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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Jan 03. 2024

1231@Piscine Pontoise


파리는 뭘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는 동네다. 5구에 있는 파리 구립 수영장(퐁투아즈 수영장)이 최근 재오픈을 했는데, 파리 부시장까지 참석한다기에 뭔가 했더니, 수영장이 대표적 아르데코 건축물 중 한 곳이었다. 1930년대에 라탱지구에 세워진 건축물이니, 동네 실내 수영장이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곳인 것이다. 파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골목이 12세기부터 사람들이 살던 곳이, 몽테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지나가기도 하며, 역사책 속 왕과 왕비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동네. 그래서 지난해 새해에 결심했다. 파리에서 온전하게 지내는 마지막 1년을 매일 기록해야겠다고. 처음엔 혼자만의 기록처럼 솔직하게 끄적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도 생겼고,  사람들의 좋아요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늘어나며 글을 억지로 쥐어짜 내는 경우도 있긴 했다만, 그럼에도 빠지지 않고 1년을 잘 기록했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헤밍웨이는 파리를 움직이는 축제, 그러니까 매일 뭔가 일어날지 모르는, 기대에 찬 곳으로 묘사했는데, 사실 그의 에세이집을 읽어보면 고단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센강과 에펠탑을 보면 정말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대가가 큰 곳이 파리다. 때문에 1년을 기록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난 내가 지금의 이 순간들을 얼마나 더 미화해서 기억할지,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될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분명 기억을 다시 꺼내보고 싶을 때가 많을 것이고, 그게 1년을 기록한 가장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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