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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Me Jun 19. 2020

쿠스코에 가면 '파비앙'을 찾지요.

그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마추픽추' 그 곳에 가기 전날부터 가슴이 뛰었다.

TV에서나 보던 모습을 실제로 보기에 앞선 그 설렘은 늘 새롭다. 

'마추픽추'의 관문이었던 쿠스코를 가기 전부터 마냥 쉽진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쿠스코에서 보내려던 계획과 달리 공항으로 가려던 날 아침. 

이상하게 그날 따라 이메일을 확인하고 싶었던 아침이었다. 


평소엔 들여다보지도 않아 스팸메일과 광고메일이 뒤범벅 되어있는 너저분한 그 이메일을. 



그리고 비행기 오버부킹으로 인한 캔슬 메일이 한 통이 도착해있었다. 

어쩌면 공항가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인터넷으로 티켓을 알아봐도 도통 터무니 없는 가격들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결국 발품을 팔아 리마의 투어사, 항공사를 안 가본 곳 없이 다뒤져서는 결국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들렀던 곳에서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쿠스코 숙소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파비앙'을 찾았다.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투어사(투어사 이름이자 사장이름)인 만큼 투어 안내문도 한글로 되어있고, 

한국인 직원도 있었기에 언어가 불편한 여행객들에게 아주 적합한 투어사임은 분명했다. 



사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때는 '파비앙'에서 주는 마추픽추 티셔츠만 봐도 

이 사람이 '마추픽추'를 파비앙을 통해 다녀왔구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었다. 

근데 다들 여기를 찾다보니 괜히 다른 곳을 찾고 싶기도 한 청개구리 심보가 들었지만,

이내 귀차니즘이 엉덩이를 의자에 딱, 고정시키곤 움직일 생각을 않더니 일사천리로 이 곳에서 모든 투어를 예약했다. 


사실 어딜가도 비슷할 것 같단 생각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이게 참 뭐랄까? 

좋다고 해야 할까 욕을 해야 할까 싶은 그런 일들이 더러 있었다. 




--- 



쿠스코의 근교를 둘러 볼 수 있는 '원데이'투어를 돌 때 였다.

안내받은 투어 출발 시간에 맞춰 투어사에 도착하니 투어사 안엔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모인 투어인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틈을 비집고 들어가 근교투어 차량을 행여나 놓칠까 차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올 뿐, 1시간 가량을 그렇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방치당한채로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스코 근교투어를 느긋하게 보고 싶어 아예 하루를 통으로 빼고

'단독투어'라고 했던 원데이를 예약했으나 

짧게 근교를 보고 마추픽추로 향하는 투어와 짬뽕이 되어 '원데이'의 의미가 무색해진 투어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저 투어 시간에 맞춰지다 보니 온 시간이 무색하게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던걸 알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영문도 모르고 마냥 구석에 서서 기다린 것도 어이가 없는데 

단독투어도 아니었다면 굳이 이 투어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니, 이럴 거면 투어시간을 한 시간 뒤로 알려주던지

투어도 단독이라더니..아 짜증나" 


묵묵하게 듣고만 있는 "1" 이 이해가 안간다는듯 옆에서 계속해 투덜거리고 있으니 

그제서야 한 마디 내 뱉은 말이 나에게로 꽂혔다. 


"아!! 그만좀해!!" 


갑자기 짜증내며 소리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람 반, 더 빡침 반 

거지같은 기분이다. 



내가 짜증을 내면 듣고 있는 옆 사람인 본인도 짜증이 나니 짜증을 그만 내라는 건데, 

이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싸해져선 투어 차량에 올라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해서 까지도 

그 분위기는 풀릴 여지가 없었다. 



이게 다 파비앙 때문인 것만 같고, 뭐라 말은 못하고 꾹 입다물고 있으려니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소리라도 빽- 하고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싸한 분위기로 첫 코스를 마치고 나서야 답답함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짜증을 계속해서 내니까 듣고 있는 너도 짜증나는건 알겠는데, 

그냥 같이 공감해주고 욕한번 내짓거려 주는게 그렇게 어려워?" 


그제서야 정말 알겠는건지 단념한건지 모를 알겠단 말에 화를 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매한 기분으로 멍하니 차창 밖을 얼마나 바라봤을까. 


흔한 연인 싸움에 온 진이 빠졌다. 


그래도 속 없이 나는 그저 또 웃었다. 

그리고 속 좁은 나를 따라 그도 그저 웃었다. 






