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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Dec 18. 2023

[한국철학과 녹색] 자연스러움과 그리움

2023.10.10 독일 기행기


자연스럽게 줄기를 뻗은 고목 앞에 서면 경외심이 일렁인다. 그 공간에 단단히 뿌리박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온 그의 존재는 참 푸르다. 독일에 와서 거닌 소도시들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튀빙겐의 공원 앞에도, 뮌스터의 대성당 앞에도 그들은 사람의 손을 그다지 거치지 않거나, 혹은 보호의 손길을 받으며 당당히 서 있었다. 울창하게 가지들이 뻗어있고, 중세부터 있던 보도블록을 뿌리들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자연스러움이 부럽고, 무언가 슬프기도 했다.


지난 몇 해 살던 서울 집 앞 권율 도원수 집터에 있는 500살 된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그는 비좁은 담들과 전깃줄에 둘러싸여 늘 위태로워 보였다. 덕수궁 돌담길 끝 이화여고 앞에 있는 은행나무도 생각났다. 그는 가지의 끝머리와 도로로 향한 뿌리들이 잘린 채 철근과 콘크리트의 도움을 받아 서 있다. 두 나무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이 ‘보호’는 전깃줄을 거스르지 않고 도로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만 작동하는 것 같다. 몇 해 전 도시의 나무들이 학대되고 학살당한다며 가로수시민연대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1] 


한국에서 너무나 자주 쉴 새 없이 온 강산을 헤집어 대는 걸 봐서 그런지, 얼핏 본 독일의 도시들이 녹색으로 보였다.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나무들뿐 아니다. 도심 내 서행하는 차들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타는 자전거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턱이 없는 광장, 건물과 들판 곳곳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대부분의 식당에 있는 비건 채식 음식들, 자신 있는 표정의 녹색당 정치인들의 선거 벽보들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사람들의 표정이었는데 얼굴에 조급함과 긴장이 서려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호숫가 옆을 거니는 백조와 오리들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이전에 독일에 사는 친구가 한국 사람들이 표정이 안 좋다고,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2]


이곳은 분명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성당과 교회가 정오면 종을 울리고 사람들은 공원에 누워 책을 읽거나, 노천의 카페에서 가족과 친구와 – 개와 고양이들도 – 함께 티타임을 가진다. 어느 일요일에 녹색당 지지율이 절반이 넘는 녹색 도시 튀빙겐의 성당 앞을 걷고 있었다. 한 편에 들어선 로컬푸드 시장 옆에서, 9월 글로벌 기후파업(Climate Strike)을 앞두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 활동가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적하게 거닐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활동가들도 받는 시민들도 평화롭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날 기후파업이 있으니 함께 올래? 그래, 한 번 볼게, 그날 보자. 아무래도 생경한 풍경이었다. 그간 우리는 늘 경각심에 가득 차 위기를 말하고 사람들은 미친놈 보듯이 하고 지나갔는데, 이 자연스러운 장면은 뭘까.


이질적인 평화로움 속에서 사뭇 이는 생경함이 있었다. 분명 옆 동네에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파동으로 독일은 에너지 위기를 겪었고 정치·경제적 상황이 역대 가장 안 좋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은 지난 몇 해간 기록적인 수해를 겪는 등 유럽 내에서 가장 극심한 기후재난을 겪은 곳이지 않나. 전단지를 나눠주던 활동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다소 나이브하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인 그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 한국은 그렇니? 하고는 얼마 전에 석탄 광산을 막다가 경찰에 잡혀간 활동가들도 있다고, 이 작은 도시가 평화로운 편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열린 기후파업에는 한 도시에서만 수천 명의 남녀노소, 퀴어, 동물들이 함께 행진했다.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그 자유분방함과 평화로움이 부럽고 또 생경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이 남았던 건 양차 세계대전의 묘비들이 있는 프랑크프루트의 공동묘지(Frankfurt Main Cemetery)이겠다. 가로지르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울창한 수목원 같은 곳을 걸으면서, 이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기리는 방식을 알 수 있었다. 깊었다. 생각하면, 독일도 한국도 전쟁을 겪은 지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지역이 전쟁의 물자로 동원되거나 폭격의 피해를 입었고 그 때의 건물들도 나무들도 사람들도 아직 그 살아있다. 우리가 그렇듯이 아마 독일 사람들에게고 수많은 상처와 상흔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꽤나 애써온 것 같다. 이전에 독일의 심리치료사이자 선교사 버트 힐링거가 창안한 집단 상담 치료 프로그램인 가족세우기(Familienaufstellung)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나치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던 독일 가정의 절반이 넘게 참여했다고 들었다. 언뜻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면에 여러 깊고도 심층적인 것이 개인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서려 있지 싶다.


