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나무 Mar 29. 2018

나의 광고대행사 입사기

칠전팔기

취직을 해야 할 때는 지독한 경제위기가 온 시점이었다

대학생활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내키지 않으면 수업을 빼먹었고 공부는 남의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고생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냥 노는 게 좋았다. 놀려면 돈이 필요했고 알바를 했다. 학교는 아르바이트하다가 남는 시간에 잠시 들르는 수준이었다. 출석이 없으니 학점은 선동렬 방어율 수준이었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보니 8년이 지나 졸업반이 되었다.  


취직을 해야 할 때는 지독한 경제위기가 온 시점이었다. IMF 이후 지금까지 경제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지만 이 시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한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라는 거창한 타이틀도 있던 2009년 이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금융 위기가 왜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취업까지 어렵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전공인 광고는 재미와 관심이 있어 광고대행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는 웰콤이었다. 다니던 대학교 앞에 있던 웰콤은 건물 자체로도 광고 지망생에게 선망이 될만한 회사였다. 우리 학교에 출강을 나오셨던 웰콤 대표님(박우덕 사장님)의 쿨함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하지만 낮은 학점에 세계적 경제위기, 신입을 잘 선발하지 않는 대행사의 환경은 나를 좌절하게 했다. 열정을 가득 담아 지원서를 보냈던 대부분의 회사에선 회신 조차 오지 않았고 무작정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취업사이트에 채용공고가 올라온 작은 회사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병원 광고를 하던 회사, 아웃바운드 콜 영업을 하던 회사, 간판 비스무리한걸 만드는 회사 등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고 그중 한 군데서 드디어 면접 제의가 왔다. 


회사는 성수동이었다 지금은 성수동이 핫플레이스 중 하나지만 그때는 그냥 오래된 주택가였다. 면접을 보러 간 날 하마터면 입구를 찾지 못할 뻔했다. 번듯한 간판도 없는 주택가 중간쯤의 건물 2층이었는데 지하가 원단 공장이라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원단들이 쌓여있었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광고회사가 나올지 의문이 드는 그런 건물이었다. 직원은 20명이 채 안 되는 신생회사, 젊은 사장님이 독립해 나와 이제 막 직원을 충원하는 중이었다. 초라한 사무실을 보고 많은 고민이 들었다. 강남의 높은 건물에 앉아 있기만 해도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인테리어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공장인지 광고회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 사무실은 내가 그리던 광고대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면접은 열심히 봤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면접에서는 강점이 있는 듯하다. 그간 몇 번의 면접 기회를 놓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면접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입사를 했다 .


AE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받아 들었다

간절히 바라고 꿈에 그리던 직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를 느끼고 동경하던 직업을 가지게 된 기쁨 반, 시작부터 크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 반으로 내 광고 인생은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고대행사가 힘든 이유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