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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May 11. 2024

부디 혜량 하시게

 이복규 교수님께서 아침마다 보내 주는 '아침톡 문자'에서 동창으로부터 받은 문자 내용을 공개하였다.


"그저께 귀국해 겨우 시차 적응하고 오늘에야 소식 전하니 부디 혜량 하시게!

학교 재학 때 뽀얀 얼굴 가녀린 체구에 예쁘장하고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하네.

살아 있으니 6월 1일에 봄세. 고마워!!!"


 남자들끼리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 마치 여자들끼리 주고받은 것처럼 살갑다.

이복규 교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얼굴이 뽀얗고 귀염귀염하셨나 보다.

교수님 친구분의 문자에서 나눈 인사말,

"오늘에야 소식 전하니 부디 혜량 하시게!"


 나는 오늘도 무식했다.

혜량(惠)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국립국어원의 뜻풀이를 찾아보았다.

혜량은 은혜 혜(惠)와 살필 량()을 써서 높이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남이 헤아려 살펴서 이해함'을 높여 이르는 말로 주로 편지에 쓸 수 있다고 한다.

 "오늘에야 소식 전하니 혜량 하시게!"는 "내가 모임에 못 나갔더라도 바다처럼 넓은 도량으로 너그럽게 양해 바란다."라는 의미였다.


예를 들어

혜량(惠諒)하다  

 명사 -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늘 퇴사를 해야 합니다.

 미리 사직하지 못한 점을 널리 혜량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혜량(惠諒)하다  

동사 -  높이는 뜻으로 (~을 ) 남이 헤아려 살펴서 이해하다. 주로 편지에 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제때에 납품하지 못한 점을 널리 혜량 하여 주십시오.  


해량(海諒)하다  

명사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 따위를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양해하다  

  저의 잘못을 해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량( 海量)하다.

 동사 - 바다처럼 넓은 도량으로 잘 헤아리다. 주로 상대편에게 용서를 구할 때 쓴다.


 혜량, 해량  한자가 달라도 딱히 구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남이 헤아려 살펴서 이해함'을 높여 이르는 말로 주로 편지에 쓴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늘도 무식했다.

그래서 또 한 수 배우고 간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서 신라로 귀화해 신라 불교 최초의 승통을 역임한 승려가 있었다.

그의 이름이 '혜량(惠亮)'이었다.

 신라는 백제의 연합군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여 11곳의 국경을 함락시킨다.

혜량이 고구려에 있을 때 불경을 설파하던 중에 신라에서 고구려의 국력을 정탐하러 온 신라의 장수였던 거칠부를 만난다.

거칠부는 왕족의 후손으로 나라에 큰 뜻을 품고 승려가 되어 사방을 유람하다가 고구려에 몰래 들어갔다.

그때 혜량의 강설을 듣게 되고 큰 감명을 받았다.

혜량은 거칠부를 알아보았고,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그를 고구려로 무사히 귀환시킨다.


 귀국 후, 대아찬의 관직에 오른 거칠부는 551년(진흥왕 12) 고구려를 침공하여 국경지대의 10군을 점령하였다.  

혜랑은 진군 중인 거칠부를 만나게 되고,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혜량을 진흥왕에게 천거하였다.

진흥왕 12년 신라가 고구려 국경으로 진격하였을 때 망명을 하게 된다.

혜량은 신라로 귀순한 신라 불교에 있어서 최초의 승관의 하나인 승통(僧統)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이때 신라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망명한 혜량은 신라의 승통이 되어 백고좌강회와 팔관회를 최초로 개최하였고, 불교의 여러 사무를 통괄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불교행사는 신라 말기까지 계속되어 불력에 의한 국가의 안보와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였다.


신라불교는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시켰다.

혜량은 신라 초기 교단의 형성과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새로운 불교 의식의 정착을 도모하였다.

신라는 진흥왕 시대부터 불교색이 굉장히 강해지기 시작하며, 혜량의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기존에 들여온 백제불교를 매개로 혜량의 고구려불교를 신라에 유입시켜, 두 계통의 불교는 융합하며 신라불교가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다.

혜량이 거칠부를 통해 신라로 넘어오는 과정에는 정치적 혼란이 있었다.

왕위 계승 분쟁과 결부되어 고구려는 귀족 간의 대립으로 국력이 쇠약해졌다.

고구려의 몰락은 백제와 신라의 성장과 영향력의 확대에 영향을 주었다.


'혜량'이라는 단어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승려 '혜량'을 알게 되어 역사공부까지 한 날이다.

사람은 배운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행동한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이윤재교수님의 어록에서 느껴지는 배움의 가치와 본질을 상기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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