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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Jan 08. 2024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닮은 헬싱키

0102-0105@Helsinki, Vaalimaa, Mikkeli


흑백 영화 속 한 장면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핀란드의 풍경은 참으로 황량했다. 눈과 눈에 덮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너무 추워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걸지 몰랐다. 바다와 호수에 둘러싸여 대기가 습한 데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이날 핀란드 북부 한 동네는 최저 기온, 영하 43.3도를 기록했다. 헬싱키 중심부에 가면 사정이 좀 다를까 싶었지만, 그대로였다. 러시아 정교회 분위기가 나는 대성당이 있었고, 광장 중앙엔 동상이 있었는데, 그는 러시아 황제였다. 알렉산드르 2세. 황제의 권한으로 핀란드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헌법을 선사하여, 핀란드에선 해방의 황제로 평가받는다지만, 그래도 헬싱키 중심 한가운데 러시아 황제의 동상이 있는 건 아무래도 낯설었다. 광장의 대성당 역시 러시아가 선물로 지어준 거라고 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영향 아래서 살아온 한국인의 눈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지만, 핀란드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러시아풍 대성당과 알렉상드르 2세 황제의 동상


핀란드는 보통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분류되지만, 바이킹족이 주류를 이루는 덴마크-스웨덴과는 민족적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나라다. 핀란드의 중심은 핀족이며, 오히려 이들은 에스토니아 민족과 유전적으로 가깝다. 겨울에 기온이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지는 땅, 호수가 많아 습한 이곳은 애초부터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아녔다. 이곳에 터를 잡은 핀족은 화전 농업으로 근근이 연명하며 살아갔다. 잉여가 나오지 않는 지역이니 왕이 등장하거나 군대를 거느린 권력이 나오기 힘들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맹주였던 스웨덴에게 핀란드 영토는 무료 취득이 가능한 땅이었고, 핀족은 러시아 지배를 받기 직전까지 거의 모든 역사를 스웨덴의 일부로 살았다. 우리가 일본에게 지배받았던 것처럼, 핀란드는 스웨덴의 식민지였던 걸까. 아니다. 애초에 핀란드는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스웨덴 통치 아래 살았지만 우리가 일본에 갖고 있는 역사적 감정을 핀란드인이 스웨덴에 갖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30년 전쟁’에 참여했던 스웨덴이 핀란드인을 데려갔는데, 그 덕분에 핀란드에 군대가 생겼다며 고마워하는 식이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좀 다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닮은 헬싱키


실제 할리우드 제작팀이 촬영을 위해 헬싱키를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풍경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헬싱키는 러시아의 한 도시처럼 보였다. 평생을 스웨덴의 일부로 살던 핀족의 운명에 러시아가 개입한 건 나폴레옹 전쟁 이후였다. 러시아와 스웨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스웨덴 영토를 상당 부분 가져오는데, 그때 가져온 지역이 핀족의 땅이었다. 이때 러시아는 핀란드 공국을 만들어 통치하기 시작했고, 광장에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2세가 핀란드 공국에 상당한 자치권을 선사하며, 핀족 머릿속에 ‘독립국가 핀란드’라는 생각을 심어줬다. 마침 유럽 정세도 핀란드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연이어 혁명까지 발생하자, 러시아는 국내 문제 정리만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 틈을 타 핀란드는 1차 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독립 국가가 됐다. 러시아 혁명의 여파는 핀란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핀란드 역시 적군/백군이 싸우는 내전이 발생했고, 공산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그 순간, 러시아는 핀란드를 침공했다. 두 번의 전쟁. 겨울 전쟁과 계속전쟁 (영어로는 Continuation War, 이름이 이상한데, 겨울 전쟁이 잠시 멈춘 뒤, 바로 계속 전쟁이 이어졌기 때문)이 발발했고, 핀란드는 이때의 패배로, 동쪽의 땅을 잃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무려 1,3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신생 독립국가인 데다, 천성이 실용적이던 핀란드인들은 이때부터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러시아와 2번의 전쟁을 경험했음에도, 알렉상드르 2세의 동상을 철거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역사의 흔적을 시대의 잣대로 평가해 없애지 않으려는 핀란드인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우기에 러시아(소련)는 너무 강력한 상대였다. 유럽 연합 멤버이지만,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철저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며,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러시아의 대 서방 무역 창구를 자처하며 경제적인 이득도 많이 얻었다. 이런 핀란드의 노력을 한 순간에 바꾼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전쟁 전에도 핀란드 애국 보수 세력은 나토 가입을 주장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을 요구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수 의견이었다.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를 자극하면, 오히려 국가 안보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국민 여론은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국경으로 가는길


