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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Aug 16. 2023

2.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느끼고 있다. 혹은 동시에 못 느끼려 애쓰고 있다. 그것이 전면전이고 국지전이고 내전이고에 구애 없이 죽어나가는 것에는 도리가 없다. 그늘진 방구석에서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을 바에 나가서 뜨거운 볕에 고개를 흔드는 게 낫다.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공터는 풀과 나무가 멋대로 자라나 있다. 잡초들이 잔디를 대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어진 모양새인데 보기에 퍽 자연스럽다. 아이들은 즐겁다. 그 사이로 백발의 노인 하나가 같이 공을 차고 있었다. 나이 먹고 웃기는 할아버지네 하고 피식 웃었는데 목소리가 낯익은 것 같았다. 설마. 급히 가방을 털어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 달렸다. 선생님!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다시 공터 앞 벤치, 오래전에 학교를 다닐 때 이것저것 잡다한 걸 가르치던 야옹 선생님과 다시 마주보고 있다. 선생님은 내가 졸업할 적에 가지고 있던 책과 짐짝을 다 나눠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낡은 자전거 하나를 내게 남겼었는데. 감감무소식이던 야옹을 다시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들이 공을 차다가 드문드문 이 곳을 바라보았다. 꼴에 어른이라고 눈물자국을 지웠다.      


노인도 이 사단을 피해갈 순 없었다. 야옹은 교토의 고향집 문을 활짝 열어두고 난민선에 몸을 실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내릴 생각을 했다가 가는데까지 가보자 싶어서 여기까지 다다랐다고 했다. 낡은 집을 수선해서 부모 잃은 아이들과 산다고 했다. 다행히 여기는 외진 곳이라 아직 주위 사람들 인심이 좋아 먹을 걸 구하는 건 잡일을 거들면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그마저도 요새는 무료해서 다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시험 볼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우리 늙은 선생님은 아이처럼 웃었다. 나도 울고 웃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런 말은 너무 클래식이라고 손사레 치신다.     


야옹의 작은 방에 같이 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선생님 방은 참 한결같다. 작은 책상 짐을 쌓아 만든 간의의자. 낡은 스탠드, 그마저도 정전이 잦아 촛대 하나. 전쟁통에 챙겨온 사전 몇 개. 빛바랜 사진 몇 장, 새 사진 몇 장. 저와 헤어진 이후에도 아이들을 가르치셨죠? 새 사진 한 장을 들고 물었다. 그 애들은 일본에 살던 한국 교포들의 아이들이에요.. 선생님 답지 않게 말꼬리를 흐리셔서 더 묻지 않았다. 평생을 떠돌아다닌 선생님이지만 무언가를 잃으셨구나 싶었다. 그간의 이야기들을 과장해서 재미나게 들려드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은 우유를 끓였다. 오래간만의 티타임이네요. 찻잔을 놓으며 말했다. 이 늙다리 할배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것 같으니. 쪼르르 따라지는 짜이 소리가 적막을 메꾼다. 오래전 나날이 스쳐간다. 살아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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