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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Jun 02. 2018

[파키스탄] 2018. 05 이슬라마바드에 갔다.

무슬림에게 호의를 돈으로 보상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에요.

이슬라마바드...이슬라마바드...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적어도 여자인 나에게는 그렇다. 도시 지명 자체부터 이슬람의 느낌을 걷어 낼 수 없는 이 파키스탄의 수도는 도착하기 전부터 '혹시나... 만약에... 같은 수많은 가정을 머릿속으로 세우는 곳이었다.


라호르에서 오후12시10분에 떠난 버스는 오후 4시30분 무렵 이슬라마바드의 쌍둥이 도시인 라왈핀디의 외곽 어딘가 쯤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멈췄다.


자...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과거 아주 잠깐 일부러  '가이드북을 보지 않겠다, 미리 알려진 루트를 따라가지 않겠다!!' 등의 허세와 치기어린 의욕을 가지고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정보를 찾아  보지 않겠다는 결심은 안 그래도 무릎을 훅훅 꺽어 버리는 배낭의 무게와, 타고난 나태함으로 그 뒤 꾸준히 잘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사실 별로 노력한 것도 없지만) 미리 잘 닦여진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끔 '대부분의 한국여행자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가지 않는 장소를 가는 것'은 가능했고, 즐거웠다.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인도에 처박혀 있던 나에게도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가지 않는 '진짜' 현지 사람들만 있는 장소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에서도 동네사람만 다니는 길을 무슨 수로 찾아 갈지 막막한데, 외국에서라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낯선땅 파키스탄에서 설마 6피트 땅아래 뭍어둔 흑역사를 타의에 의해서 내손으로 파내게 될줄은 몰랐다. 정말이다.





갑자기 인도에 도착하고 맨 처음 무슬림가족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어땠지? 인도의 절대다수는 힌두교를 믿고 있고, 그 다음으로 대중적인 종교는 불교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단순하고 일차원적이다. 인도의 '타지마할', '무굴제국'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 인도에는 무슬림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미 침입한 어떠한 종교와 문화를 기존의 토양에서 빼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이미 한국역사에서도 지겹게 듣고 배운 것 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라고 왜 다르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무튼 처음 무슬림 가족을 만나고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인도에 무슬림이 있다는 그 자체가 놀라웠다.


둘째로. 무슬림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보수적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무슬림은 그들이 코란을 따르는 방식에 따라 수 십 개의 작은 갈래 길이 있었다.  


아무튼 이 잠깐의 회상은 [내 인생 가장 처음 만난 인도의 무슬림가족의 친절함과 열린 생각은 종교적으로 개방된 터키나 동남아시아의 무슬림과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인도와 중동의 무슬림을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과거에 내가 한 생각과는 상관없이 막상 내가 파키스탄에 홀로 뚝하고 떨어져 옴 몸을 꽁꽁 싸맨 여자들 사이에 홀로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그 순간 나를 엄습하는 불안감을 감추기는 힘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슬라마바드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정도는 알아올걸 그랬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라호르의 텔레노어(이동 통신사) 본점에서 한국에 가기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직원의 "파키스탄 어디에서든 3g는 이용 할 수 있어요. 하지만 4g는 대도시에서 밖에 이용 못해요. 진짜로" 하고 말하며 웃는 미소를 믿고 1달 무려 6GB의 데이터 상품을 덜컥 구입했고, 아직까지 남은 5GB나 되는 용량의 인터넷을 4g의 속도로 이용 할 수 있었다. 서둘러 구글에 검색해 보았지만 이슬라마바드에서 배낭족이 저렴하게 이용할 만한 숙소는 보이질 않았다. 파키스탄의 급변하는 관광산업에서 2년 전에 외국인을 받았던 호텔이라고 해서 올해도 받아줄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고 해도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됐다. 이렇게 사람들이 분비고 어수선한 장소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상황이 어떻든 우선 이슬라마바드 시내로 가야했다.

멍하니 바쁘게 움직이는 파키스타니(파키스탄 사람)을 보고 있으니 한국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을 때, 걱정스런 얼굴로 "혹시 도움이 필요하거나, 도움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심심하거나, 심심하지 않더라도 맛있는 밥이 먹고 싶으면 제 부인에게 전화하세요. 그러면 제 어머니와 부인과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에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한국 전화번호, 부인의 파키스탄전화번호, 그리고 어머니의 파키스탄 전화번호를 적어주던 파키스탄 대사관의 서기관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명함은 배낭 속 지갑에 얌전히 모셔져 있었고, 그래도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아까보다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침착해지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라왈핀디에서 훈자로 가는 버스는 오후6시 하루1대가 전부지만, 훈자로 가는 길목인 길기트로 가는 버스는 하루 5~6대가 정기적으로 운행 중이고, 미니 벤까지 합치면 길기트에 가지 못할 상황은 없다. 혹시 이슬라마바드에서 적절한 호텔을 찾지 못하면 바로 훈자로 향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슬라마바드로 향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 아까 버스 안에서 내 뒷자리에 앉았던 여성이 나에게 이슬라마바드로 가려면 이 버스에서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무기력함을 느끼는 말은  <될.놈.될> 즉, '될 놈은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다분히 운명론 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파키스탄에 와서 당당히 외칠 수 있었다. 나는 <될.놈.될>이라고.




