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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아 Sep 20. 2021

유치원 가정통신문에서 배우는 에디터의 자세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매주 금요일, 나는 아이를 하원 하자마자 바로 하는 일이 있다. 아들의 유치원 가방에 들어있는 가정통신문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들 유치원 알람장에 종이 가정통신문이 두세 번 접혀 꽂혀있다. 


가정통신문은 말 그대로 유치원에서 가정에 있는 학부모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하나이다. 보통 가정통신문에는 유치원에서 다음 주 계획하고 있는 일정들을 일러주고, 월말에는 다음 달 일정을 한 번 더 정리한 공지가 있다. 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유치원에서 흔하게 쓰고 있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이나, 어플리케이션 알람보다 손으로 펼쳐 보는 이 지류 형태의 가정통신문이 마음에 든다. 그 중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들 유치원 가정통신문에 적혀있는 선생님의 글이다.


요즘 날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한다. 초가을은 무조건 교실이 아닌 야외로 나가야 한다. 가을 햇볕은 아이들의 얼굴을 건강하게 태우고, 몸에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골목 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은 내가 '주인공'이지 않은 것, 내가 먼저이지 않은 것, 내 옷을 잡아당기는 것, 혹은 우리 편이 느릴 수 있는 것 등의 다양한 불편한 상황들에 당황하고 하기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께서 경험하셨듯 그러한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함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도네 유치원의 가정통신문은 단순히 프로그램 일정만 전달하지 않는다. 월별 이슈에 맞게 어떤 프로그램이 기획되었으며, 왜 이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좋은지, 그래서 어떻게 방식으로 진행해 나갈 건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준비물 역시 어떤 사유에서 그 준비물이 필요한지 설명해주고, 때론 그 준비물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대체할만한 것이 있는지도 상세히 적혀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있는 날 아침, 아이들이 즐거운 기대감을 갖고 등원할 수 있게 학부모의 독려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덧붙인다. 기획 의도, 진행 방향, 운영 방식, 실전 적용 팁 등 어느 것 하나 빈틈없이 참 단단히 구성되어있는 글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내용을 전달하는 글은 자칫하면 딱딱해지거나 다소 장황할 수 있는데, 이 가정통신문은 온화한 어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를 살갑게 전달한다. 이러니 내가 매주 금요일을 기다릴 수밖에.






가정통신문이 내가 애독(愛讀)하는 위클리 매거진이라면, 유치원에서 주중 특이사항 전달 시 사용하는 전체 문자는 읽는 순간 나를 잠시 미소 짓게 하는 엽서와 같다. 전체 알림 문자 하나에도 유치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는 표현을 '갑자기 결혼을 꿈꾸는 교사가 생겼다'라고 표현하다니. 문자를 읽는 학부모들은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들 딸이 얼마나 앙증맞게 솜씨를 뽐냈는지 머릿속으로 단번에 그려낼 수 있다. 문자에 적힌 마술 공연은 거의 매주 수요일마다 원장님이 직접 기획하시는 시간이다. 원장님은 마술사가 되어 여섯 개 반을 순회하신다. 아들은 수요일 하원 후 집에 오면 '원장님이 자기 머리에 뿌려준 마법의 가루가 소중해서 오늘 샤워는 거른다'는 말도 안 되지만 귀여운 변명을 한다. (원장님은 아이들의 동심을 홀린 진짜 마법사다.) 원감님은 매주 화요일 성교육과 안전 교육을 담당하신다. 아들은 원감님에게 확실히 교육을 받은 이후, 얼마 전 (늘 장난 삼아) 꼬추 보여달라는 할아버지의 부탁을 완강히 거부해서 친정 아빠가 적잖이 머쓱해하셨다. 이처럼 주 담임 선생님 말고도 유치원 행정을 담당하는 원장님, 원감님, 서무 선생님 모두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살을 부딪치며 지낸다. 여러모로 나는 학부모로서 아들 유치원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우리 아들은 비싼 사교육비를 매달 내는 뭇 유치원 원아들과 비교해 손색없을 정도의 고퀄리티 수업을 받고 있다.



연초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원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님, 아버님, 할아버님, 할머님. 안녕하세요. 제가 원래 웃는 모습이 진짜 이쁜데 마스크 때문에 웃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쉽네요."라고 운을 띄우며.(혹시 나와 MBTI 같은지 여쭤보고 싶었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학부모 참관 수업도 진행할 수 없고, 매년 봄가을에 있는 체육 대회도 개최하지 못하기에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들과 최대한 안전하고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소통에 더 힘쓰겠다 하셨었다.

원장님을 비롯한 이 유치원 선생님들은 연초에 학부모들과 약속했던 다짐을 정말 최선을 다해 지키고 계셨고, 학부모로서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나는 콘텐츠 기획자이자 뉴스레터 에디터로서 참 많은 점을 본받고 싶고 배우고 싶다. 얼마 전부터 개인 SNS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에디터를 위한 강의', '에디터에게 도움 되는 서적 추천' 등의 키워드를 자주 접했다. 물론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에디터인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콘텐츠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가정통신문을 통해 에디터 자질의 핵심을 간접적으로 맛본 것 같다. 더 정확히는 내가 되고자 하는 '에디터의 이상향'을 엿보았다.



내가 지향하는 에디터의 바람직한 자세는 이렇다.(난 이렇게 되려면 멀었다)

글이 솔직하고 담백하며 따뜻할 것 
글이 촌스러워도 좋으니 거추장스럽지는 말 것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 실천하게 할 것 
같은 표현도 색다르게 할 것. (단,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튀지 않을 것)



지난 주도 아이를 하원 하자마자 잠시 동네 벤치에 앉아 아이에게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이고 나는 급하게 가정통신문부터 꺼내 읽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추석맞이 전통 혼례 체험을 했습니다. 한복을 입고 등원하는 모습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들 예쁘고 고운지, 보면서 함성이 절로 나와 목이 아픈지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게 되었네요.' 

나는 -아하! 너무 좋아서 호들갑을 떨며 어쩔 줄을 모를 때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또 머릿속 메모장에 새겨 적었다. 그리고 나 역시 가정통신문을 읽는 내내 웃음과 함성이 절로 나왔다.





photo by_ㅈㅇ유치원 잎새반 담임 선생님



금지옥엽 우리 아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힘써주고 계신 이도네 유치원 모든 선생님들이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셨으면 좋겠다. 



※ 커버 사진 설명 : 이도네 반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찍으신 잎새반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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