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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y 17. 2018

2018.05 파키스탄 라호르에 갔다.

종교란 무엇일까?

아침부터 머리가 어지럽다. 인도 암리차르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라호르에 있는 오늘까지 최고기온은 42℃, 최저기온은 36℃를 기록하고 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온도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미토리의 천장에서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돌고 있는 커다란 선풍기는 더위를 피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전 11시. 약속시간이다. 지근대는 머리의 통증과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는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2일전. 그러니까 파키스탄에 입국하고 라호르에 도착한 그날. 진통제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삼십분쯤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으니 머리도 빙빙 돌고 몸도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잠시 주저앉아 침침해진 눈이 다시 밝아지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도와줄까요?"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약국을 찾고 있어요. 30분 동안 찾아다니고 있는데 약국이 보이질 않아요……."


"이 구역에는 약국이 없어요. 걸을 수 있으면 내가 약국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줄까요? 혹시 걷기 힘들면 내 오토바이로 데려다 줄 수도 있어요."


하늘을 보니 아직 파랗다. 지금은 3시. 아마도 앞으로 4시간 정도는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다.


"걸을 수 있어요. 죄송한데 약국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10분을 걸었는데 아직도 약국이 나오지 않는다. 큰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안함은 없었지만 점점 더 피곤이 밀려와 그냥 호스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제 괜찮은것 같아요. 호스텔로 돌아가서 쉬면 나아질것 같아요."


"이제 2분만 더 가면  되요. " 남자는 말을 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2분도 가지 않아서 약국이 있었다. 다만 셔터가 내려가 있고 주먹만 한 자물쇠가 단단히 걸려 있었다.


남자는 "여기서 5분만 더 가면 다른 약국이 있어요. "라고 말하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다음 약국까지만 가봐야지…….'라고 생각하고 또 오 분을 걸었다. 이곳에는 2개의 약국이 있었지만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남자는 약국 옆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그리고

"며칠 동안 약사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요. 그런데 큰 병원 근처는 열었을 지도 모르니 거기로 거봐요."라고 말하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큰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고, 걷다보니 조금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아서 계속 약국을 찾는 여정에 동행했다.이쯤되니 내가 약국이 필요한지 그가 약국이 필요한지 헤깔린다.


병원 옆 약국이 몰려있는 거리에도 문을 연 약국은 없었다. 벌써 5시가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오늘 약을 사기는 틀린 것 같다.


약을 살 수 없다고 남자와 함께 결론을 내리고 다시 호스텔이 있는 리갈 촉으로 함께 걸어 왔다.




나와 함께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약국을 찾아 헤맨 남자의 이름은 아르프 길(Arif Gill)  이었다. 아리프는 은행에서 청소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3명의 아들과  딸이 하나 있고 부인은 5번째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데 2달 있으면 출산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리프는 기독교인 이었다.


파키스탄은 국교가 이슬람이다.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게 된 이유도 이슬람 덕분이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무슬림이 대다수인 현파키스탄 지역은 인도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영국의 식민지배하에 있었기에 기독교인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곳에 기독교인이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리갈 촉 근처에도 100년이 넘은 커다란 교회가 있었고, 아리프와 가족 들은 모두 그 교회를 다닌다고 했다. 아리프는 모태신앙이 기독교 였다. 그말인 즉슨 그의 부모님 역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리갈촉 까지 나를 데려다준 아리프는 잠시 뜸들이더니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 이었다. 내일 직장도 쉬는 날이고 아이들도 모두 학교를 쉰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의 집에와 아이들과 부인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인도나 다른 무슬림문화권에서   가족의 초대를  받는 것은 그리 드믄 일은 아니다. 무슬림은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은 잠깐만의 대화만으로도 자신의 집에 외국인을 초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유럽인이 아닌 남아시아 기독교인이 초대를 받은 것은 나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리프가 가지고 있는 종교와 그의 종교관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좀 더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그의 집 주소를 물어보고, 나는 생각해보고 전화를  하겠다 는 말을 남기고 아리프와 헤어졌다.


호스텔로 돌아와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아리프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집에 방문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지근대는 머리를 부여잡고 아리프의 집에 가기 위해 리갈촉에 서 있었다





아리프의 집은 리갈촉에서 15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는 다세대 연립 주택 같은 형태의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내 방만한 방에 여섯 식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손바닥만 한  화면이 볼록 튀어나온 브라운관 tv와 내 키만 한 빨간색  냉장고, 그리고  커다란 킹싸이즈 침대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부인과 놀러나간 둘째 아들을 제외하고 온가족이 침대에  둘러앉았다.  왠지 어색해졌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 두 잔을 연달아 마시고, 무슨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4살 난 막내 딸 아스티나를 끌어안고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어색함이 풀어지자 한층 공기가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사이 아리프는 낡은 종이 상자를 하나 가지고 왔다. 그 곳에는 오래된 빛바랜  사진들이 마구잡이로 담겨 있었다.  20년 전 그가 보디빌딩을 하던 시절의 사진부터 18 년전 결혼식 사진, 큰아들 션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17살이된  지금까지  그의 상자에는  끝이 닳아 뭉툭해지고, 누렇게 빛이 바랜 사진들이 가득했다.