핀란드는 압도적인 국민의 찬성 속에 지난 4월 나토에 가입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 연합과 나토에 기웃거리는 걸 막기 위해 시작한 푸틴의 전쟁은, 또 다른 자신의 우호국 핀란드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푸틴 입장에선 막대한 손실인 셈.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핀란드는 미국과 상호 군사 조약을 체결했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 250km 앞까지 미군과 나토군의 탱크가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는지 푸틴은 발틱국가들에게 선보이던 하이브리드 공격, 일명 이민자 밀어 넣기를 핀란드에도 시도했다. 중동, 아프리카 이민자를 유럽으로 보내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하려는 시도인데, 이에 핀란드는 국경폐쇄로 응수했다. 국경이랄 게 없는 한국인에겐 국경 폐쇄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지만, 국경이란 그저 생활 반경의 그어진 선 정도로 생각하던 유럽인의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변화다. 당장 핀란드에 살던 러시아인들이 시위를 벌이며 국경 폐쇄에 항의했다. 발리마 국경검문소 앞은 체감 온도가 영하 35도까지 떨어졌다. 차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국경 앞은 평소보다 훨씬 썰렁했다. 러시아 부자들을 상대로 한 국경 검문소 앞 명품 아웃렛은 문 닫은 지 꽤 오래돼 보였다. 국경 지역의 상인들은 러시아인 관광객 감소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나토 가입과 국경 폐쇄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실용주의자 핀란드인의 시선에도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발리마에서 헬싱키로 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황량했다. 그나마 떠있던 해마저 사라졌기 때문. 10시가 다 되어서야 밝아지더니, 오후 2시밖에 안 됐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자살률이 높다는 데 날씨 때문일까 싶을 정도로 우울한 날씨였다. 헬싱키에 도착해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연어 수프를 먹으러 들어갔다. 노르웨이가 유명한 거 아니냐는 말에, 핀란드 친구는 발끈했다. 연어를 미트볼처럼 만들어 수프라고 하기엔 묽고, 국이라고 하기엔 걸쭉한 크림 스튜에 넣은 음식을 주문했다.(나중에 찾아보니 로히케이토란 이름의 음식이었다) 추운 날씨 탓인지 맛있었는데, 특히 함께 나온 검정 빵과 수프의 궁합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러시아인처럼 보드카 비슷한 독주를 많이 마셨지만, 맥주 자부심도 꽤 높았다. 호텔에서 먹은 카렐리야 파이도 인상적이었다. 귀리로 껍질 부분을 만들고 그 안에 쌀과 버터, 달걀을 혼합한 속을 넣은 뒤, 훈제 청어와 함께 먹는 식이었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핀란드 요리를 영국 요리만큼이나 형편없다고 생각한다는데, 실제로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립’이란 메뉴를 시켰는데, 내가 먹어본 립 중 가장 맛이 없었다. 추위 때문인지 가는 식당마다 썰렁했다. 핀란드 최저 기온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러시아-핀란드 국경은 당분간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혹독한 겨울나기에 단련된 핀란드인에게도 올해 겨울은 꽤나 험난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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