내가 파키스탄에 온지 7일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기간 동안, 나의 여정이 얼마나 술술 풀리고 있는지는 이미 라호르에서도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두루마리 휴지보다 잘 풀리는 파키스탄 여행 운은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졌다. 운 좋게도 내가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를 물은 남자는 이슬라마바드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호텔 중 하나인 <메리어트 호텔>의 레스토랑 매니저였다. 그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라호르를 방문하고 직장이 있는 이슬라마바드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낯선 장소에서 믿을만한 현지인 안내인이 생기는 것만큼 안심되는 일도 없다. 그의 안내로 무사히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가 길 한복판에 멈춰 섰다. 그리고 사람들이 투덜대며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해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A(레스토랑 매니저)가 노동일연휴를 마치고 이슬라마바드로 복귀하는 차량행렬로 더 이상 버스가 시내로 들어갈 수 없다는 버스 기사의 말을 내게 전했다. 길 한복판에 서서 망연자실 달리는 차를 보고 있으니 심란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A가 내게 다가왔다. 이곳에서 자신의 집이 가까우니,  자신의 집에서 숙박을 할 것을 권했다. 버스 안에서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의 직장이야기를 듣고 굳이 자신의 ID카드와 사원증 까지 꺼내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나의 의심을 키웠는데, 해는 떨어져 가고 있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고, 이곳은 고속도로라고 불릴만한 어느 도로 한가운데였다. 나는 A의 숙박제의를 한사코 거절했다. 지금 이 자리에 그의 가족이 함께였다면, A의 집에서 신세를 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의 부인이나 딸들은 없고, 오로지 그 혼자만 있다. 이에 불안을 느끼고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축내고 있으니, 그가 갑자기 내게 전화기를 건냈다. 전화 속에서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와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A의 부인과 아이들이었다. 부인은 서툰 영어로 나에게 꼭 자신의 집으로 올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부인과의 통화를 한 이후에도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A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럼 우선 우리집으로 가요. 나도 당신도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일단 집에 가서 내 짐을 내려놓고, 당신이 머무를 호텔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께요."
"아직 머무를 호텔을 정하지 않았어요."

"그럼 내가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전화해서 머무를 수 있는 호텔을 찾아 줄께요."


이렇게 까지 말하니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니 이제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도 하나 둘 어디론가 떠났고, 정말로 나와 버스와 버스기사와 A만이 도로 한복판에 남아있었다. A를 따라가는 것 이외에 더 나은 선택은 없어보였다.


"그럼 미안하지만 부탁드릴께요."


그렇게 나는 A를 따라 A의 집으로 가게 됬다.




나는 정말도 묻고 싶다. 이것은 나의 잘못인가? 아니면 불운한 상황에서 내린 최선의 선택인가?


A의 집은 이슬라마바드 근교, 아주 잘 정리된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에 있었다. 주택에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서슴없이 아파트로 올라갔다. 4층층에 있는 두개의 집중에 오른쪽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 아파트에는 A의 부인도 없고 아이들도 없었다. 기도를 하고 있는 2명의 남자와 요리를 하고 있는 2명의 남자, 그리고 방에서 손님을 맞으러 나온 3명의 남자만이 있었다. 순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 안으로 한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그 순간 A에게 느낀 배신감과 당혹감은 지금까지 내가 그 누구한테서 느낀 감정 중에 가장 커다랬고, 어떻게 해도 만회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당장 내가 서 있는 플랫이 무너져서 지하2층에 갇힌다고 하더라도 평범하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은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내가 소리만 지른다면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올 것임이 확실하다는 것 이었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A를 향해 말했다.


"왜 거짓말 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A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집으로 간다고 했잖아요. 여기는 집이 아니고요. 아까 부인과 전화통화로 나를 집으로 데려 간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부인도 저를 데리고 오라고 했고요." 아마도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궈진 상태로 주변사람이 들으라는 식으로 평소보다 크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아니에요. 가족들은 라호르에 있어요. 아까 부인하고 통화했잖아요. 나는 부인의 허락을 받은 거에요. 내가 부인에게 당신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고, 부인은 손님을 도와 주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말했고요."