사진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니  한 꼬마가 방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역시나. 이방인 손님의 자격으로 마을 순회를 돌 차례였다. 꼬마의 뒤를 따라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집으로 들어갔다. 아리프의 친구이자   부부가 함께 선생님인 기독교인의 집이었다.  


잠시  소리인데  나는 토론을 좋아한다. 논쟁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다른 문화권의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심지어 길거리를 가다 종교를 권유하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이야기를 듣는 것도 때때로 즐겁다. 그런데 설마 이 머나먼 무슬림의 나라 파키스탄에서 기독교를 전도 하는 파키스타니(파키스탄 사람)의 집에 앉아 2시간에 걸친 토론을 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빅터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컴퓨터를 전공하여 교사 일을 하다 최근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남아시아 사람답지 않게 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신을 받아들이고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무신론자라는 말을 듣자 빅터는 성경 구절을   끊임없이 인용하며 나에게 신의 존재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나도 이런 종류의 토론에는 나름 경력이 많은지라 지지 않고 열심히 맞받아쳤다. 분위기가 험악해 질지도 모른다는 예상되는 달리 전혀 껄끄러움없이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사실 빅터가 하는 이야기들은 한국의 길거리 전도사들에게 여러번들은 이야기들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서서히 대화가 지겨워질 무렵. 불현듯, 빅터와 아리프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이 무슬림도, 힌두교도 아닌 기독교를 믿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음...빅터,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잘 알겠어요.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왜 당신과 당신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사실 이곳은 무슬림 국가잖아요?"


"힌두교가 무엇인지 알아요?" 빅터가 갑작스럽게 힌두교이야기를 꺼냈다.


"그럼요. 제가 인도에 2년이나 있었는걸요. 인도인의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고 있어요."


"맞아요. 그리고 파키스탄도 이곳 라호르와 남쪽지역에는 아직도 힌두교도들이 살고 있어요. 이곳에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전에 힌두교들 이었어요. 힌두교에 카스트가 있는것 알고 있죠? 우리들은 바이샤(3번째)혹은 수드라(4번째)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 이었죠. 영국인들이 이곳에 오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우리는 카스트에서 벗어나 기독교인이 된 거에요"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던 아리프를 쳐다봤다. 아리프는 자신의 이름 '아리프 길'에서 '길'은 3번째 카스트를 의미한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인도에서 그리 드믄 이야기도 아니다. 남인도 함피에서 만난 수스미라는 나의 친구 역시 부모님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카스트에서 벗어난 인도인 이었다.  인도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지는 것이 이곳 파키스탄에서는 왠지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곳이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일까? 세계사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유지하고 있는 긴장때문일까? 아니면 이슬람에는 힌두교 같은 신분제도가 없음에도 기독교를 선택했기 때문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다른 문화와 다른 역사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그대로 꺼 내보이는 것은 조심스럽다. 결국 머릿속을 멤돌던 많은 질문들을 차곡차곡 접어 넣고 가장 망설여 졌던 물음 하나를 꺼냈다.


"빅터, 곤란하지 않다면 하나만 대답해 줄 수 있어요?"


"그럼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가요?"


너무 무개가 있는 질문이었나? 빅터는 내말이 끝나자마자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몸을 의자 뒤로 크게 젖히면서 웃었다.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어요. 내가 기독교인으로 살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거든요. 기독교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한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 항상 감사하면서 살고 있죠."


"당신이 기독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선택받은 것이라고요?"


"물론이에요."


"고마워요."


내가 감사인사를 전하자마자 아리프는 부인이 식사준비를 끝냈다면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자고 말했다.(오후4시에 말이다.) 아리프는 내가 빅터와 이야기를 마치길 기다린 모양이다.


다시 좁은 골목을 지나 좁은 계단을 올라 단칸방인 아리프의 집으로 들어갔다. 빅터의 집은 3층의 커다란 집이 었는데, 아리프의 집은 빅터의 주방보다 작다.  하지만 아리프의 작은 집에 4명의 아이들과 아리프와 아리프의 부인과 옹기종기 앉아 있으니 편안해 지는 기분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방에 돌아가지 않는 선풍이 밑에 모여 앉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서로 웃음만 나온다.


아리프가 입이 마르게 자랑한 아리프 부인의 브리야니( 치킨 카레의 일종으로 파키스탄을 대표하는 음식중 하나, 짜파티나 난과 함께 먹는다.)가 점심으로 차려졌다. 특별히 나에게는 닭의 간을 덜어 주었는데, 한국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인데도 너무나도 맛있게 넘어갔다.


오후 6시쯤 아리프의 집에서 호스텔이 있는 리갈 촉으로 돌아왔다.


텅빈 도미토리에 혼자 누워 있으니 고작 몇 시간 함께 있었다고 가지 말라고 칭얼대는 아리프의 막내딸과, 내가 떠나는 것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부인과 셋째 아들이 생각났다.


파키스탄에 온지 4일. 파키스탄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파키스탄을 본 것 같다.


파키스탄에는 내가 알지 못다는 얼마나 많은 모습들이 감추어져 있을까?


라호르를 떠나야 하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리프의 세아이. 첫째 셋째 막내
아리프의 옆집 아줌마. 춤추는걸 좋아하셨다.
그냥 동네 아이들
동네아이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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