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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Jun 23. 2024

어쩌다 마주친 그대

2024.6.4 첫 번째

* 오는 2024년 6월 29일에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 “지금, 여기, 가까이”가 열립니다. 기다리고 모시면서 신 소장님의 말과 글,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을 매일 부칩니다. 


언제였을까, 이 인연의 시작은. 모든 만남에는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미 떠나버린 사람과의 시작은 유독 그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신승철 선생님의 1주기를 기다리고 준비하며, 지금은 가물가물한 그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게 된다.


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학교 가는 길은 영등포를 거쳐 가야 했다. 등하교길 가운데 문래동이, 철학공방 별난이,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이 거기 있었다. 어느 날엔가 그 별난 이름들이 마음에 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는 기후를 몰랐다. 생태도 몰랐고, 따라서 지혜도 없었다. 쳇바퀴 돌듯 자료를 읽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지만 적잖이 공허했다. 들려오는 기후위기 소식들을 하나둘 파보며 우울함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 신 샘을 만났다.

파블로 피카소, 1949, Dove of Peace


뭐지, 이 귀여운 아저씨는? 첫 인상이 그렇게 좋기가 쉽지 않다. 신 샘은 곰돌이 푸와 산적 임꺽정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신 샘의 사려 깊은 몸짓과 표정, 말들이 그 당시에는 낯설 정도였다. 적어도 그동안 알고지낸 대개의 철학자는 재미없고 고지식한 아저씨들이었기에, 사람 자체가 녹색 빛인 이 아저씨는 뭔가 각별하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같이 기후생태위기에 절절히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길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해맑은 미소가 선명하다.


그렇게 처음 신 샘을 만난 날, 생태적지혜연구소 조합원 가입서에 이름을 적었다. 아, 사려 깊은 신 샘은 학생이 돈이 어디 있냐고, 조합비 10만 원은 나중에 원고를 몇 편 써서 퉁치라고 배려를 건네 주셨다. 그런 작은 배려를 받은 탓인지, 신 샘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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