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세룩 14화
“여행 다녀오면서 뭐 사다 줄까?”
라는 질문을 안 해본 지 오래다. 내 성격이 매정하게 변해서가 아니라, 기념품이 있어야 하는 지인들이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보며 해외여행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탓이라고 얘기한다. 명절을 비롯한 성수기만 되면 인산인해를 국제공항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젠 해외여행이 대단히 특별해 진 게 아니므로 굳이 누군가에게 기념품을 요구하는 일이 드물게 됐단 거다. 뭐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여전히 해외여행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 사람들에겐 듣기 불편한 일반화일듯하고... 필자 생각엔 다른 확실한 이유가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지구촌화 때문이다. 통신-교통-운송업 등 여러 기술과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이젠 집에서도 얼마든지 외국에서 만든 제품을 살 수 있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외국의 의류나 주류, 식품 등을 판매하는 로드샵이나 인터넷 사이트가 나날이 늘어나는 걸 보면 놀라움을 넘어선 경외심까지 든다. 오죽하면 지금은 ‘대항해시대’가 아닌 ‘대행(구매대행)의 시대’라는 광고 멘트까지 등장했을까.
음식점도 예왼 아니다. 해외여행 시 꼭 방문해야 한다고 알려진 외국의 유명한 음식점들이 속속들이 한국에 체인점을 내고 있다. 물론 본토의 만족도와는 조금 다르다는 평을 받는 곳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유명한 체인점들이 몇 있다. 가장 유명한 건 미국 동부 햄버거의 자존심인 뉴욕의 쉑쉑버거(셰이크 셱, Shake Shake)다. 쉑쉑버거는 서울에서의 엄청난 호응을 기반으로 이미 한국 전역에 체인점을 넓히기 시작했다. 버거에 쉑쉑이 있다면 베이커리엔 타르틴이 있다. 미국 언론에서 ‘세계 최고의 빵’,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꼽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타르틴 베이커리’ 역시 샌프란시스코, LA에 이어 아시아 첫 매장인 한남점을 오픈했다.
밀크티 브랜드들도 인기가 좋다. 요즘엔 흑설탕 버블티의 인기가 대단한데, 그 열풍의 주역이 바로 사슴 모양의 마스코트가 인상적인 대만의 밀크티 전문점 ‘더 앨리(The Alley)’다. 공차가 이끌었던 1세대 밀크티 대란을, 더 앨리-흑화당-타이거 슈가와 같은 브랜드들이 2세대 열풍으로 이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같은 글로벌 체인점 열풍에 방점을 찍을 브랜드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단순한 열풍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마어마하게 큰 허리케인쯤 되지 않을까 싶다. 샌프란시스코 바다를 타고 넘어온 푸른색 커피 병, 커피계의 애플, 바로 ‘블루보틀’ 커피다. 블루보틀로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 해외지점 개설이다.
지난 5월 3일, 출근길 정체 외엔 딱히 번잡할 것 없던 성수동 교차로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지나는 상인은 물론 택시기사들은 휘둥그레 눈을 뜨고 대체 무슨 현상인지 궁금해했다. 필자도 그 현장에 있었다. 일부러 다녀왔다. 8시에 오픈을 한다기에 7시 30분쯤 도착했건만,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린이날 롯데월드의 줄보다, 어버이날 디너쇼의 호응보다 더 뜨거운 현장이었던 것이다. 기백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선 대기열은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었고, 도무지 빠지지 않는 줄에서 진이 빠질 법한 블루보틀의 팬들은 연신 ‘그나마 쾌청한 날씨에 고맙다. 그치.’라고 자기 위안을 하며 SNS에 사진 업로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추럴한 붉은 벽돌 벽 한쪽에 걸려 있는 블루보틀 커피의 문패는 그런 장사진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는 듯했는데, 곧이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쪽을 바라보니 정말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은발의 훤칠한 서양인이 보였다.
브라이언 미한. 블루보틀의 CEO였다. 일주일 간 내한한다는 바리스타 중 한사람 쯤 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바리스타의 웃음치곤 과하게 흐뭇한 웃음이다 싶어 검색을 한 결과 역시나 CEO였다. 나 같아도 저런 웃음을 짓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 이럴 거면 한 번에 두 개, 아니 세 개 매장 정돈 오픈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8시에 오픈하는 걸 기다리기 위해 새벽 5시경부터 도착해 있었다는 첫 번째 입장 손님의 열정과 그 열정에 질 새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땡볕아래 대기하고 있는 무수한 팬들을 봤으니 그 정도 웃음을 짓지 않아주면 곤란하지.
아무튼 필자도 그 엄청난 대기열 속에서 근 3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맛봤다. 커피를 대단히 잘 알지 못하는 필자가 커피 맛을 묘사하긴 좀 그렇고. 기념으로 에코백과 머그컵, 그리고 텀블러를 샀는데 가격이 꽤 나갔다는 것만 밝혀두겠다. 커피 가격도 외국보다 조금 인상된 가격이라곤 하는데, 어쨌거나 미국이나 일본에 나가야만 맛볼 수 있던 커피를 성수동에서 만날 수 있으니 그 비행기 삯을 생각하면 저렴한 가격일 거란 결론으로 훈훈한 마무리를 짓도록 하고.
아무튼 성수동은 커피 애호가들의 발걸음으로 한동안 핫할 듯싶다. 마치 5월의 새로운 기념일이 생긴 느낌일 테니. 노동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들은 빨간색 기념일이지만, 그들의 5월 달력엔 파란색 기념일 하나가 더 해지지 않았을까?
연애만 한 여행이 있으리.
연애 & 여행 칼럼니스트 김정훈
tvN 드라마 <미생>,
OCN <동네의 영웅> 보조작가,
tvN 드라마 <아는와이프> 보조작가,
책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연애전과>의 저자,
TV조선 <연애의 맛>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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