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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Jun 19. 2024

호메로스의 대관식

  오늘은 문화공간 '쿼드'에서 그리스신화 강의가 있는 날이다.

시간에 늦었는데 도착해 보니 다행히 '플래튠'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호메로스의 대관식'그림을 보여주면서 강의 소개가 이루어졌다.

1827년, 프랑스의 화가였던 앵그르는 '호메르스의 대관식'이라는 작품에서 서구 문화의 특징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었다.

현대의 많은 철학사는 호메로스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의 성경을 당시에는 교과서처럼 여겼다고 한다.

실례로 그리스도교의 '아멘'의 어원이 기록된 것을 그가 이야기 한 '일리아스'에서 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책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을 수백 년 동안 교육시켜 왔다.

그리스의 어린아이들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고 자랐으며, 전설 속 인물들의 리더십을 배우면서 그 인물의 언행을 닮으려고 노력하였다.

호메로스가 작품 속에서 그린 인물들의 자질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인 교육의 목표였다고 한다.

이후에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서양문명의 근간이 된 이유였다.



  기원전 8세기에 언어가 발견되면서 최초로 나온 두 권의 책중의 하나가 '일리아스'였다.

일리아스는 '일리온의 노래'라는 뜻이다.

기원전 12세기경에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트로이의 기억을 썼다고 알려졌다.

대서사시인이었던 호메로스는 장님이었다고 전해진다.

호메로스가 시를 구술하고, 글을 대신 조수에게 받아쓰게 했다.

그 시들을 받아 적었어도 기원전 7세기 중반까지는 구전으로 보존되었을지도 모르고, 그것 또한 정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세 가지 이론에 모두 반대 의견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호메로스의 작품이 역사적 가치가 큰 이유는 고대 그리스의 암흑기였던 미케아 문명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정체와 퇴보 등의 부정적 의미로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가 발굴되었다.

트로이 발굴 초기에는 작은 크기였던 트로이가 약 17배 정도로 큰 대도시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학자들은 호메로스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를 통해 '야만성'보여주었으며, 핵토르를 통해 '이성적인 인간(문명)'그려냈다.

 호메로스가 아킬레우스가 아닌 토르를 선택하였다는 것은 그리스인이 본받아야 할 보편적인 인간상을 아킬레우스(야만성)에서 토르(문명) 옮기고 싶었다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700년 후에 나타난 아테네 시민사회에 핵토르의 정서를 심어주게 된다.


 

 호메로스 대관식 그림에서 보면 우아한 이오니아식 기둥의 신전이 중앙에 있고, 호메로스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메로스의 머리 위로 니케는 월계관을 씌워주면서 대관식이 거행되고 있다.

호메로스의 주변에는 서구 문화를 이끌어 준  42명의 중요한 인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오르페우스,  리노스,  헤시오도스, 베르길리우스, 단테, 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메난드로스 ,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라신, 몰리에르, 핀다로스, 호라티우스, 이솝,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페이디아스, 아펠레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모차르트, 페이시스트라토스, 페리클레스, 데모스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등이다.

호메로스가 서양 문명의 가장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의 발 밑에는 두 여인이 앉아 있고, 빨간 옷의 여인 옆에는 칼이 놓여 있다.

 이곳에 모차르트가 있다는 건 의외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당시에 음악가였던 모차르트는 조금 하층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신이 더 우위에 있으므로 모차르트를 아래 부분에 그린 것 같다.

그림 속에 알렉산더 대왕도 있다.

호메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는 서로 연관성이 있다.

수많은 영토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는 펠로우였고,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대서사시인이었던 호메로스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의 이야기의 탁월함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아주 잘 나타나있다.


 호메로스의 대표작으로 두 편의 작품으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꼽는다.

그림 속에서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의인화하여  앉아 있는 여인들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표현하였다.

대관식은 호메로스의 그림으로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일리아스는 '일리온 노래'라는 뜻이다.

일리온은 트로이를 가리킨다.

'플래튠'이라는 전쟁 영화를 보면서 트로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트로이전쟁은 서사시였

트로이전쟁은 인간의 전쟁이 아닌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므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신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삶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지만 바꿀 수 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는 트로이전쟁으로 화려하게 승리를 거두지만 승리의 대가는 혹독했다.

트로이전쟁 이후에 재건하기 이전까지는 그리스는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도시는 도시대로 아크로폴리스는 모두 파괴되었고, 다시  문명재건을 시작했지만 당시에 그리스는 문자가 없었다.

페니키아에서 문자가 전해지면서 그 이후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 리아스'는 호메로스가 젊었을 때 지은 책으로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노래했다.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다루었다.

겁만 주고 돌아오라고 했는데 아킬레우스 친구는 아킬레우스의 명령을 무시하고 트로이 성벽을 공격하다가, 토르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친구를 죽인 핵토르에게 방향을 돌렸고, 그는 신이 만든 새로운 무기와 갑옷을 입고 친구의 원수 핵토르를 죽였다.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도 화가 풀리지 않자, 토르의 시신을 학대한다.

프리아모스 왕(핵토르 아버지)이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아 밤에 아킬레우스의 장막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하였다.

아킬레우스 죽은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리며 같이 슬퍼한다.

 그리고 토르의 시신돌려보내준다.



 무질서의 상징인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를 파리스가 선택하면서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리아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신화의 대부분은 전쟁의 발단을 소개하는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이야기하면서 트로이전쟁의 역사를 시간의 순서 대로 기술한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나열 대신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통에서 며칠 동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아킬레우스의 친구에 대한 복수'에 관한 내용을 기술한다.

 전쟁이야기를 군데군데 부속품처럼 끼워 넣어 사건을 한가운데로 몰아가면서 완성한 천부적인 작품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칭찬한다.


 호메로스가 천재인 이유는 그가 이야기한 영웅 모두를 영원히 살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존재를 지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호메로스의 책에 나오는 전쟁영웅들은 불멸의 명성을 얻어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전쟁을 치르며 명성을 얻는 것은 하나뿐인 목숨을 전쟁에 바치지만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로 남을 수 있다고 보았다.

영웅은 죽었어자기 존재를 지속시킬 수 있기에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뛰어든다.

불멸의 명성을 얻기 위함은 영웅들의 생각이 아닌 호메로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문화공간 쿼드에서 '플래튠' 영화를 보여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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