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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아 Nov 04. 2021

인형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되고 싶었던_


오늘도 새벽에 겨우 기상했다. 겨우 기상했다는 것은 하마터면 늦잠 잘 뻔했지만, 화들짝 놀라 깼다는 것이다. 알람이 귀를 찢어지도록 울려야 겨우 일어난다. 결국 일어나서 세수 한 번 하고, 보리차 한 잔, 급하게 만든 브런치 한 접시, 마지막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책상에 올려두고 노트북을 연다. 오늘은 새벽 글쓰기 모임의 한 글벗님이 쓰신 글로 글감을 받아 다른 글벗들이 글을 쓰는 날이다. 글벗님이 큐레이션 한 콘텐츠로 다른 분들이 생각을 이어나가 글로 쓰는 것인데, 나는 이 큐레이션 글쓰기가 처음이다. 오늘의 글벗님은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를 읽고 느끼신 모든 것들과 책의 일부를 필사하신 것들로 아래의 질문을 주셨다.



1. 요즘 내 몸과 삶의 균형은 어떤가요?

2. 내 안의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3.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하고 있나요?

4.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요?

5.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써 주세요.



질문을 보자마자 숨이 막힌다. 마치 취준생이 마지막 임원 면접을 앞두고 복도에서 기다리며 느끼는 심정이다.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을 답할지,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초조해진다.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미처 정리가 되지 않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답이 나의 전체를 규정해버릴까 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질문에 대해 여러 대답 중 하나의 대답이라도 낼 수 있음에 의의를 두며 글을 이어 나간다.





1. 요즘 내 몸과 삶의 균형은 어떤가요?


심신의 균형은 완전히 깨진 지 오래다. 과장해서 만신창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우선 건강 관리에 있어서 나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어떤 장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먼저 신체의 정상 기능 활성화를 위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올해 상반기다. 이전 삼십삼 년간의 인생 동안 인위적인 운동은 내 삶에 딱히 필요 없었고, 운동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하루의 일과에서 쏟아내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 침대에 눕기 직전까지 에너지를 소진하고 방전된 상태로 자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몸에 대해 좀 더 신경 써야겠다고 한 것도 사실 내면의 건강을 회복하려 하기보단 외적으로 보이는 심미적인 기능을 돋보이기 위해 운동했다. 1대 1 트레이너님이 꼼꼼히 지도해주셨지만 사실 완전 날씬해 보이는 운동, 즉 외적으로 보이기에 허리가 잘록해 보이고 힙업 되어 보이는 운동 외에는 관심도 없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근력 운동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지만, 겉으로 듣는 척만 하고 속으로는 연예인들처럼 삐쩍 말라 보이는 상태에만 집중했다. 식단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저 내가 저체중에 속하므로 잘 먹고 잘 자고 균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해주셔서(감사하게도) 맛도 없는 닭가슴살을 먹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짜고 맵고 자극적인 것을 즐겨했으며 술은 평소 음주 습관대로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트레이닝이 횟수를 다 채울 때쯤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새 일은 몇 년 전 마지막으로 했던 동적인 일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일은 의자, 책상, 노트북만 있으면 끝나는 일이다. 장소도 굳이 상관이 없기에 나는 회사 측 배려와 계약 시 조건을 절충해서 거의 90% 이상 재택근무를 했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오전 10시부터 아이 하원 전 오후 4시 30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만 했다. 이렇게 앉아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하복부에 불필요하 살들이 모여 몇 달 전 입었던 바지들이 맞지 않는다. 다이어트한답시고, 저녁까지 거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다가 아이 하원 후 오후 일정에 지쳐 늦은 밤 식사를 하거나 술을 곁들이고 잠을 취한다. 글로 써보니 지금의 내 생활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느껴진다. 이렇듯 몸의 균형은 완전히 깨진 상태다. 


극단적으로 신체를 돌보지 못하니 정신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몸무게는 그리 늘지 않았는데(많아야 1-1.5kg 차이) 몸이 무겁고 살이 엉겨 붙은 느낌에 옷을 다 바꿔야 한다. 아마 근육이 빠지고 있나 보다. 이렇게 외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지니, 정신도 그 지배를 받는다.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은 나에게 늘 적잖이 있어왔고, 날씬하지 못한 상황은 강박을 넘어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악화된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강제 집콕 신세지만, 예쁜 옷을 입지 못하는 현재의 나는 외부 약속이 달갑지 않다. 체력이 자꾸 떨어지다 보니 육아를 하는데도 힘이 부친다. 신체적 지침으로부터 오는 내면의 화와 스트레스를 다스리지 못하니 매번 아이에게 무기력한 얼굴만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은 와장창 깨진 지 오래다. 시소의 중심축 조차 사라지고, 저울의 추가 보이지 않을 만큼 내면과 외면의 밸런스는 무너지도 못해 없어졌다.




