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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영 May 17. 2024

쓸모없음의 쓸모

마흔엔튜닝_사십대 북에디터의 기타 분투키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똑같은 단어이지만, 시대와 속한 집단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학창 시절에 미팅은 삼삼오오 이성 친구를 만나는 자리였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미팅은 ‘비즈니스 미팅’이 된다. 다른 업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속한 출판계에서는 특히 외부 비즈니스 미팅을 미팅이라고 한다. 


기타 레슨을 시작한 후 나는 또 다른 단어의 새로운 뜻을 접하고 있다. 박치. 


그렇다. 지난 칼럼에도 썼지만 나는 최근 기타 선생님으로부터 ‘박치’라는 말을 듣고 그 뜻을 곱씹고 있다. 이런 나를 보고 선생님은 더 정확히는 리듬 감각이 없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리듬 감각이 없는 건 또 뭐지? 애초에 박치라는 말에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뜻이 있는 건가? 박자랑 리듬은 어떻게 다른 거지? 비슷한 말 아닌가? 아니 대체 박치가 뭐야?!


국립국어원의 정의에 따르면, 박치란… 없다. 검색 안 된다. 

구글링으로 재차 검색을 시도해보니 음치란 ‘소리에 대한 음악적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음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발성하지 못하는 사람’이란다. 박자는 ‘음악적 시간을 구성하는 기본적 단위’이고, 흔히 혼용되는 리듬은 ‘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의 그 규칙적인 음의 흐름.’ 


그렇다면 ‘박치’란 음악적 시간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박자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없는 사람이 되겠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의 경우는 박치라기보다는 리듬 감각이 없다고 했으니, 음의 장단이나 강약 같은 규칙적인 음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딘 사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박치에 대해 좀 더 구글링을 하다 보니 두 가지 뜻이 나왔다. 박자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인식은 제대로 해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지 못하는 유형도 있다고. 이에 따르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나의 학문적 호기심을 두고 기타 선생님은 종종 말한다. “근데… 그거 알아서 뭐하게요? 차라리 연습을 더 하세요.” 


어쩔 수 없다. 나는 단어 정의와 용례에 민감한 북에디터다. 선생님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연습이나 해”라는 말을 애써 참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나도 나름 할 말이 있다.  


인간이 어떻게 쓸 데 있는 짓만 하고 살 수 있을까? 우선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을 만들고 있는 나는, 말 그대로 세상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겠다. 애초에 그 ‘쓸데없는’이라는 말의 정의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겠나. 


북에디터 일이라는 게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일인 경우가 많다. 하는 일은 많은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기획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구체화 되어 한참 신나게 정리하다 보니 이미 비슷한 책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역시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는 법이다. 

꼭 섭외하고 싶은 저자가 있어서 어렵게 어렵게 접촉했는데 단칼에 퇴짜를 맞는 일도 허다하다. 책이 나와 여러 홍보 채널에 연락했다 까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일은 했지만 성과는 없다.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안 한 셈이 된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쓸데없다’라는 말은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쓸모란 ‘쓸 만한 가치’라고 한다. ‘쓸 만한’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가치’라는 말도 너무나 모호하다. 

“돈 안 되는 일에 애쓰지 마라” “돈 안 되면 다 부질 없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들어왔는가. 쓸모와 돈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 역시 사회 생활에서 알게 된 ‘쓸모’의 새로운 뜻이다.  


문득 학창 시절, 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인간은 애초에 쓸모 있는 짓만 하고 살 수 없어. 그랬다면 문학이나 예술은 탄생하지 않았을 거야.” 


남 보기에 쓸모없이 보이는 일도 다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이다. 혹시 누가 아나. 다음 책으로 ‘쓸모에 관한 논고' 같은 책을 내게 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은 기타 연습은 안 하고 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변명은 절대 아니다. 어쩌겠나. 인간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매주 토요일 <마이데일리> 연재 중

https://www.mydaily.co.kr/page/view/202308021002760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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