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스카토 Jun 09. 2024

나의 시칠리아 친구 알레산드로

0527@Catania, Italy


     시칠리아 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카타니아에서 알레산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멍청한 질문이란 걸 알았지만 결국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마피아 친구가 있나요?’ 알레산드로는 헛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뉴욕 여행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다. ‘내가 시칠리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된 뉴요커들은 하나 같이 전부 같은 질문을 하더라고. 너 대부 봤냐. 내가 아주 사랑하는 영화지만, 그냥 안 봤다고 답했.’ 시칠리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간접적으로 꼬집은 답변이었다. 물론 시칠리아 기념품샵에 가면, 그들도 돈 콜레오네의 사진을 걸어놓고 적극적인 대부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니 멍청한 질문을 한 게 오롯이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민망했다.


구름에 가려진 에트나 화산
카타니아의 중심, 두오모 광장

     시칠리아 사람들은 시칠리아 부심이 크다. 본인을 이탈리아인이 아닌, 시칠리아 사람으로 소개하는 식이다. 시칠리아 위엔 사르데냐라는 또 다른 큰 이탈리아 섬이 있다. 사르데냐 섬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알레산드로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시칠리아에 모든 게 다 있는데 굳이 사르데냐를 갈 이유가 뭐가 있겠어.’ 음식, 풍경, 태양, 바다, 유서 깊은 건물들까지. 활동 중인 에트나 화산의 재가 섞인 토양이 키운 와인, 블러드 오렌지라 불리는 붉은 오렌지, 넘쳐나는 해산물에 튀김밥 아란치니의 원조 식당까지. 시칠리아는 풍요 그 자체였고, 시칠리아 섬을 지배한다는 건 지중해 장악을 의미했다. 시칠리아는 풍요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늘 누군가의 지배를 받은 셈이다.


사비아
원조 아란치나


     그 많은 자랑에서도 시칠리아 사람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건 ‘하느님의 부엌’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한 음식 문화다. 일단 이탈리아 전역에서 먹는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튀김밥 아란치니의 원조가 시칠리아다. 카타니아의 <사비아>란 식당은 그중에서도 원조. 기분 탓일까. 역시 원조의 맛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 카놀리도 유명하지만 미누찌는 특히 카타니아를 대표하는 디저트다.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성녀 아가타
성녀의 가슴, 미누찌

여성의 가슴 모양처럼 생긴 케이크인데, 카타니아의 수호성인 아가타와 관련된 음식이다. 아가타 성인은 시칠리아의 로마 총독 퀸티아누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의 신앙을 지킨 대가로, 가슴을 도려내는 형벌을 받게 됐다. 이후 카타니아 사람들은 성녀 아가타를 기리는 마음으로 가슴 모양의 미누찌를 만들어낸 것. 맛도 물론 훌륭하다.


카타니아 시장

     해산물 역시 카타니아의 자랑. 다른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시칠리아 사람들도 4코스를 먹는다. 먹을 것이 많은 데 먹어야 할 코스도 많으니 음식 주문에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이거 주세요’로 끝내고 빨리 뭔가를 먹고 싶은데, 알레산드로는 식당 주인과 긴 토론을 벌인다. 나중에 끝도 없이 나오는 해산물 요리를 보니, 주문이 길어졌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말고기 식당
말고기 스테이크

하지만 카타니아에서 먹은 가장 인상적인 음식은 말고기다. 말 스테이크, 말소시지, 말고기 패티를 넣은 햄버거. 종로 생선 구이 거리를 연상시키는 허름한 골목에서 막걸리 마시듯 와인을 곁들여 말고기를 먹고 있다. 맛도 좋지만 가격도 착하다. 알레산드로는 3부 리그 소속인 카타니아 축구팀이 경기를 마치고 들른다는 유명 말고기 집을 소개해줬다. 고단백 저칼로리라며 그는 식당 홍보 대사 같은 말고기 자랑을 반복했는데, 먹어보니 자부심을 느낄 만했다.


     알레산드로는 여행 내내 이탈리아의 노동자 급여가 너무 낮다고 화를 냈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태울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칠리아의 표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마 다리 위의 프랑스식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