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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Jan 16. 2024

비취색 오염수와 시골의 생태학살

2024년 1월 11일 평택 화성 비취색 오염수 사고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아버지가 태어났고 할머니가 팔십 년 가량을 살다가 묻힌 곳, 명절마다 들린 나의 시골, 옆에서 일이 터졌다. 며칠 전 양감면에 있는 한 위험물 보관창고에서 화재가 나서 밤새 진화를 했다고 한다. 창고에 있던 140여 종의 화학물질이 소방수와 섞여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어 갔고 에틸렌다이아민과 구리의 반응으로 온통 비취색이 되었다. 총 오염면적 하천길이 7.4km, 오염수 3만~7만 t, 생태독성 (TU) 화성시 163.71TU 평택시 1.7~42.4TU, 폐사한 물고기 100kg, 수질오염 방재 비용 1천억 원, 평택시의 정부 특별재난지역 선포 건의와 경기도 특별교부금 조기 교부 요청. 아버지는 어렸을 적 개울에서 수영도 하고 물살이도 잡고 놀았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 50년 사이, 이 근처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미군기지 험프리스가 들어왔고, 경기도의 외곽으로 밀려난 각종 농약 비료 살충제, 건축 자재와 설비, 화학물질 공장과 창고들이 우후죽순 지어졌다. 아버지가 다녔던 초등학교 하나 빼고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고, 지금은 버스를 타면 노인들이 반 주로 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반이라는 낯선 인구구성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시골이 이렇게 변한 지는 오래라고 들었다. 몇 년 전 아버지와 간 낚시에서도 물살이는 잡히지 않았다. 주변에 어지러이 버려진 비닐 같은 농촌 쓰레기와 근처 축사와 비료 공장에서 나는 악취로 물에서 나는 비릿함이 가려졌다. 생태독성은 1TU는 방류수에 물벼룩이 24시간 동안 절반이 생존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데, 환경부의 생태독성 배출허용 기준이 1TU다. 수조를 돌봐온 경험이 있다면 어항 내 좋은 미생물을 지키는 게 물건강의 성패를 가르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다. 절반의 물벼룩이 살아남을 정도의 독성은 결코 미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 재난의 화성시 생태독성은 163.71TU, 짐작할 수 없는 수치다. 폐사한 물고기가 100kg라는 문장을 읽고 그 오염된 강에서 살아가고 있는 애들이 있기는 있었구나 싶었다. 무엇이 어떻게 생태학살(Ecocide)인지는 현재 국제적으로 제시되는 법적 정의에서는 고의성과 그 피해의 광범위함 등이 성립 요건이지만 나는 이 말이 다소 직관적인 말로 여겨진다. 하나의 개체에 국한되지 않는 어느 공간의 죽임을 봤을 때 이 말이 떠오른다. 현재 위험물 보관 창고 사업주의 구상권 청구가 이야기 나오고, 경기도에 단 1곳도 없었던 유해물질 완충저류시설 정비 등이 이야기 나오지만, 미군기지와 기업 공장들의 합법적인 회색지대에서 계속 일어나는 비극을 이걸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생태학살(Ecocide)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유독 깊게 박히는 통계 한 자락이 있다. 200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과 유조선이 충돌해 원유가 태안 바다를 뒤덮었던 그 사건 이후에 인근 주민들의 70% 이상이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조사. 실제로 석탄발전소나 팜플랜테이션 등 생태학살 현장에서 선주민들의 인터뷰 속에는 죽고 싶다는 말이 있었다. 자살률이 높게 나온다고도 들었다. 이 죽어버린 강 옆에 살고 있는 나의 먼 친척들과 이웃사촌들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아, 오히려 몇십 년간 너무 이것저것 겪어와서 이 정도는 늘상 있는 사고지 하고 경로당에 가시려나.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이전에 강산이 푸르렀을 시절을 그리워하시려나. 아버지는 할머니 돌아가신 시골집에 너가 살겠냐고 여러 번 물어왔지만, 언젠가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나도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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