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전부터하기 시작한_
[타의에 의한 자의적 생산 시스템_글쓰기 모임]
2021.09.17. 금, 오늘. 그러니까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D-100일 되는 첫날이다.
오늘부터 100일의 시간이 지나면 성탄절을 오고, 머지않아 올 한 해가 끝날 것이다. 연초에 암묵적으로 세운 계획들이 있었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자기 합리화 늪에 빠져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작년 말 엄마의 폐암 진단 이후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로 올 상반기는 정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저 '쉼'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반기에는 경력 공백을 채우고자 다시 일(정확히는 커리어 쌓기)을 시작하려 했는데, 우연히 들어온 잡 오퍼로 그간의 경력과 무관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 새 직장에서 근무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정신없이 지내온 한 해가 이제 겨우 백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9월 중순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허둥지둥 한 해를 보내기 싫었다. 근 몇 주간 이어지는 나태함이 자책감을 낳았고, 자책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국 타의에 의한 자의적 무언가를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동안 쓸 때 없는 자존심으로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내가 주는 당근과 채찍은 경계가 모호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문을 두드린 글쓰기 모임. 칼 같은 새벽 기상에다가, 가벼운 운동, 심지어 과제로 글까지 쓰는 모임에 가입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모임에 의존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자존심이 밥 먹여줄 때가 아닌 것 같다.(그리고 때론 그 자존심이 정말 쓸모없는 아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100일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모임에 나를 맡겨보기로 한 것이다. 100일 동안 차곡차곡 쌓인 꾸준함의 일상과 결과물들이 스스로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길 바라며, 오늘 첫 시작을 했다. 모임의 새 멤버가 되어 글쓰기의 첫 주제로 자기소개를 받았다. 어렸을 때는 무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나가서 자기소개뿐이랴, 노래도 부르며 맘껏 끼를 뽐내는 아이였는데, 요즘은 자기소개를 할랍시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인 자기소개의 단골 레퍼토리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고.
그래서 복기해 보기로 했다. 최소 법적 나이로 성인이 된 순간부터, 그러니 주체적으로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그 시기 즈음으로부터 나를 돌이켜보기로 했다.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조민아라고 합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식이 매우 서툰 삼십사춘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밀레니얼 세대 부모들을 위한 뉴스레터 '호락호락(好樂好樂)'https://www.instagram.com/hello.horak/의 에디터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5살 아들 '이 도' 엄마에도 겸직 중입니다.
대학 시절, 저는 음주와 가무 빼고는 잘하는 것이 없었고 동기들처럼 사기업에 취직해서 직장인이 되는 것에 뜻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대학 졸업반 가을, 점심 식사를 약속한 친구가 기업 현장 리쿠르팅에 다녀온다길래 건물 밖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그 기업 대졸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저의 첫 직장이었던 그 회사는 24살 사회 초년생을 명품백 두른 커리어 우먼으로 만들어주었고, 저 역시 그 회사에서 뼈를 갈며 일했습니다. 이렇게 멀쩡한 직장 잘 다니던 저는 불 같은 사랑에 눈이 멀어 바다 건너 나라에 사는 아는 오빠이자 지금의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했고, 장거리 연애의 종점으로 중국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해외 거주로 인한 퇴사로 저는 다시 학생(백수) 신분이 되었고,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느닷없이 소중한 보물을 얻어 급하게 귀국을 했고, 출산 후 만 2년 넘게 육아에만 올인했습니다. 저와 아이 모두 어렸고, 모든 것이 서툴렀던 초보 엄마의 시간을 아-주 혹독히 보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세운 가정 보육의 만기를 채우고 작년 봄, 아이가 4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보냈습니다. 아이를 보육 기관에 보내자마자 저는 모교 TESOL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잠시 새로운 분야의 학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정신없이 맞이한 올해 새해 첫날. 저는 이번 해 상반기가 끝나는 6월 30일까지 '작정하고 쉬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불안해하고 조급한 성격이라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 게으른 사람이지만, 나태한 것을 극혐 했던 모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대놓고 쉬기로 결심했다니 제 지인들은 팔자에 절대 못할 짓이라 했었습니다. 하지만 꾸역꾸역 (술)먹고, 놀고 하며 상반기는 정말 '아무것도'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로 보면 상반기의 쉼은 득이기도 했지만 독이기도 했습니다. 적당한 여유 포인트도 찾았지만, 반면에 초조함이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어찌 되었든 6개월간의 쉼을 체험했고, 올 하반기부터는 약 5년 가까이 되는 경력 공백을 다시 이어나가고자 현재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전 회사와 확연히 다른 사내 구조 및 규모, 업무 성격 등 모든 것들이 낯설고 새롭지만 하루하루 적응해 나가는 중입니다.
여전히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철이 덜 든 엄마이지만, 최근 들어 갖게 된 또 다른 타이틀인 워킹맘 역할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터와 가정에서 임하는 각기 다른 역할극에 부디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민아야. 어쩌겠어. 그냥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