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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Jul 02. 2024

총선 결과에 프랑스가 충격에 빠진 이유

0701@Assemblee nationale-Palace Bourbon


     도박이 결국 실패로 끝났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으로 실시된 프랑스 조기 총선에서 극우정당 국민연합이 승리했다. 2차 투표를 실시하는 프랑스 선거 특성상, 정확한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온다. 하지만 국민연합의 승리는 확실하고, 과반 달성 여부만이 관심 포인트다. 사실 이번 선거 패배는 도박 결과에 눈먼 마크롱 대통령 빼고는 모든 프랑스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분노한 건 여당 국회의원들. 여당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면서, 여당 의원들 상당수가 졸지에 실업자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역시나 어떠한 귀띔을 받지 못한 불쌍한 마크롱의 후계자,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국민들의 욕받이를 감내하며 선거 운동을 했지만, 패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국민연합의 승리가 갖는 사회적 맥락을 정확하게 아는 것. 일부 언론은 극우라는 표현대신 강경우파라 에둘러 쓰고 있지만, 국민연합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지금 프랑스엔 20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 일이 벌어진 건 분명하다.


Choc! Shock! 충격!


국민연합(RN)은 무엇인가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유럽 경제는 빠르게 성장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성장에 속도가 붙으면, 당연히 노동력이 부족해진다. 1960년대, 많은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건너온 이유다. 독일이 터키 노동자를 받아들였듯, 프랑스는 특히 알제리에서 많은 노동력을 가져왔다. 바로 이때, 2차 대전 이후 숨어있던 극우 세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에 남긴 악몽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시기였다.


 프랑스에서도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제국주의를 내세운 각종 극우 세력들이 폭력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1972년, 극우 정당의 대부 장 마리 르펜은 분열된 극우 세력을 하나로 통합, 국민연합의 전신, 국민전선을 창당한다. 창당 멤버 중엔 비시 정권 협력자, 전 나치 당원도 있었다. 당연히 프랑스 사람들에게 국민전선이 보통 정치 집단으로 보일 리 없었다. 장 마리 르펜이 1974년 대선에 출마해 받은 득표율은 0.75%였다.  


장 마리 르펜 (출처;RTL)

   

        약 50년 동안 프랑스에서 국민전선-국민연합은 공화국의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위협하던 공공의 적으로 여겨졌다. 정당의 얼굴인 장 마리 르펜은 백인 우월주의자로 공공연하게 인종주의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이었다. 1998년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도 흑인과 아랍인이 섞여 있는 대표 팀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셈이니 프랑스 전체로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오죽했으면 2010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겠는가.


 장 마리 르펜은 1988년 득표율을 14.3%까지 올리며 조금씩 세력을 키워갔지만 15% 언저리가 한계였다. 그리고 2002년 프랑스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한다.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에서 결선 투표에 진출한 것. 득표율은 16.8%로 여전히 낮았지만 르펜이 대통령 선거에서 2위를 했단 사실 자체만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민전선의 외양을 본격적으로 바꾼 사람이 국민전선의 창립자 장 마리 르펜의 딸이자 현 국민연합의 실질적 리더 마린 르펜이다. 그녀는 반유대주의 색채부터 벗겨내기 시작했다. 반유대주의 성향을 못 버리던 정당 창립자이자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을 당에서 제명했고, 반이슬람 발언을 통해 유대인 표심을 조금씩 끌어왔다.(그녀의 적은 이스라엘이 아닌, 알제리 모로코 이민자다) 최근엔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에서 나치 친위대 옹호 발언이 나오자, 그녀는 과감하게 유럽연합 극우그룹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을 축출했다. 마린 르펜은 2017년, 2022년 두 번에 걸쳐 프랑스 대통령 결선 투표에 오르며, 국민연합을 대중 정당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승리를 위한 2선 후퇴. 차기 총리로 급부상한 29세의 바르델라

 기세를 몰아, 이번 총선에선 29살의 젊은 정치인 조르당 바르델라를 전면에 내세워 20-30 표심마저 사로잡았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런 변화를 위장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마린 르펜은 2022년 국민전선 창당 50주년 행사에 참여해, 자신이 국민전선의 뿌리를 잊은 적이 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프랑스가 국민연합의 승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유럽이 극우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이유

        사실 유럽에서 극우의 득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정당, 이탈리아형제들의 뿌리를 찾아가면 2차 세계대전의 주범 무솔리니가 나온다. 물론 멜로니 총리는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하긴 어려운 행보를 보였지만, 그녀의 정치적 파트너였던 북부 동맹의 마태오 살비니는 극우세력이다. 스웨덴 총선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모든 정당이 연정 파트너에서 제외한 극우 스웨덴 민주당. 그들 역시 정당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나치주의자들이 나온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2등을 차지한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은 대놓고 나치 친위대(SS)를 옹호하다가, 극우 동지로부터 외면을 받았을 정도다. 이들은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역사 반성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정당이다. 네덜란드, 헝가리 총리 역시 포퓰리즘 성향이 강하지만, 인종주의 차별 발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며, 오스트리아, 체코 그리고 슬로바키아에에서도 극우 정당은 선전하고 있다.  

