 자들의 특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집이라는 것은 그 이상으로 사람의 실존과 존엄성에 직결된 문제다. 늦은 밤 빌딩 근처 빈 벤치나 지하 통로에서 노숙자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집이 없다. 집을 가질 기회조차 없다. 돈이 없다는 건, 단지 소유권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배제와 실존의 위기를 의미한다. 집이 없는 이들, 안정적인 거주지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안식과 안전을 잃은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의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우리 부모님도 평생 집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았다. 번듯한 대문에 문패를 다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고, 나 또한 어른이 된 지금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집이 없는 것은 단지 재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정감과 정체성, 실존의 근거가 흔들리는 문제다. 변두리의 가난한 학구에서 교편을 잡고 일할 때, 나 역시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과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그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집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비어있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삶의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지고, 집이 있더라도 그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사람들은 집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밀어내고,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집을 소유하는 것만을 원하는 걸까? 집이 단순한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실존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가 집을 소유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모두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부동산이 곧 신분이 되고, 거주지가 계층을 나누는 현실은 우리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집값은 오르고, 전세는 찾기 어렵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사이 투기 세력은 더 큰 이익을 챙기고, 사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진다. 집을 실존의 근거로 바라본다면, 그 실존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집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을 멈춰야 한다. 더 많은 집을 사들이는 것이 부유함의 상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집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안정과 따뜻한 환대. 그리고 그 환대는 부동산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집이란 우리의 실존을 지켜주는 근본적인 공간이므로, 그 공간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 혜화동 골목에서 >
길을 걷다,
바닥의 선들이 집을 그린다
벽돌 틈마다
누군가의 밤이 쌓여 있고
지붕 위로 햇살이 스며든다
선 너머의 사람들은
빈손으로 어디에 닿아 있을까
길 위에 구겨진 이마,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몸들
집이 없는 이들의 없음은
차가운 방의 문제가 아니다
잃어버린 건 뿌리 깊은 안식
존엄이 흔들리는 마음
벽을 쌓는 사람들,
높아지는 담 너머로
누군가는 집을 꿈꾼다
언젠가 그 선이
모두의 안식처가 되기를
집이 따뜻한 벽이 되기를
일상에서 발견하는 오늘의 아포리즘
진정한 집은 벽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는 마음속에 있다
The true home is not beyond the wall,
but in the heart of embracing each other.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아포리즘
집은 벽이 아닌, 그 안에 담긴 가정의 따뜻함이다
The house is not a wall,
but the warmth of the home in it.
내가 만드는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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