무너질 세상에서 우리가 처한 여건은 엇비슷할 것이지만, 지나간 상처 가득한 역사를 어떻게 되살릴지는 하기 나름이겠다. 독일이 지나간 역사 속에서 전쟁 이후에도 이전의 모습을 복원하고 다음의 사회를 건설해가는 시도는 부러워할만 하다.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철거한 지 수십 년이 흐르고, 이전에 강을 막았던 보와 강둑을 철거하고 다시 강이 굽이굽이 흐르게 하고, 우후죽순 지었던 국내의 공항들을 다시 줄여가는 수순을 밟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꿈도 못 꾸던 탈핵을 어떻게든 이어서 해내고 말았다. 여전히 강들이 몸살을 앓고 있고, 신공항에 신규 핵발전소까지 시대에 분명한 역행의 전철을 밟고 있는 한국에서는 분명히 부러워할 만한 길을 걷고 있다.


그렇지만 한 주가 지나고 사뭇 풍경이 익숙해지자,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는 생각도 들고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맥주, 감자, 소시지 세 가지로만 이루어진 열악한 식문화가 가장 큰 이유다. 독일이 맛있는 게 없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어느 농담이 고찰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즈음, 독일에 살고 있는 한국 녹색당원들이 아침으로 고추장에 감자칩을 찍어 먹고, 귀한 만찬이라고 라면에 깍두기를 내오는 것을 보면서 그리운 웃음이 났다.


처음에 부러움인 줄 알았던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내가 살았고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피워내는 그리움, 어쩌면 근 한두 세기 사이에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독일의 대대로 이어온 어느 성당 종지기의 종 노래를 들으며, 박정희 때 자기 북을 스스로 칼로 찢었다는 어느 북 장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 집집마다 빚던 술이 금지되며 많은 것들이 전수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문화재가 아니고서는 오래된 골목이나 풍경이 드물다. 철학도 그렇다. 한국 사회의 불안과 강박의 이유에는 이런 것들이 아로새겨져 있지 않을까. 새것 좋아하는 우리가 오래된 것들이 귀함을 알아갔으면 싶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르나, 돌아보고 돌아가는 것에 늦은 때란 없다고 한다. 


녹색은 돌아감 혹은 돌아봄이다. 나 밖에 모르고 살아온 회색의 사회가 너를 보고 우리를 생각할 때 녹색 빛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나온 기억을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풀리지 않는 콤플렉스로 봉인해두고 없는 양 회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반추해서 앞으로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독일의 이야기는 그 점에서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우리도 잃어버리고, 난잡해지고, 상처를 방치하여 문드러진 것들을 다시 살피는 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지금 마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여기의 우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다. 진주에서 태어나 독일의 뮌스터에서 살다 간 허수경 시인의 글 한 문장을 건넨다.


“우리의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철기시대이나 나는 우리의 시대를 ‘마음의 시대’로 부르고 싶다. 닿지 않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천천히 어떤 공간이 부풀어오르며 저녁의 마술이 찾아오는 시대. 완벽하게 망설임을 완성하는 시간. 학생들은 늦은 시간에도 공부를 하느라 도서관에서 나오지 않고 더러는 이미 인근의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또 어느 건물에서는 늦은 강의가 펼쳐지며 그렇게 하루는 저문다. 아직 목마르지 않은 이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는 있는 마음의 시대 어느 골목을 걸을 것이다.” - 허수경, 2015, 너 없이 걸었다, 문학동네.


정성과 평화를 담아,

뮌스터에서 남김



[1] 단순 비교는 금물이다. 한국에서도 창경궁의 울창한 수목들과 전주의 은행나무, 도심 외 지역들에서 고목들을 보아왔다. 순천시처럼 두루미를 위해 전봇대를 뽑은 사례도 있었다. 독일에서도 자동차 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복합 기차역을 세우겠다고 수백 년 된 고목을 벤 바가 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지역의 공분을 사 2013년, 보수세력이 강한 동네에서 녹색당 시장 프리츠 쿤이 당선되는 기묘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 이민자의 나라 독일에 찾아온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들의 표정에는 원 주민들과는 사뭇 다름이 있다.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찾아온 사연 많은 이들에게서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 부러움, 슬픔 등 익숙한 눈동자를 본다. 기차역마다 즐비한 적선을 요구하는 홈리스들에게서도.


*이 글은 2023년 10월 10일 다른백년의 [한국철학과 녹색]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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