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함에 있어 경비면에서 크게 부족함을 느끼며 여행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적은 나이에 나온게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일해보는 것에 대한 로망, 환상, 그리고 판타지라는게 있었다.
숙소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접하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인연들을 꿈꿨더랬다.
근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멕시코로 넘어가기 바로 전, 한인민박 스텝을 구하는 글에
이건 마치 운명과도 같다며 몹시 흥분했다.
그렇기에 천지분간 못하고 덤벼들어서는 주변을 제대로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곳에서 일했었다는, 그저 말을 아끼겠다며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동행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가자마자 마주한 관리 하나 안되어 있는 모습에 도망쳐야만 했다.
거지같은 조건을 현실적으로 계산할 줄 알았어야 했다.
그래 뭐, 후회는 늘 늦는 법이지.
숙식제공, 그리고 그 이상 그 이하 무엇도 없었다.
아침준비는 같이하고 나머지 식사는 아침 남은 걸 볶아서 먹여 대거나 기껏 라면 정도였으니
이하가 있었다고 해야하나?
1,2층 되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집 청소에 이른 아침 준비, 그리고 빨래
또 뭐가 있었더라?
아, 화장실 청소랑 근무시간이 아님에도 장보러 끌려나가던 것들?
결론은 일주일 하고 뛰쳐나왔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엿같아서
일한지 나흘쯤 지났을 때 식중독에 걸렸다.
난생 처음 식중독에 걸려본 경험은 인생 총 통들어 이정도로 아픈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먹은 것도 없는데 눈을 뜨면 쓸개즙을 토해내듯 위액을 토해내고
머리는 누군가 머릿 속에서 신나게 뇌혈관 위에서 널뛰기 하는 두통에 시달렸다.
그나마 옆에서 챙겨주던건, 그 곳에 장기투숙하는 언니오빠였다.
언니오빠가 사다준 약을 꾸역꾸역 한뭉텅이씩 집어 삼키고
어거지로 잠을 청하고 그러다 깨면 토하고 그렇게 또 잠들려 애를 쓰고 버텼다.
비싼 값을 치뤄놓은 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이 있는 곳까지 갈 자신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가다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렇게 꼬박 이틀을 아프고 나서야 서서히 살만하다 싶으니
그간 일 못시켜서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
"내일부터 설렁설렁 일하면 되겠다"
라는 말에 기가 한번 찼다.
설렁설렁이라는 말 하나 붙이면 일이 쉬워지나보다.
약 한번 사다준적 없고, 죽 한번 끓여준 적 없는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그래도 내가 하겠다고 한거 최소 한달은 해야된단 생각은 있었기에
그저 군말 않고 기력 빠진 목소리로 대꾸할 뿐이었다.
"네.."
그리고 나서 언니오빠가 챙겨준 죽을 먹으면서 잠시 얘기를 나누던 차였다.
어디선가 내려와서는 냉장고 안에 있는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면서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주기를 시전한다.
어떨결에 냉장고 정리를 돕고 있는 언니오빠나, 아직 몸이 성치 않은 나나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저 서로 어처구니 없다는 싸인만 주고 받을 뿐 굳이 이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이라곤 그저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을 테이블에 잔뜩 꺼내놓은 것 빼고는
설거지도 그 뒤처리도 어떨결에 전부 넘겨받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한마디 더 꺼낸다.
"내일 냉장고 청소좀 해놔요"
아프니 별거 아닌 일이 참 이렇게도 엿같다.
아침 준비에 1,2층 바닥 쓸고 물걸레질에 화장실 2곳 청소에
룸청소 그리고 침구정, 빨래까지 이제 냉장고 청소까지
인내심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그럼 사장님도 같이 하세요."
"아니 이거 뭐 어렵다고 그냥 대충 쓱쓱 닦으면 되지"
"냉장고 한대 청소하는데 최소 30분씩은 걸리는데 어떻게 대충 대충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기에서 다들 한 번씩 아프다고 청소 안해서 그런다고 생각하죠"
"청소는 오전 일이니까 오전 사람이 해야지"
"그럼 오후에는 무슨 일 하시는데요?"
"나는 뭐.. 손님 오면 손님도 받아야 하고 인터넷 안되면 인터넷봐주고.."
뒤에 개가 짖는 소리들이 이어진다.
"별거 아니면 그동안은 왜 안하셨어요. 앞으로도 혼자 다 하시면 되겠네요"
그리고 분에 못이겨 떠나기 전 양면으로 길게 편지를 남겼다.
뭐 대충 내가 오기전까지 청소하는 꼴을 못봤다는 위생 관념 이야기,
손님들한테 화장실 불켜놓은거 부터 시작해서 얹혀사는 사람취급하듯 잔소리하는 이야기,
유통기한 1년 지난것 까진 괜찮다며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에 대한 문제들,
그간 일했던 스텝 뒷다마, 그리고 손님들 뒷다마, 동종업계 뒷다마
여러가지 조언 섞인 충고를 정성스럽게 써내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몇 가지를 빼 먹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작 일주일 가량 있었으면서 마치 1년은 있었던 것 마냥 쌓인 이야기를 털어댔다.
그리고 소설 쓰길 좋아하는 사장에게 덧붙였다.
"나는 당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행여나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려온다면
이곳에서 보고 겪은거 그대로 알릴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남얘기 꾸며내서 뒷다마 하길 좋아하는 양반이
내심 신경이 쓰이긴 했는지 내가 여행하는 동안엔 그리 심기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오진 않았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했던가
그 사장에 대한 소식은 종종 들려오곤 했다.
구설수에 오르는건 기본이었고 마지막에 들은 소식은 성범죄로 인한 지명수배였던가.
한달 숙박료라고 해봐야 5-8만원이면 충분하던 곳에서
나는 무슨 미친짓을 했던 걸까
여행은 여행답게 그저 즐기자.
이렇게 또 한번 겪어보고 나서야 깨닫는다.
깨닫기 전엔 그랬다.
'나는 다를거야'
문제는 상대는 다르지 않다는걸 뒤늦게서야 깨닫는 멍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