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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아 Sep 21. 2021

너에게 주고픈 3kg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우리 아들 이도는 올해 5살이고, 개월 수로는 44개월이다. 이 나이와 이 월령대 아이들의 표준 몸무게는 남아 기준으로 15~16.8kg이다. 하지만 우리 이도는 14kg가 조금 넘는다. 딱 봐도 날씬해 보이는 우리 아들은 몸무게상으로 표준 미달이다. 간혹 억지로 14.5kg가 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날은 내가 좀 더 무리하게 먹였고 이도가 체중계에 오르기 전 우유 한 잔을 원샷해서 그렇다. 태어났을 때 몸무게는 3.11kg으로 지극히 정상 축에 속했지만, 신생아 때부터 흔히 말하는 뱃골이 작았고 돌 때 까지도 분유 총량이 아주 잘 먹는 백일 아기의 양을 겨우 넘길 정도였다. 두 돌까지는 영유아 건강검진 몸무게 부분에서 겨우 평균 범위를 유지했으나, 결국 작년 가을부터는 하위 19%가 되었고 아마 지금은 하위 10%도 안 될 것이다. 48개월이 되기 전 영유아 건강검진을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괜스레 검진 시기를 좀 더 늦추고 싶다. 조금이라도 찌워서 결과표를 받기 위해서다. 나를 포함해 몸무게 미달인 자녀를 둔 엄마들은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에 적힌 숫자에 한 없이 작아진다.



이도는 입이 짧고, 식탐이 없으며, 한의학적으로 비위가 좋지 않고 위장이 약하다. 전형적으로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타입. 엄마가 부지런히 챙겨 먹이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엄마가 아무리 챙겨 먹여도 통통하게 만들기 어려운 아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고, 식탐이 없으며, 한의학적으로 비위가 좋지 않고 위장이 약했다. 이런 내가 지금 사람 구실 하며 사지육신 멀쩡히 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우리 친정 엄마의 정성과 노력 덕분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매해 보약을 달여주셨고, 몸에 좋다는 것은 가리지 않고 먹였다. 난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가 유명한 사슴 농장에 있는 사슴 하나를 통째로 사서 환절기마다 사슴피를 나에게 먹이셨다. 피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박카스를 왕창 탄 그 시뻘건 주스를 다른 음료라 속이고 내 눈을 가린 다음 먹였다. 엄마는 나에게 줄 간식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인스턴트식품은 절대 먹이지 않았고, 늘 손수 키운 농작물로 영양가 있는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다행히)둘째 동생, 막내 동생은 자라면서 먹는 문제로 절대 엄마 속을 썩인 적 없었지만 유독 첫째인 나만 그랬다. 난 늘 둘째 여동생보다 키가 작아서 어딜 가면 내가 동생으로 오인받은 적이 많았고, 친척들 사이에선 한 살 많은 오빠 빼고는 동생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작았다. 엄마는 나의 왜소하고 작은 체구 때문에 알게 모르게 속상한 적이 많으셨을 테고 그 속상함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달래고자 그리도 모진 모성애로 나를 이만큼 건강하게 키우셨다.



부모와 아이의 기질은 다를 수 있지만, 부모와 아이의 체질은 기가 막히게 같다. 이도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제발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만 골라 닮았다. 그러니 이도가 또래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고 키가 작은 것은 날 닮아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엄마가 된 나는 지극정성으로 날 키운 친정엄마처럼 아이의 식습관에 대해 그리 헌신적이지도 않다. 난 그럴 위인이 못 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 말 잘 듣고 밥도 잘 받아먹고, 먹는 즐거움이 삶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금 내 몸의 유전자가 좀 더 포동포동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로 바뀌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최소한 임신 기간에라도 영양가 좋은 음식 잘 먹고, 잘 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었더라면 지금 이도가 몸무게는 좀 덜 나가도 밥은 잘 먹는 아이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면 결국 다 내 탓이다.



평소에 이도는 자기와 잘 놀다가도 식탁 머리 앞에서 예민하게 바뀌는 엄마를 보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아이 앞에서 웃었다 화냈다 하며 조울증 환자처럼 구는 엄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에도 아이를 달래 가며 아이의 밥숟가락을 내가 대신 들고, 조금이라도 살찔 수 있는 단백질 위주의 반찬을 골라잡아 먹였다. 정작 나는 최근 급격히 불어난 하복부 살들로 예민해져서 밥을 깨작깨작대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드는 생각이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몸무게 3kg만 이도에게 떼어주고 싶다. 얼마든지 줄 수 있는데 말이다. 딱 3kg만 빼고 싶다.



이도가 44개월이 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44개월 차 엄마가 될 때까지 우리 모자(母子) 사이의 남아 있는 과제는 건강한 식습관이다. 자녀 식습관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육아 전문가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엄마의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참 그것이 어렵다. 내가 물려준 체질로부터 야기된 죄책감 때문인 건지 그래서 더 오기로 쓸 때 없는 욕심을 못 버리는 건지 나는 오늘도 아이 뒤를 숟가락 들고 따라다닌다.





오늘 추석 저녁, 시댁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손녀 하나 손자 둘이 모여서 옹기종기 앉아 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니, 잘 먹지 않고 체격도 마른 이도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도의 고종 사촌들은 키도 몸무게도 영유아 건강검진 상위권 성적에 속하는 아이들이며, 식탐이 어마 무시하다. 아버님이 한 말씀하셨다. "OO이 봐라, 아이고 참 잘 먹네. 그래서 투실투실하고 남자답고 멋지다." 아버님의 말씀에 괜히 옆에서 이도 밥 시중을 들고 있는 내가 숙연해졌다. 나에겐 익숙한 장면이지만 올해는 유독 더 내가 움추러 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도에게 더 분주하게 밥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오늘도 엄마가 욱여넣는 밥을 겨우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할아버지의 말을 다 듣고 있었던 이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이도에게도 눈과 귀가 다 열렸을 텐데 말이다.



나는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도는 누나와 동생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밝고 즐겁게 뛰어놀았다. 그리고 본인이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을 스스럼없이 사촌들에게 나눠주면서 함께 어울려 잘 놀고, 말 못 하는 동생이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장난감을 말없이 뺏어가도 그저 허허-하고 너그럽게 웃었다. 또래 아이들과 해맑게 놀고 있는 이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그렇다. 저 아이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든 것에 모자람이 없으며 모든 것이 소중한 아이인데, 엄마의 지독한 아집 때문에 먹는 문제에만 갇혀있는 아이였다. 뿐이지 누구보다 편식 없이 야채, 잡곡 등 건강한 음식도 잘 먹고 지금까지 잔병치레 없이 잘 커주고 있는데 어리석은 엄마가 부분만 보고 아이의 전체를 세심히 둘러보지 못했었다. 이도에게 정말 한 없이 미안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린 날씨에도 영롱하게 빛나는 대보름을 보았다. 달리는 차 창문으로 이도와 나란히 앉아 소원을 빌었다.


모 : "우리 이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해 주세요."

도 : "오늘 밤도 재밌는 꿈 꾸게 해주세요."(꺄르르)



이도가 꿈꾸는 오늘 밤과 앞으로의 미래가 이도 말처럼 재밌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온화한 달빛이 부족한 엄마를 성스럽게 치유해주고, 내일 더 괜찮은 엄마가 되라고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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