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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Oct 13. 2024

시간

생각하니 내가 쓰는 일기의 대부분은 시간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무상한지, 그리고 소중한지 등. 시간은 아마도 붙잡을 수 없고, 절대적인 듯 보이나 상대적이며, 선명하나 흐릿해진다. 그 속도의 상대성과 가치의 상대성에 대한 단상이 일기의 대부분을 채운다. 나는 그것들이 꽤나 두서없고 무의미하다고 여겼지만, 살펴보면 그것들은 가장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한평생 무언가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탐구하는 삶을 산다면, 그 대상은 시간(그리고 공간) 일 것 같다. 시간 그 자체를 파고들면 철학일 것이고, 시간의 원리를 파고들면 물리학이겠고, 시간의 사용가치 및 그 효과를 파고들면 사회과학이며, 시간의 앓음과 아름다움을 파고들면 문학 혹은 예술일 테니. 계속 생각하는 질문은 이렇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약 300배로 증가하는 반백년의 시간 속에서 왜 삼년상은 삼일상이 되었나? 이 질문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아, 여기서의 시간이 비단 근대적인 의미에서 절대적인 시간만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조선에서 경인선이 개통하고 나서야 사회 문화적으로 표준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자. 그 전에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시간이 “달랐다”는 의미다. 새벽, 아침, 오후, 밤 네 가지로 시간을 나누던 옛적에 비해, 점차 한 시간 단위로, 아니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고 있다. 온 사회가 계획적인 J를 우대하는 게 맞는걸까. 시간을 다루고 관리하는 기술은 점차 진화하는데, 시간을 느끼고 감각하는 마음은 점차 나약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지혜롭게 대하는 것은 시간의 상대성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시간의 상대성, 시간의 흐름은 왜 다르게 느껴질까 하는 질문에 스피노자는 ‘차이 나는 반복’을 말했다. 어린 시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철학자 신승철의 설명처럼, 수많은 차이들이 그리고 그들이 맺는 관계성이 시간 자체를 변주한다. 좀 더 가보면 허수경 시인의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생각이 난다. 시인은 시집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가본 수많은 발굴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수천 년의 시간이 스민 청동의 시간, 그리고 한 해 수확을 앞둔 감자, 여기서 감자는 청동보다 어려 보이지만 그 종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청동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 하나 더, 시인은 그 시집에 묶인 시들을 반-전쟁시라고 부르고 싶다 했다. 청동의 시간부처 감자의 시간까지 끊이질 않는 전쟁의 이유는 무엇일까. 근래 몇 차례의 전쟁을 보며 전쟁이란 것은 해묵은 상처가 시간이라는 약에도 낫지 않고 곪고 곪아서 나타나는건가 싶었다. 인간은 왜 반성을 모르고 전쟁을 거듭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시간을 자류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까. 이 죽임의 연쇄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한 티베트의 경구에서 복수심을 자비심으로 변용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살리는 마음으로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시간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난제들을 푸는 실마리 낱말은 사랑 그리고 관계임에 분명하다. 사랑, 되기, 변용, 합심, 공존 등 이 낱말들이 시간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낼 수 있을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오직 생명만이 중요할 뿐”. 이 문장은 (절대적) 시간에 (상대적/생명적) 시간이 앞선다는 말일 것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연속성을 앓음-앎-아름다움으로 바라볼 때, 뭔가 달라질지 모른다. 한 가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오늘 밤 시간에 대해 숙고해보자.      


김창완 – 시간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

그때 가서야 알게 될 거야 슬픈 일이지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게 얼마나 달콤한지

얼마나 달콤한지 그걸 알게 될 거야     

영원히 옳은 말이 없듯이

변하지 않는 사랑도 없다

그 사람이 떠난 것은

어떤 순간이 지나간 것 바람이

이 나무를 지나

저 언덕을 넘어간 것처럼

유치한 동화책은

일찍 던져버릴수록 좋아

그걸 덮고 나서야

세상의 문이 열리니까

아직 읽고 있다면 다 읽을 필요 없어

마지막 줄은 내가 읽어줄게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그게 다야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시간은 동화 속처럼 뒤엉켜 있단다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있기도 한단다

더 늦기 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모든 눈물이 다 기쁨이고

이별이 다 만남이지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돼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가는 거야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영원한 보석이라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그냥 날 기억해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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