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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Feb 01. 2024

2024 해갈이글

2024.1.3

인삿말: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계실까 늦은 인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이 브런치라는 공간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어느 사이의 글들을 쌓아두는 용으로 써왔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어느덧 오년 정도가 흘러가는데 그간 본 척 만 척 약간의 방치를 해왔던 것 같아서 마음에 남네요. 무엇보다 제가 대화와 관계와 나눔 같은 상호적인 것을 중시한다 하면서도, 이 공간에 찾아와주시는 손님들을 못 본 척 한 것 같아서 조금 머쓱합니다. 사람이 참 이상하지 싶은 게, 막상 너무 깊은 이야기들은  얼굴 아는 사람들이 연결된 공간에 꺼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오히려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감도는 기운과 한 번의 일면식이 없지만 조용히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작가님(ㅎ.ㅎ?)들이 있어서 민망하지만 계속 뭔가를 적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해 다짐 중 하나로, 나를 있게 한 공간과 이들에 소홀함을 넘어가보려 해요. 앞으로는 조용히 눈팅만 하고 사라지지 않고, 말들을 걸어보려 합니다. 아무쪼록 새해 복 잘 심어가시고요, 종종 지나가며 뵙겠습니다. 


정성과 평화를 담아

윤석 드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고개가 아닐까. 누구든 우린 고개를 넘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올라오는 이의 마음이 보이고. 고개를 두 번 넘으면 무엇이든 자신감이 붙고. 고개를 세 번 넘기 전에는 두려워 뒷걸음질 쳤지만, 결국 내 길임을 알고서 다시 돌아왔지.”  - 오열, 강강     


2023년은 유달리 고개가 많았고 험했다. 그래서인지 해갈이가 막 아쉽고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잘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지만 말이다. 가장 남는 건 역시 죽음들이다. 세상만사가 누군가의 죽음에 달려있다. 우리의 우주는 우리의 삶으로 이뤄져 있었다. 죽음에 소홀하고 무지하고 애도하지 못하는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치고 만다. 외상보다 내상, 그것도 자기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깊은 상처.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 관통하는 주제가 있을 것이다. 나도 나를 관통하는 주제와 이야기를 돌고 돌아서 직접적으로 만난 것 같다. 그래서, 이리 말해도 될랑가 싶지만 감사하다. 이건 감사한 눈물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노화를 슬슬 체감하고 있다. 더 이상 새로움에만 목매지 않는 것 같고, 오래되고 낡은 것 –나의 할머니 같은– 에 눈이 간다. 윤석 님은 더 이상 어리지 않아요,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무엇 하나를 하려고 해도 나이와 시간을 고민하게 된다. 앞뒤 가리지 않고 순전히 마음만으로만 할 수 없다는 걸 조금은 알아차렸다.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조금 더 내가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것을 성숙하게 고민하려 한다는 방증 같은 것일까. 치기 어리고 싶지 않다. 몸에 좀 더 힘을 빼고 싶고, 기복에 좌우되고 싶지 않고(태풍이 몰려오더라도 조금은 느긋하게 흔들리는), 넓어지기보다 깊어지고 싶고 잘 살아가고 싶다.     

 

하루를 살피면 마음에 불안이 정주하고, 간간히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돌이키면 참 사소하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데. 오늘은 내가 하기로 했던 것들을 잘하며 살아가고 싶었는데. 오늘은 평안히 내 마음을 살피고 싶었는데. 오늘은 잘 연락을 해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갈등과 앙금을 현명하게 잘 풀어보고 싶었는데. 아마 우리들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쉽게 거창해지고, 완벽을 갈망하고, 욕심을 부리지만 나의 삶은 사소하고 소중한 것들에 달려있다. 연말에 엄마와 아빠와 반려와 생긴 앙금이 일상을 살아가는 내 마음을 좌우했다. 평화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지각과 마감과 정리가 오랫동안 내가 풀어가고 싶은 숙제들인데, 이들은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에 연결되어 있다. 이걸 살펴보고 싶다.     


졸업, 퇴사, 이사, 출국, 입소(고민) 같이 굵직한 근황이 한 번에 몰아친 하반기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 삼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나의 할머니 박정순, 나의 스승 철학자 신승철 선생님의 장례식이 그 가운데에 있었다. 그랬다.      


