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_사십대 북에디터의 기타 분투기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요즘 기타 선생님은 “앞으로 혼자 연습하려면…” 같은 말을 흘리면서 은근슬쩍 탈주각을 내비치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영화 ‘머니볼’의 OST ‘The Show’ 1절을 채 마스터하지 못하고 다시 코드와 리듬으로 돌아간 나 아닌가. 기본 박자도 못 맞추는 나인데. 선생님은 지친 걸까.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다. 에디터라는 족속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꼬꼬마 에디터 시절,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결과물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정해진 마감은 이미 넘긴 뒤였는데, 부족한 내 눈으로 봐도 지금 이 상태로는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감을 지켜보려고 몇 날 며칠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고 내 능력은 부족한지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밤이면 밤마다 울며불며 교정지를 마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윗분이 날 부르셨다. 세상 중요한 마감을 이렇게나 어기고 있으니 나는 당연히 잔뜩 긴장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영, 에디터는 지쳐선 안 돼. 지치지 마. 내가 지금 걱정하는 건 그거야.”
그 후 윗분은 내가 마감을 다 할 때까지, 책이 언제 나오냐고 묻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배웠다. 결국 이 책을 책으로 만들어낼 사람은 나임을. 내가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가면 책은 나오지 않음을.
북에디터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역시 집요함이다.
책 한 권이 나오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내 경우 길게는 4~5년에 걸쳐 원고를 받아낸 책도 있다. 저자 선생님이 워낙 바쁘시기도 했지만,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원고를 고치고 중간에 콘셉트도 살짝 틀면서 개고 작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원고를 주고받는 동안 다소 늘어진 기간은 있었지만 멈춘 적은 없었다. 에디터가 원고를 잡고 놓지 않는 한, 어떻게든 원고는 나온다.
원고가 다 들어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본격적으로 편집에 들어가면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원고를 뜯고 씹고 맛보고 고치는 작업이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페이지 때문에 반나절을 넘기기도 한다. 디자이너, 마케터 등과 협업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이 다사다난하고 복잡다단한 과정은 웬만한 집요함으로는 끌고 가기 힘들다. 기타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집요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시는 것 같다.
처음 기타를 시작할 때 최소 1년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방점은 ‘최소’에 있다. 나는 매우 늦된 학생이다. 하지만 내가 기타 레슨을 놓지 않는 한 어떻게든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최근 레슨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타 선생님에게 겨우 칭찬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이제 좀 기타 배운 사람 같네요.” 기타를 배운 지 반년만이다.
그러니 선생님 탈주 생각은 버리시지요… 제 환갑 버스킹이 생각보다 금방입니다.
-매주 토요일 <마이데일리>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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