2. 내 안의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매사에 '잘 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 이 두려움은 다소 긍정적으로 표현되어 '잘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게 해 주었다. 최선을 다하니 결과가 좋았고, 그 결과에 만족하며 또 쌓아온 결과를 무너뜨리기 싫어서 더 잘해오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의 욕심과 높은 기준을 불러일으켰고, 이렇게 해서 상향 평준화된 기대치는 나 스스로를 더 두렵게 하고 옥죄게 했던 것 같다. 주변에선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된다며 나를 진정시킬 때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아무리 완급을 조절해보려 해도 늘 급하고 극단적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 다르게 말해서 불안의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있다. 유년기 시절의 나부터 돌아본 적도 있다. 그게 무엇인지 짐작 가는 것도 있다. 기원을 찾아서 접근해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원인만 진단하고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아니면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할 동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답한 질문처럼 심신의 균형이 깨져있다 보니 건강에 대한 불신도 무척 크다. 글벗님이 소개하신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에서 저자가 '암이 만들어진 건 바로 두려움과 자기 사랑의 부족이 합쳐진 결과'라고 했다. 이 논리라면 나 역시 발암 요소를 매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 사실을 또 인지하다 보니 무섭다. 건강한 생각, 건강한 식사습관, 건강한 마인드 셋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인지가 더 두렵다.



3.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하고 있나요?


아니요. 대답은 단호하고 짧다.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내 자신에게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일시적 유혹과 욕망은 마음껏 허용하면서 진정으로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하다. 그렇다면 원초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어떤 범위로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답을 내려야 하는데, 사실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글은 길게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어쩌면 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질문에서 말한 내 안의 두려움의 포자가 또 커다랗게 번식해서 그 시도를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죽어야 다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마치 영화 와호장룡의 장쯔이나 블랙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처럼 비로소 죽음을 택해야만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을 알기 전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나는 그러지 못하다. 쓸 때 없는 욕심에 항상 일을 놓지 못하고, 괜한 불안함에 늘 가족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어렸을 때부터 항상 장녀인 내가 가족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이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남편에게 1박 2일 개인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며 최소 48시간 정도는 나만 생각해봐야겠다. 노트북도 핸드폰도 잠시 꺼두고 8절지 스케치북과 색연필만 들고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며 마인드맵을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봐야겠다. 오래전부터 이 방법을 시도해보았긴 했으나, 주어진 하루 일정에 밀리거나 시간에 쫓겨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이제 더 이상 답을 미루기엔 안될 것 같다. 또 마음이 급해진다.



5.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써 주세요.


글벗님이 오늘 큐레이션 하신 글에서 일곱 살 아이의 명상 수업 내용을 말씀해주셨다. 그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일곱 살 소녀는 자신의 영혼을 만나러 가는 과정을 말한다. 소녀는 자신의 영혼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인형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인형을 주워서 잘 씻기고, 예쁘게 꾸며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안아주고, 자주 만나러 오겠다고 하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자 나 역시 눈물이 났다. 한 아이가 순수하게 표현한 이 몇 마디가 내 마음을 정화시켰다. 분명 나 역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다 보면 분명 떨어트린 내 인형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조민아가 소망과 꿈을 담아 소중히 간직했던 인형 말이다. 그 인형을 가지고 놀이하며 내가 되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도 맘껏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난 이미 어렸을 때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과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아꼈던 그 인형을 나 역시 삶의 길가에 떨어트리고 왔다. 아니 떨어트렸는지 일부러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지 그건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내면에 자리 잡게 된 욕심과 두려움이 그 인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테고,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에 집착하면서 나 자신을 쇼윈도에 올려놓은 가식의 인형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겉만 번지르르한 인형으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타인과 상황에 의해 놀려진 시간에 지쳤나 보다. 내 유년기의 애착 인형, 그 인형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 공복 글쓰기 / 조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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