쿠스코 근교투어도 가고, 무지개산으로 알려진 '피친차'산도 다녀오고 대망의 '마추픽추'로 향하던 날. 

이번엔 부디 별 탈 없기를 바래보지만, 늘 거지같은 일 하나정돈 껴줘야 여행이지. 



행여나 생길 문제들에 대비하기 위해 대부분 1박 2일 혹은 2박3일로 가는 마추픽추를 

무려 3박4일 일정을 잡았다. 


쿠스코에 오면 바로 마추픽추를 기차타고 슝- 하고 갈 수 있는건가 했더니 이 것 또한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제주도를 가기 위해서 필히 서울로 온 다음, 김포공항에 가서 제주도를 가야하는? 

바로 김포공항으로 갈 수는 없는 거지같은 루트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김포공항에서 제주도까지 대게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돈을 아끼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는 선택을 한다 .



뭐 말은 이해하기 쉽게 배라 말하지만, 기차를 타고 가야 할 길을 걸어 가는 루트를 택했다. 

긴말 필요없이 돈을 아껴야 하는게 제일 큰 이유였고, 산을 올라야 하는 길이었더라면 고민 할 필요도 없이 바로 기차를 선택했겠지만 산은 산이지만 거의 평지라고 볼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런 평지길 3시간쯤이야 하고 조금 쉽게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힘든건 아니었지만, 힘들지 않은 것도 않았던 그런 길을 한참이나 걷고 또 걸었다. 

터널로 들어설 때면 '센과치히로'가 그려지기도 하고, 

주변 경관이 시선을 잠시 앗아가던 순간순간이 존재하던 그런 곳이었다.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서 지나가는 기차에 이따금 종종종 손을 흔들면 떠나간 기차소리만 귓가에 남아 웅웅거렸다.

 


해가 저물어가고 저 멀리 마을에서 내비치는 불빛들이 선명하게 보일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숙소로 아직 한창 공사중인듯한 모습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술먹고 올라가다 떨어져 죽을 것 같은 난간 없는 계단을 지나 방을 배정받곤 

그저 따듯한 물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사람이 새삼 소박해진다. 


도착해서도 끝난게 끝난게 아니다. 

짐을 풀고 이내 다시 밖으로 나가 마추픽추까지 올라가는 버스 티켓을 미리 구입하기 위해 나왔다.

여기저기 돈,돈,돈 

돈나가는 일만 수두룩 하다.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버스를 타러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일찍 일어나는 새, 그 앞에 일찍 일어나는 벌레도 있다고 했던가 

세상 부지런한 사람들로 가득 하다. 


살면서 이정도로 긴 줄을 본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나긴 줄에 오늘 올라갈 수는 있을까 걱정스레 앞쪽을 보고 있자니 계속해서 쉴새 없이 오는 버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버스 타면 금방일거라 생각했던 길은 한참을 오르고 으르고, 자다 깨길 몇 번 반복한 후에야 도착지를 알렸다.



'와아'하는 함성대신 안개 속에 갇혀 마추픽추가 어느 방향에 있을지 고개를 두리번 거리느라 분주했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걷힌다고 하니, 굳이 이렇게 일찍 올라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구름 속에 갇혀있는 기분이 내심 나쁘진 않았다.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했기에 조급한 사람들 사이로 속 없이 해맑았다. 



몇 걸음이라도 놓치면 구름 속에 가려 희끗하게 보이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어차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떠나고 터만 남은 이곳에서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하는 상상만 잠시 들었을 뿐이었다.



가이드의 품을 벗어나 한 곳에 걸터 앉아 그저 멍하니 하릴 없이 기다리다 지쳐 카페를 찾고 조금은 걷혔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다시 들어와서 기다리기를 몇번이나 반복했을까 


낮시간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다 이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왈칵'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10초?




벅찬 감동이랄 것도 없이 뒤에서 툭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덕에 감동은 물건너가고, 

그 뒤로 안도감이 들었다. 


'결국 내가 여기에 왔구나.'



보지못할 수도 있단 걱정 끝에 보았다는 안도감으로 뒤바뀌는 순간부터 

그냥 사진으로, 혹은 영상으로 많이 보던 그 광경이 눈 앞에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덜 찾아볼걸, 공부는 조금만 할걸 

마치 긴 시간동안 끌고 왔던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종종 드는 시원 섭섭함이 감성을 한껏 훼방 놓았다. 



