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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Jun 08. 2024

알마 다리 위의 프랑스식 루틴

0607@Pont de l'Alma

알마 다리는 언제나 혼란

     파리에서 교통경찰을 본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교통경찰이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차가 아무리 막혀도, 도로가 엉망이 돼도, 교통경찰은 나타나지 않는다. 문제는 오래된 길과 원형 교차로가 많은데 신호도 체계적이지 못해 종종 차량 엉킴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 예전엔 원형 교차로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못한 채 30분을 허비한 적도 있다. 마치 빈칸이 없는 슬라이딩 퍼즐 같았다고나 할까. 결국 분노한 시민들 몇몇이 교통경찰 역할을 맡아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사람들이 나오는데 까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에펠탑의 오륜기 설치 완료. 올림픽 준비 끝

     파리 올림픽 준비가 마무리되면서 파리의 차량 혼잡은 한층 더 심해졌다. 차단된 도로가 많다 보니 도로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며, 차량 통제가 훨씬 심해졌다. 출근길의 도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혼돈 그 자체였다. 특히 알마 다리 앞 원형 교차로는 아수라장. 빈칸이 없는 슬라이딩 퍼즐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 웃긴 건, 알마 다리만 지나가면, 정작 센 강 주변의 도로는 한산하다는 점. 그러니 알마 다리 원형 교차로 앞에 교통경찰 3명 정도 배치해, 엉킨 차량만 풀어주면 쉽게 해결될 정체인데, 교통경찰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혼돈의 로터리


     퇴근 즈음, 사무실 앞 도로까지 차량 정체가 심한 걸로 보니 알마 다리는 지금 대혼란이겠구나 싶었다. 결국 사태가 너무나 심했다고 판단한 건지, 처음으로 파리 교통경찰이 차량 정체 해소 작업을 하는 모습을 봤. 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도로를 막거나 교통 딱지 떼는 장면은 많이 봤지만, 꼬여버린 도로를 푸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뉴스를 들어보니 바이든 외에도 슐츠 독일 총리 등 해외 정상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아마도 이 시간에 정상 중 누군가가 알마 다리 앞을 지나가야 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나타날 프랑스 교통경찰이 아니다.



     다음날 알마 다리 앞은 마치 청소를 깨끗이 마친 공원 같았다. 차량의 운행은 순조로웠다. 알마 다리 앞 원형 교차로가 이렇게 넓은 곳이었는지 몰랐다. (안 해서 그렇지, 뭔가 하기로 결정하면 제대로 하는 게 프랑스다.) 프랑스 사람들은 인생에 어느 정도의 불편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차량 정체 같은 불편은 못 풀어서가 아니라, 안 푸는 것, 그러니까 이런 불편은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게 인생 아니겠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불편으로 쌓인 불만은 주말 집회 나가서 풀면 될 테니. 참으로 프랑스적인 루틴이 아닐 수 없다.


평화로운 알마 다리 앞 원형교차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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