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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Jul 24. 2018

[인도] 마이솔에서 호스펫으로 가는 기차

"나도 똑같아요."

마이솔에서 호스펫(함피)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sleeper 칸의 표를 가지고 서는 대기실에 들어 갈 수 없었다.

기차 시간까지 3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다시 마이솔 시내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기실 문 옆에 가방을 끌어 안고 앉아 멍하니 대기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삼십분쯤 앉아 있으니 옆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190cm는 될 법한 키큰 서양남자 하나가 체구에 비해 작은 배낭을 매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습관처럼 웃으며 '헬로우'라고 인사를 했다.

남자는 대답 대신 크게 미소를 지으며, 내 옆쪽에 앉았다.

인사 후 이어지는 침묵.

평소 나는 침묵을 환영하고 즐긴다. 그러나 왠지 오늘은 침묵이 불편했다.

"어디로 가세요?"

살짝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남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심지어 내쪽을 쳐다 보지도 않는다.

'방금 무시당한 건가...' 상처받은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번에는 어깨를 살짝 치며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처다보며 웃는다.

'못들은 건가?'

다시한번 행선지를 물으려고 입을 벌리려는 찰나.

남자가 낯선 발음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저는 청각장애인이에요. 그래서 당신 말을 못들었어요. 다시한번 말해 줄래요?"

갑자기 돌덩이가 머리로 쾅!!! 떨어진 기분이다.

이렇게 옆에서 하는 말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청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혼자서 인도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이야?

내가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남자가 쓰고 있는 안경다리 아래쪽 귓바퀴에 보청기가 걸려있었다.



5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프랑스 사람으로 15년전 유럽여행을 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고 했다. 왼쪽귀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오른쪽 귀로는 집중하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6개월동안 혼자서 아시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여행하면 무섭거나 위험하지 않아요?"

나는 자뭇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자는 싱긋  웃으며, 대답 대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젊은 여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여행하면 무섭거나 위험하지 않아요?"

다시한번 뗑~ 머리가 울렸다.

아... 그렇구나.

"나도 똑같아요." 남자는 아까보다 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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