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_사십대 북에디터의 기타 분투기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쉬라고 할 때 안 쉬고….”
최근 기타 선생님은 아직도 제 모양을 잡지 못하는 내 왼손을 교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번에는 꼭 바로잡아보겠다 작정하신 것 같았다.
나 역시 의지는 충만했지만 점점 손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어깨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야구공을 쥔 듯이 손등과 손가락을 둥글게 오므려 코드를 잡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손등과 손가락이 거의 직각이 되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한마디 건넨다. “잠깐 쉴까요?” 벌써 몇 달째인데 자세가 이 모양일까. 짜증이 난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왼손을 움직여본다.
손끝도 아프고 손목이 아프니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소리가 제대로 날 리 만무했다. 이 단순하고 분명한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잠깐 쉬자고 권유했지만 미련하게 기타를 놓지 않다가 결국 한소리를 들었다.
공부도 일도 잘 쉬어야 잘한다. 그런데 자꾸 깜빡하는 건 왜지.
다른 많은 일이 그렇듯이 북에디터 일도 일과 개인 생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퇴근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업무 시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참고도서를 훑어보는 일이 가장 흔하다.
전문가 저자는 대개 본업이 있고 그 외 시간에 원고를 쓰다 보니 흔히 말하는 업무 시간 이후 연락이 오는 경우가 꽤 있다.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욕심을 내다보면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까먹기 전에 톡이든 메일이든 남겨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별거 아닌 듯 보여도 저자와 자주 많이 소통할수록 원고는 좋아진다. 때론 사소한 대화가 기획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도 있고, 작업 중인 원고에 주요 소재로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다는 게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예열 시간도 필요하고 한번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컨디션 조절을 못 하고 새벽까지 달리기 일쑤다.
1인 출판을 시작한 뒤로 나는 벌여놓은 일이 더 많아졌다. 북에디터 일이 대다수가 그렇듯 대개 당장 눈앞에 결과물이 나오는 일도 아니다. 두서없이 일하다 보니 하루가 저물 때쯤 ‘내가 오늘 뭐했지?’ 한참 생각하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월화수목금금금이 되었다. 회사 다닐 때처럼 누구에게 쪼이고 누구를 쪼아야 하는 상황은 거의 없는데도, 늘 쫓긴다. 쉴 때도 머리 한쪽에선 계속 일 생각이다. 해야 할 일, 하기 싫은 일, 그럼에도 해야 할 일.
늘 일을 쥐고 있다고 딱히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지 못하니 늘 피곤할 수밖에. 어깨에 곰 한 마리 얹고 산다고 느낀 지 오래다.
예전에 작업한 책 가운데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 이지풍 트레이닝코치가 쓴 <뛰지 마라, 지친다>가 있다.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트레이너로서 김하성, 박병호, 이정후, 강백호 등 최고 선수들과 일한 그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전략으로 휴식을 강조한다.
야구는 한 팀이 한 시즌 동안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페넌트레이스다. 한두 번의 성공과 실패로 결과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조급해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페이스 조절이다.
인생도 길다. 당장 답답한 마음에 미련하게 죽어라 연습에 매달리고만 싶다. 하지만 지쳐서 나가떨어지거나 금방 싫증이 나면, 그 또한 내 손해 아닌가. 인생 후반전을 함께할 취미로 기타를 배우면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페이스 조절일 테다. 그래. 숨 한번 내쉬고 마음의 여유를 갖자.
-매주 토요일 <마이데일리>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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