그럼에도 이따금 10초 남짓 그 여운이 종종 이곳을 그려낸다. 

특별하길 바랬던 마추픽추는 그렇게 익숙한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문제는 마지막 돌아가는 날, 기어이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안개가 걷히지 않으면 3박4일인데 4일동안 못보겠어 하고 여유 부리던 우리와 달리 

남미여행에 있어 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은 이곳을 당일, 혹은 1박2일로 오고가곤 하는데 

아침 일찍 올라가서 보고 점심 쯤엔 내려가서 다시 돌아가는 투어버스에 탑승해야 하는 사람들을 몇몇 마주쳤었다. 내려가야 하는 시간까지 구름이 걷히질 않자 볼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버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투어사에선 계속 기다리지 않을까요?" 

"뭐 기다리다 가겠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나눴던 대화가 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돌아가던 날, 예정된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오늘 돌아가야 할 사람들 몇몇이 오지 않았다. 



"30분 지났으니까, 이제 가자" 


드라이버를 재촉해보지만, 계속해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오늘 저녁 5시쯤 도착예정인 일정이었기에 12시전까진 도착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있는 우리로선 미칠 노릇이었다.


"우린 오늘 '코파카바나'에 가는 버스를 타야해. 왜 출발을 안해?" 



짜증섞인 투정을 계속해 뱉어냈지만, 유심도 없으니 대표인 파비앙에게 말할 수도 없고 

알겠다고 금방이라도 갈 것처럼 대답하곤 이내 사라져서 찾으러 가면 

다른 드라이버들과 노가리 까고 있는 모습에 극 대노 했다. 



출발 시간이 늦춰진데에 있어 한 두번 여기 오는 사람들도 아닐 테고,

안오는 이유를 뻔히 아는 이 상황에 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린단건 놀기 위한 핑계가 분명했다. 



같은 말을 한참이나 반복해 쏟아내고 나서야 출발 예정 시간 2시간30분이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늦게 출발한 덕에 해는 금새 떨어져 어둑어둑한 밤 길을 달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앞에선 사고가 났는지 사고차량들로 인해 한적한 시골길이 소란스러웠다.



오늘 버스 못타면 내일 타면 되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기엔 

연말이라 대부분의 숙소들이 Full 이었기에 이 곳에서 묵을 숙소조차 없었고,

밤 12시가 다되어야 도착할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숙소를 알아보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때, 드라이버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파비앙이었다.



'이미 도착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도착을 안하고 있으니 전화가 오지'

입을 한껏 내밀고 심통이 난채로 씩씩 거리며 드라이버를 쏘아봤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한번, 나를 한번 가르킨다. 



"바꿔줘"



드라이버의 전화기를 받아들곤,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2시간 반뒤에나 출발했다는 이야기와 여기 사고까지 났으며 오늘 '코파카바나'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를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더 복창 터질 것 같은 가슴에 

갈 수 있을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파비앙의 그 말 한마디에 끓어오르는 화를 천천히 식히며 

그렇게 쿠스코 시내에 도착할 때 즈음 핸드폰을 보니 시간은 어느덧 11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화낼 기운조차도 축 쳐진듯 화낼 기력조차 남질 않은듯 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는 터미널까지 가야 하는 것도 일인데, 

파비앙 투어사에 맡겨놓은 짐까지 찾아와야 했으니 이 답없는 시간에 그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저 멀리 파비앙이 급한 듯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엔 우리의 짐더미도 함께.




마티즈보다도 훨씬 작았던 티코만한 차에 20g남짓의 배낭3개와 성인 5명이 짐과 하나되어 

테트리스 조각처럼 끼워졌다. 

버스를 이미 놓쳤단걸 알고 있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현지인이니 무언가 방법을 찾아줄 거란 작은 기대는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선 파비앙이 그의 와이프와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티켓을 구하려 애를 쓰는 모습에 

어느덧 화도 누그러들었을 무렵 당당하게 손에 티켓을 쥐고 달려와 

무슨 말을 할 새도 없이 바로 뛰어야만 했다. 

비록 환승을 해야 하는 티켓으로 직행은 아니었지만, 그가 애써주었단걸 모르지 않기에 

그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랜 친구 배웅하듯 밖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는 그의 인사에 어느덧 따라 웃으며 손을 흔들고, 

그가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접어들고서야 버스 등받이에 털썩 기대어 축 늘어졌다. 







"평탄하게좀 여행하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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