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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Feb 14. 2024

낡은 것은 죽은 것이다. 늙는 것은 죽는 것이다.

2024.2.12 까치까치 설날은 

할머니 없고 맞는 첫 설날이네. 모처럼 뒷자리에 앉은 아빠가 말했다. 그러네. 말하면서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처음 가는 시골이구나 싶었다. 싱숭생숭함을 떨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있었다. 몇 년 전 면허를 따고 새 차가 생긴 민석이가 운전을 했다. 7080을 듣고 싶다는 뒷자리의 민원과 그냥 조용한 거 틀자는 나의 타협접으로 나온 아이유 노래를 틀어두고. 아주 옛날에 가족 첫 차였던 산타페의 트렁크에는 비쩍 곯은 물살이가 안전을 기원한다랍시고 숨겨져 있었다. 나름 얼리어답터였던 아빠가 테이프의 시대가 끝나고 CD가 나오자 (아마 불법다운로드로) 구운 모음집을 틀었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YB의 너를 보내고 같은 노래들이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늘 이런 날은 예상을 뒤엎고 도착한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우리는 시골이라고 퉁 치고 넘어갔는데 그렇게 외진 곳에 있는 건 아니다. 서울에서 고작 한 두어 시간 가면 도착한다. 리틀 포레스트 귀농귀촌 낭만 드라마를 찍기에는 너무 뭐가 많다. 한쪽으로는 고속도로와 KTX가 지나가고, 한쪽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라는 평택 미공군기지가 있어서 굉음이 들린다. 전투기가 나는 소리는 정말 커서 소름이 끼칠정도다. 어릴 적 아빠는 그 전투기 소리를 들으면서 조종사의 꿈을 키웠다는데. 나는 이 공군기지를 이번 에코사이드 원고의 한 꼭지에 실어놨다. 저쪽 평택에는 삼성이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반도체 산단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화성은 땅값 싼 농지가 많아서 그중에서도 사양시설에 속하는 각종 공장과 창고가 들어서고 있다. 여기에는 주로 노인들만 남아 있는데 요새는 외국에서 일하러 온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양감면에 들어서서 아빠가 다녔다는 초등학교 앞에 잠시 차를 멈췄다. 한 달 전 그 창고들 중 하나에 불이 났다. 뉴스에 올라올 때 여기가 어딘가 시골 근처구나 싶었는데 바로 앞일 줄 몰랐다. 다친 사람은 없다는데, 창고에 있던 화학물질이 앞 개천으로 다 흘러들어가서 물이 비취색이 됐다. 비취색이라 하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생태독성 검출치를 보니 하천에 살아있는 생명은 없다고 봐야겠다. 오염수는 평택의 진위천을 지나 평택호와 평택항 아산만 앞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사고 후 며칠 정도 지난 후 물 색이 이상하다는 민원을 듣고 급히 난리가 나서, 포클레인으로 오염 지역 개천 7.7km를 막아놓고 활성탄 정수시설을 돌려서 색을 빼고 있다. 이게 괜찮은 해결책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해두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4대 강 살리기의 맥락에서 장시간에 걸친 유럽권의 하천의 생태적 복원 사례를 본 기억이 있다. 콘크리트 댐과 보를 걷어내고 직선형의 강을 다시 구불구불한 흙과 자갈로 바꾸는 몇십 년에 걸친 전환이자 복원.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뭘 해야하는 걸까? 이미 다 죽어버렸는데. 그리고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로 이미 죽어가고 있던 하천이기도 했다. 그래서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이 지점에서 늘 막힌다. 하천은 농업용수이자 갇혀있는 동물들의 식수이기도 했다. 

         평택시는 행정안전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지만, “국가 차원의 긴급한 수습 지원이 필요한 재난은 아니며, 화성·평택시의 행정·재정 능력으로 조치할 사항”이라고 거절의 답이 왔다. 몇 가지 질문이 일었다. 첫째, 산단을 유치하고 활동해 온 평택·화성시는 짓고 만들 줄만 알지 이런 재난을 예비하고 대응할 자체적인 능력은 없나. 둘째, 청계천이나 중랑천에서 일어났어도 같은 답이 왔을까. 셋째, 서천시장 화재에는 대통령이 특별재난지역 선포 검토를 직접 요청했는데, 하천 오염 정도는 그저 그런 일인 걸까. 아니, 시장 상인들이 길거리에 나앉든 하천 하나가 아작 나든, 총선의 시간대에 걸리지 않으면 실은 알 바가 아닌 게 아닐까.

         뭐가 되었든 평택과 화성의 인근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특별재난지역 재선포해야 한다는 골자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나섰다. 가뜩이나 재난도 막막한데 싸움도 이어지겠다. 한 사례로 익산에 있는 장점마을에서는 담배 회사 KT&G의 공장에서 나온 대기오염으로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나마 지역민, 지역 연구자, 지역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환경부의 피해 인과 관계 인정을 받아내고 이후 대책을 모색하는 단계인데, 그 과정이 아주 지난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나아간 사례도 손꼽을 정도로 희귀하단다. 이 좁은 땅에서 우후죽순 빚어진 일대일로 사이에, 지역 곳곳이 얼마나 각양각색으로 고초를 치렀을지 짐작도 안 된다. 여하튼 평안한 설이 되기는 글렀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뭐라고 했을까. 오염된 하천에서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가면 할아버지가 전쟁 직후 지었다는 낡은 시골집이 있다. 요즘은 보기 힘든 흙집이다. 서까래도 대문도 얼기설기 나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장독대가 말라비틀어진 장을 품고 놓여있다. 할머니가 쓰던 곡괭이 호미 같은 것이 놓여있다. 할아버지가 심은 집 뒤에 있는 오래된 감나무, 아빠가 심은 마당 수돗가에 있는 젊은 감나무가 앙상하게 서있다. 집 안에는 할머니가 자던 이불은 간데없고, 옛날 장롱과 서랍장과 병풍 같은 게 있다. 아빠가 운동권 시절 읽던 오래된 독일이데올로기 같은 책도 있다. 할머니의 자식들은 다 저마다의 삶을 사니까 집을 팔고 물건은 다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고 한다. 박물관에 가도 어울릴 것 같은 물건들인데 가져갈 사람도 없단다. 추억도 보관할 자리가 없단다. 오래된 것에 매이면 늙어버린단다. 낡은 것은 죽은 것이다. 늙는 것은 죽는 것이다. 언제부터 흘렀을지 모르는 하천도, 거진 백 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던 할머니도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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