갑자기 머리가 핑 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나의 표정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A는 안절부절, 울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엄마한테 달려가 못된 친구가 나를 괴롭힌다고 이르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분명 내가 속은 것 같은데, 왜 내가 착한 친구를 괴롭히는 못 됀 아이가 된 것 같지?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플랫의 복도에서 버티고, 문 앞에서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고 있으니 옆집 부부가 문을 열고 나와 악수를 청하며 환영한다고(welcome!)말했다. 점점 더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하늘은 남색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나는 당장 이곳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옆집 부부가 A가 얼마나 친절하고 도덕적인 사람인지 말한 것과는 별개로 이곳은 이슬람국가이고, 이들은 무슬림이다. 무슬림 남성이 첫 번째 부인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부인을 맞이하는 것은 전혀 부도덕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들일 수 있다.(물론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는 데에는 첫 번째 부인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과연 이 ‘허락’이라는 것에 얼마나 부인의 의사가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 무슬림남자들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아무튼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아파트를 떠나려고 하자, 정말로 A가 울기직전의 얼굴로 애원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당신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을 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게 해주세요. 이건 저도 양보 할 수 없어요."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A는 이제 자신이 나를 도와줄 수 있게 해달라고 내게 애원 하고 있다. 무슬림에게 손님은 '신이 보낸 사자'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의 극진한 손님대접은 이미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도 갈 곳이 없고, 여기서 라왈핀디 NATCO(파키스탄 북부 국영 버스)버스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그럼 호텔만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나는 여기 머물지 않을 거예요."


이 말을 끝으로 A는 내게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30분쯤 십수 통의 전화를 마친 그는 내게 말했다.


"숙박 예산이 얼마라고 했죠?"


"최대 3000루피(3만원)요."


"그래요? 그렇다면 문제가 있어요. 제가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보았지만, 이슬라마바드에 3000루피에 머물 수 있는 호텔은 없어요. 가장 저렴한 호텔이 6000루피에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슬라마바드에 외국인이 머물 수 있는 저렴한 호텔을 찾기란 힘들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준비가 없다고 해서 정말 하얀 백지인 채로 다니는 것은 아니다. 나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는 되어있다. 라호르에서 파키스탄여행자에게 들은바, 이슬라마바드에 정부유스호스텔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3달 전 자신이 정부유스호스텔에서 머물고 있을 때 네덜란드여행자가 함께 숙박했으니 아마 지금도 외국인을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있는 곳에서 40분이나 떨어져 있고, 혹시나 헛걸음을 하게 될 경우 정말 깜깜한 밤이 될 것이 두려워 확실한 곳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라호르에서 구글에 등록된 전화번호로 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구글에 등록된 전화번호가 잘못 되었던지, 아니면 다른 번호로 이미 바뀌어 내가 숙박을 할 수 있는지 확실히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유스호스텔에 찾아가 숙박을 시도해야 할지, A가 알아 본 6000루피 짜리 호텔에 가야하는지 고민하느라 한동안 말이 없으니 A가 진지한 얼굴로 먼저 말을 꺼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호텔비를 내줄께요."


이쯤 되면 아무리 말이 많은 사람이라도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작 자신의 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손님'이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해준다는 말인가?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A의 지나친 호의를 단번에 거절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유스호스텔로 가기로 결심했다.


"내 친구가 알려준 곳이 있어요. 유스호스텔인데 그곳으로 갈래요.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그냥 입술만 움직이는, 혀끝에서 나온 감사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기위해 큰 길로 나갔다.


"그러면 내가 유스호스텔까지 데려다 주게 해주세요. 지금 혼자서 택시를 타면 좋지 않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깜깜한 오밤중에 혼자서 택시를 타는 건 불안하다. 하지만 A와 함께 가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이번에도 A는 빠르게 택시를 한대 잡았고, 함께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유스호스텔에 도착한 A는, 유스호스텔 매니저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유스호스텔 매니저의 기분은 A와의 대화 이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그는 나와 말할 때는 미소를 지었지만 A와 말 할 때는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다행히도 이슬라마바드에 여러 군데 있는 유스호스텔 중 내가 방문한 곳에서는 외국인, 성인(연령무관), 개별여행자를 모두 받아주는 곳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8인 도미토리였지만, 나는 혼자 방을 사용했다. A는 도미토리 까지 따라 들어와 메트리스를 체크하고, 문이 잘 잠기는지 까지 확인한 다음에 방을 나갔다. 택시비를 주려 했지만 그는 택시비를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무슬림에게 호의를 돈으로 보상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에요." 라고 했다.


그렇게 A가 떠나고 유스호스텔의 여성도미토리에 혼자 남았다. 이층 침대의 일층에 누우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고 5시간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옆방에서는 유스호스텔에 온 여학생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왜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고 바로 훈자로 향하지 않은 것일까? 내일 조식을 먹으며 이곳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지금의 이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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