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9 다섯 번째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대개 하나의 단일한 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공동체를 꿈꾸기 십상인 것 같다. 즉, (나에게) 좋은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이 제일 좋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꿈과 다르게 관계는 늘 변화하는 생물체와 같아서,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고 만다. 물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단일한 뜻을 바탕으로 건설하려고 애썼던 공동체의 최후는, 대개 배타적으로 변하거나 견고하게 간직한 그 뜻이 더할 나위 없이 낡아버리거나 그 안에서 새로이 등장한 다른 뜻을 공동체 안에서 조화시키지 못해 분열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별난 이들이 드글거려도 괜찮은 공동체가 아닐까. (말을 좀 막 해보자면) 좋은 놈만 있는 곳 말고, 나쁜 놈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핑계 되는 곳 말고, 이상한 놈들이 바글거려서 결국 누구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곳이 아닐까.
즉, “우린 하나”라는 단일성의 논리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쟤도 걔도 참 다르기에 다양성의 논리가 자리 잡는 그런 공동체가 아닐까. 숱한 공동체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이 다양성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공간을 너무도 적단 생각을 했다.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와 너를 가르는 분법의 대기가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생태적지혜연구소를 보면서 참으로 별난 사람들이 모여 있단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그 별난 자태에 소중함을 느낀다.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교사, 협동조합 조직가, 수의사, 정치인까지 어디에서도 하나로 엮이기 쉽지 않은 참 독특하고도 별난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여 있음에, 그 사람들을 모아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떡갈나무 혁명은 이런 식으로 빚어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