한 해를 돌아보자. 1월에는 오랜만에 연구소에 출근했는데 마음이 좌불안석이었다. 내가 다시 잘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함께 꾸려온 공동체에서 성폭력이 일어났다. 그다음 주 이들과 원주로 떠났던 길이 기억난다. 2월에는 오랫동안 못 뵈었던 교장선생님을 찾아뵙고 법명을 받아 원불교 교도가 되었다. 법명은 정성성 자에 평화화 자, 성화(誠和)다. 3월은 일과 관계를 힘들어했다. 4월은 잔인하고 행복했다. 둘이서 경주월드를 갔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가족과 함께 친척 결혼식 차 전주에 다녀왔다. 5월은 어떤 평화가 찾아왔었다. 혼자 자전거를 많이 탔다. 6월은 세계녹색당총회에 올인했다. 월정사에서 진행했던 생명평화 대화마당이 뜻깊게 남았다. 하지만 6월 말 친구와 친구의 언니가 차에 치여 한이 맺혔다. 7월의 시작과 함께 신승철 선생님과 나의 박정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전쟁 소설을 썼다. 8월 3년 차 일한 연구소를 갈무리하고 퇴사했다. 3년 산 집을 정리했다. 9월 일단 떠났다. 독일을 거닐다 스페인으로 가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같이 걸었다. 10월에는 로마. 이스탄불로 넘어갔다. 11월에는 다람살라, 델리, 실롱, 하노이, 방콕을 갔다. 15년 만에 내가 살던 인도의 이모를 만났다. 태국에서 아시아 친구들을 만났다. 12월은 파주로 와서 엄마 아빠와 지내고 고마운 사람들을 간간히 만나며 한 해를 갈무리했다. 몇백 페이지가 되는 일기를 읽으면서 이걸 요약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갈무리하고 싶어서 애썼다. 수고가 많았다. 한 해 정말 수고가 많았다.                     


2023의 결산:

가장 깊게 읽은 책: 박채영의 『이것도 제 삶입니다』. 나는 눈물 없이 볼 수가 없었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

노래: 푸른별 싱글 <나는 마음> 오랜 친구가 낸 싱글을 듣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가장 맛있었던 것: 산티아고 순례길 프리미티보길 산 정상에서 먹었던 수호발 김과 김치통조림.

가장 좋았던 홀로의 순간: 허수경 시인 발자취 찾아 독일 뮌스터에서 걸었던 순간. 아침 비 맞으며 본 아름드리나무와 고즈넉한 광장의 카페.      


올해 했던 일과 글:

녹색전환연구소에서 3년 차 일을 갈무리했다. 「광주광역시,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기도 녹색일자리 창출 방안」 연구보고서를 썼다. 자전거 녹색일자리 부분을 연구하고 작성했다. 민중의 소리에 “자동차 위험사회에서 녹색전환이라는 등불”이라는 글을 썼다. 친구와 친구 언니가 차에 치여서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자동차가 지배한 사회에서는 사람이 차에 깔려 죽는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살해다.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5차 세계녹색당총회 프로그램 소위원회에서 코디네이터로, 생명평화 대화마당의 오거나이저로 일했다. 

고 신승철 소장님이 내게 마지막으로 건네신 제안이 탈성장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이었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탈성장 책을 공저로 쓰고 있고, 잘 만들고 싶은 바람으로 편집도 맡았다. 

다른백년 [한국철학과 녹색] 연재를 다시 시작해 “잘 살아가는”, “자연스러움과 그리움”, “좋은 길 위에서”, “내가 살았던 곳”, “아시아의 조화들” 다섯 편을 썼다.

『바람과 물』7호 여성, 살림 정치에 현경 선생님 대담 “아픈 것, 사랑하는 것, 온전함을 찾아가라”을 , 8호에 장이정규 선생님 인터뷰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우주와 마음 이야기”를, 9호에 신승철 선생님 추모대담 “탈성장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을 박숙현, 이승준 선생님과 나누어 실었다. 

정태인 선생님 1주기 추모포럼에 발제문을 썼고 『동향과 전망』에 투고했다. 정건화, 김병권 선생님이 멘토해주셨고, 장혜영 님이 토론을 맡아주셨다. 

어느덧 에코사이드를 말한 지 3년 정도가 되어간다.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에서 제안해주셔 토론회와 포럼을 거쳐서 에코사이드 책을 쓰고 있다. 해가 넘어가서 걱정이다.     


2024의 바람

: 살다보면 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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