   

        극우가 인기를 끄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럽연합의 구심력에 대한 반발이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연합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유럽연합은 유럽 각국이 일부 양도한 주권을 토대로 법률과 정책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과 정책은 각국 내정에 우선한다. 예를 들면 최근 유럽연합은 중국산 전기 차에 2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유럽 국가와 개별적으로 교역하는 모든 나라는 새로 부과된 관세 규칙을 따라야 하는 식이다.


좌파성향의 브르타뉴 농부들도 브뤼셀의 오만에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국가의 이익, 혹은 특정 정치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이 유럽연합의 정책과 상충되는 일이 생긴다. 대표적인 정책이 위에서 언급한 친환경 정책. 현재 유럽연합 리더십은 과감한 친환경 정책, 예를 들면 화석 에너지 사용량 감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데, 이것이 종종 소규모 농민/어민들의 이익과 충돌했다. 그들은 예전처럼 국가에 항의했지만, 개별 국가도 어찌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결국 우리의 주권을 왜 브뤼셀에 내줘야 하느냐는 반발이 늘어나고, 유럽연합에 처음부터 회의적이었던 극우 세력이 이 불만을 적절히 파고들었다.

     

        이민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사실 일종의 섬나라에서 단일 민족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유럽의 이민 갈등이다. 6-70년대 유럽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즉 경제 성장을 위한 노동력 충원 차원에서 이민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이민의 역사가 길어지고,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원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가 이민자 증가로 인해 희미해진다는 공포가 생겨난 것이다.


극우 성향의 스웨덴 민주당의 청년 당원들 (그런데 전부 백....)

 스웨덴에서 만난 청년 민주당원들은 스웨덴의 ‘라곰’을 이야기했다. 번역이 쉽지 않지만 대략 ‘적당한’의 뜻을 가진, 욕심 내지 않고 균형적 삶을 사는 스웨덴의 가치를 담은 단어다. 청년들은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라곰’의 가치가 사라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특정 종교, 인종의 이민자가 많아지면서, 기존 사회에 동화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이 늘어나는 현상의 반작용이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유럽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기후변화 이주민까지 생겨나면서, 이젠 이민의 문을 닫아야 할 때란 생각이 힘을 얻게 됐다. 반이민을 외치던 극우의 인기가 올라갈 수밖에.    


유럽 선거에서 감지되는 위험한 시그널

        평평하고 조그만 땅 덩어리에서 수많은 민족이 뒤섞여 살던 유럽은 역사적으로 평화롭던 시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중국처럼 대륙을 통일한 절대 강자도 로마 이후로 없었다. 서로 공격하기 쉬운 평원 지대에서 유럽은 늘 싸워왔고, 세계 대전도 두 번이나 치렀다. 싸움이 나면 말려줄 장치, UN을 만들었지만, 효용성이 낮았다. 그렇게 유럽은 ‘유럽연합’이란 제도를 발명해 냈다. 경제적 이유로 시작했지만, 어떻게 하면 서로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미국과 중국 같은 덩치 큰 친구들에게 밀리지 않을지 고민했던 결과의 산물로 유럽연합이 탄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 유럽은 꽤 평화로운 10년을 보냈다.


 고작 10년이지만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 역사를 생각하면 특별했던 10년이었다. 그랬던 유럽연합이 흔들리고 자기 나라와 민족이 최고를 부르짖는 지도자들이 늘어난다는 건 위험하고 불안한 신호다. 나랑은 관련 없는 일로 치부하기엔 이제 지구의 모든 정치 경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유럽의 변화는 돌고 돌아 내 삶에도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프랑스는 어디로...

 

        흥미로운 지점은 극우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일부의 적대감이다. 왜 우파를 극우라고 몰아세우냐는 의미일 게다. 극우라는 단어 대신 굳이 ‘강경 우파’라는 단어를 쓰는 언론사도 있다. 이해 가는 부분도 있다. 민족이 뒤섞여 살아본 경험이 없는 한국에서 ‘반이민’은 언제나 주류 정서였다. 그러니 반이민을 외친다고 극우 딱지를 붙이는 게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심지어 특정 민족을 대학살 한 유럽 땅에서 반이민 주장은 자연스럽게 인종주의와 연결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들의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르피가로 같은 프랑스 보수 언론은 물론 BBC 같은 공영방송들이 극우 정당에 대해 비판적 보도 태도를 유지하는지 이해가 된다.


 2023년 프랑스 내무부는 자체 공보물을 통해 정당의 성향을 분류했는데, 국민연합은 ‘Extreme Right’이라고 정확히 명시했다. 한 달 뒤 국민연합은 재심사를 요청했고, 프랑스 정부 기관은 2024년 3월 내무부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민연합을 극우로 분류한 게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게 부조리한 일인 것처럼, 극우를 극우라 부르지 못하는 것 역시 어색한 일이다. 동시에 간접적으로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는 셈일지도. 예전 한국 언론과 인터뷰했던 마린 르펜은 한국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한국의 이민 정책을 본받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한국처럼 이민의 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칭찬은 칭찬이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게 찜찜한 칭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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