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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Mar 25. 2024

기록해 둘 만한 혼돈의 파리 날씨

0323-24 Paris

혼돈의 피리 날씨


파리 날씨 변덕이야 이제 적응될 법도 한데, 이번 주말 날씨는 기록해둬야 할 정도로 혼돈 그 자체였다. 극단적인 양극성 분열 날씨랄까. 토요일 눈을 떴을 때, 이런 날씨를 보고도 우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이 맑았고, 곧바로 뛰러 나갔다. 달리는 내내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알마 다리를 지날 즈음, 결국 멈춰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알마 다리에서 찍은 센 강. 이 땐 먹구름이 오는 줄 몰랐다


그때, 여우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동남아의 스콜이 몰려왔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급하게 비를 피했지만 이미 다 젖은 상태. 어찌 이러나 싶어 알마 다리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그제야 사진에 찍힌 먹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즈음, 비가 잦아들었.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강한 태양이 젖은 바닥에 반사되면서, 눈이 부셔 제대로 뛰기가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여우비는 오다 말기를 반복했다. 뛰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작은 먹구름이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조금 페이스를 올려 속도를 내니 여우비가 멈추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머리 위를 따라오던 작은 먹구름을 따돌린 것만 같았다. 속도를 늦추니 역시나 여우비가 다시 내렸다. 먹구름보다는 빨리 뛰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달리니, 곧 하늘엔 작은 조각구름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파란 하늘뿐이었다.


구름 다 사라짐


집에 돌아오니 다시 폭우가 쏟아졌고, 둘째 축구 경기 시작 전, 다시 HDR급 선명한 풍경이 펼쳐졌다. 구름은 굳이 미속 촬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그 구름 밑에서 둘째네 팀은 15대 0으로 졌다. 둘째 경기가 끝나고, 첫째 경기가 시작됐다.



첫째는 파란 하늘과 강한 태양만 믿고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경기에 나섰다. 경기 시작 전,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잠시 뒤 폭우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다. 바람마저 강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추워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심판이 경기 중단을 했어도 됐을 법한 악천우


첫째는 경기에서 교체될 때마다 늘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벤치로 향했는데 이날은 달랐다. 아이는 전속력으로 벤치를 향해 달렸고, 외투를 꺼내 입었다. 곧 날씨는 좋아졌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추워 보였다. 완연한 본 날씨임에도, 벤치의 아이들은 겨울 외투에 담요를 꽁꽁 둘러싸고 있었다.


날이 이렇게 좋건만, 젖은 생쥐들은 여전히 춥다


다음날인 일요일도 날씨는 여전했다. 바람이 쌀쌀한 게 우동 생각이 나, 아이들과 오페라 거리로 나섰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본 동네 풍경은 정말 싱그러웠다.


이렇게 선명할 수 있을까


 버스를 타고 센 강을 건너자 역시나  비가 내렸고, 루브르 박물관 앞 정류장에 내렸을 땐,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쪽은 날이 갰고, 반대쪽은 여전히 흐렸다. 오페라 거리의 절반은 맑고, 절반을 흐린 셈이었다. 이쯤이면 날씨 제어 프로그램이  오류가 난 게 분명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동시에 찍은 사진. 오페라 거리 북쪽은 맑고
오페라 거리 남쪽은 흐리다. 같은 순간에 찍은 같은 거리.


다들 이런 어수선한 날씨에 지쳐서였을까. 따뜻한 국물의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사누키야 우동 집 앞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다림 끝에 먹은 된장 맛 우동은 큰 위안을 줬다. 밖에선 다시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렸고, 사누키야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던 손님들은 어쩔 줄 모른 채 혼란스러워했다, 난 그 풍경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남긴 우동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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