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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Jun 23. 2024

보이지 않는 관계망

2024.6.23 열 번째

뭣이 중한디 하는 질문이 던져질 때 철학이라고 답할 때가 제일 많지만, 경제학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사회운동과 정치라고 강렬히 느꼈던 때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중한 건 보이지 않는 관계망인 것 같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놓친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보이지 않았던 관계망이 나를 숨 쉬게 하는 공기 같은 존재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스치운다. 어떤 온도와 습도, 그리고 풍경은 보이지 않았던 걸 보이게 하는 것 같다.


어제는 육 년째 이어지는 녹색 책모임 GPS가 있었고, 오늘은 오 년 차 이어지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재판 회고 모임이 있었다. 얼굴들 가운데 둘러싸여 스쳐온 시간 속 보이지 않았던 관계망을 생각했다.


생각하면 내 안에 흐르는 피가 처음부터 녹색이었던 건 아니다. (지금도 빨간 피가 흐르고는 있다.) 어찌 녹색으로 왔나 생각해보면 답은 단순하다. 그저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리고 또 만나며 이것저것 통하고, 그리고 만나며 추억을 기리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밖에.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과정, 이 보이지 않는 관계의 성좌에서 나타난 배치와 정동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주책이 심한 요즘, 나는 지나간 모든 순간과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따라서 아쉽기만 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순간을 쉬이 스쳐보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관계망을 정성을 다해 소중히 여기는 것 뿐이다. 숲 속의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하면서.


“가타리의 생태는 자연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회, 더 나아가 마음까지 생태의 원리가 적용된다. 따로 떨어진 100그루 나무보다 서로 연결되어 숲 생태계를 구성한 50그루의 나무가 더 외부 조건에 맞설 수 있다. 그리고 이 숲 생태계 속에서 벌레, 동물, 버섯 등의 생명들이 생성되며 창발될 수 있다. 마음도 사회도 자연도 생태를 이룬다는 생각은 어렵게 느껴지는 개념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생각해 보면 금방 그림의 구도를 그릴 수 있다. 생태계는 마치 네트워크처럼 직조되고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나 주위에서 끊임없이 특이한 것을 생산하는 창조적인 관계망이다. 나무와 태양, 바람과 물, 나비와 꽃, 동물과 인간과 같이 연결망은 보이지 않는다. 숲에 조용히 누워있으면 미세한 변화마저도 마음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은 조용하지만 보이지 않는 강렬한 흐름이 지나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숲은 생명을 창발한다.“ - 신승철, “아, 지금이야말로 녹색당이 필요한 때다!“, 프레시안, 2014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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