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좋은 때도 있지만
내 성별이 여자인 것에 대해 딱히 별다른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성별에서 주어지는 이득을 이야기 할 수도, 불평등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니 말도 맞고 얘 말도 맞아"
답이 있는 문제를 가지고 그 싸움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굳이 없었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난게 끔찍한 때가 종종 있다.
마법이라던지 혹은 그 날이라던지
말로 내뱉는게 뭐 그리 어려운지 다들 돌려서 말하는 '생리'날이다.
거기다 여행중의 생리인 것도 끔찍한데,
1박2일에 거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날에 터져버린 생리라니
이해 못할 이 상황을 이해시키려 애를 써본다면,
똥싼 기저귀를 차고 언제 서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1박2일 여정에 거쳐
기저귀 갈 타이밍만 기다려가며 행여나 움직이다 똥이 옆으로 새지나 않을까
제대로 잠도 못자고 불편한 채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거?
그렇게 하염없이 기저귀 갈 시간만 기다린다고 해서
나를 기다리는건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 더 미치게 만든다.
남미의 화장실에서 변기커버는 찾아보기 어렵고,
물론 깨끗한 화장실 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행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 있었더라면 아마 이때가 아니었을까
에콰도르에서 페루의 와라즈까지 이동했어야 하는 날,
그 시작과 동시에 생리가 터졌다.
"와 ㅆ.."
아 욕나올뻔
근데 욕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나 어떡하냐.."
이 긴 시간동안 함께 이동할 동행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여자의 고충을 알리 없는 남자친구는 크게 도움이 될리 만무했다.
뭐 사실 안다고 해도 해줄 수 있는건 없다는게 펙트지만.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에서 비행기 타고 에콰도르 수도 과야킬 공항으로
그리고 과야킬 공항에서 다시 터미널로 향하고
직행 노선도 없었기에 과야킬에서 피우라까지 버스타고 이동 후
그 곳에서 다시 또 트루히요 까지 그리고 또 한번 택시타고 터미널까지 이동 후
와라즈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략 30-40시간정도의 시간이었을까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도착해서도, 산을 오르고
그렇게 힘들게 올라서는 '1'과 싸우고는 그 호수 꼭대기에서
같이 내려가기 싫다며 혼자 미친듯이 뛰어 내려갔다.
그리곤 급하게 내려온 탓에 올라가서도 안걸린 고산병에 걸려
정신못차리고 쓰러졌다.
별지랄을 다 떨었다 정말.
대게 연인과 별거 아닌 일로 싸우고, 그게 뭐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일들이 많은데
이때 싸운건 명백히 내 잘못이었다.
벌받은거지 뭐.
아프다는 치트키로 어찌저찌 화해하고 다른 동행들과 다 같이 페루 '리마'로 넘어갔어야 했지만,
아킬포(와라즈의 한국인이 많이 찾는 유명한 호스텔) 삼형제가 나를 둘러싸고 너무너무너무 걱정해주시는 덕에 넘어가질 못하고 둘만 남아 하루를 더 보냈었다.
와라즈에서 리마까지 가는 시간도 적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렇게 가다가 누가 죽었어"
라고 말해주는 아킬포 형제의 말을 새겨듣고 하루정도는 푹 쉴 수 밖에 없었다.
생리에 고산병까지 진짜 가지가지 했다 정말.
그리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걸 보니
나도 인간이 맞긴 한가보다.
그럼에도 다시 그 고생을 한다고 해도 다시 가고싶단 생각이 문득 한번씩 드는걸 보면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