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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Oct 28. 2024

무심코 지나친 아주 오래된 꿈

뮌스터 2024.10.2-3. 

아주 오래된 어떤 기억에 대해 쓰고 싶어지는 날이다. 도서관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지금이 언제인지 어디인지 헷갈린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고등학생 때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꾼 꿈이 너무 생생하고 생경해 현실이라고 부르는 시공간으로 돌아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 그리고 꿈은 여러 순간들을 우리가 익히 아는 시간의 흐름과는 다른 흐름의 원리를 가지고 탐방할 수 있게 해준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그 시간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마련된 공간과도 같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다시금 깨닫는다. 아마 오늘은 2024년 10월 28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영혼은 그 시간대에 있지만은 않다. 내가 여기 있는 게 확실한가. 어느 옛날 인디언들이 말을 달리 때 너무 빨리 갔다 싶으면 일부러 천천히 속도를 늦춰 영혼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그런 것처럼, 몸과 혼은 늘 함께하지마는 않는다. 그런 것 같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선형적인 시간들이 압박과 어떤 옥죄임을 선사하는 것을 생각할 때, 어느 비선형적인 시간의 복원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아주 천천히 여정기를 걸어나가고 있다. 아껴둔 밤을 야금야금 까먹듯이.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뮌스터로 떠나고 싶다. 여정의 막바지에 독일의 뮌스터에 짧은 이틀을 묵었다. 야심한 밤에 내린 뮌스터 역은 역시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연착된 기차 탓에 아주 늦은 밤에 내렸다. 아마 비도 쌀쌀 내렸을 것이다. 이 도시가 각별한 것은 순전히 한 시인의 언어들 덕분이다. 허수경 시인이 썼던 많은 말들, 글들을 읽으면서 뮌스터에 대해서 아련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시인은 동시대의 상실들에 아파하면서도, 고대의 것으로 여정을 떠났다. 동시대의, 근시안적인 여러 글들을 읽다가 지칠 때 즘 너무나도 멀리 보려고 가려고 했던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좋았다.     


이번에 들린 뮌스터에서는 내가 언젠가 꼭 일 년 전 들려서 기도를 올렸던 작은 성당에 우연히 들어갔다. 성당의 한 가운데에는 주황색 침대와 이불보가 놓여있었다. 그 공기에서 호흡하며 나는 누군가 죽었구나 싶었다. 이것은 필시 장례를 치르는 것이겠구나. 이것은 죽음의 냄새구나 싶어서. 이윽고 그곳은 한 전시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주황색 침대와 이불보는 난민캠프의 물건들이라고 한다. 해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떠나오다가 목숨을 잃고, 이들의 삶에는 계속 위협이 닥치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여정이 온통 그랬지만 정말 잘 살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는 숨은, 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은 나의 것만이 아니구나. 우리의 삶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구나 하고. 나의 시간과 탐방 모두가 나만을 위해 쓰여서는 아니되는 것이구나 하고. 가장 마음을 절절하게 하는 것에 온 몸을 내던질 수 있어야 한다. 너는 그럴 용기가 있는가? 뭔가가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여하튼 뮌스터에서 먹었던 맥주 한 잔, 칵테일 두 잔이 참 좋았다. 낡은 거리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둘러보았고, 그 물건들은 나무 시계와 안경, 목걸이, 돌로 만든 염주, 아기가방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다시 오자고 다짐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지만, 이 곳에 살고 싶은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이 오래된 도시가 나의 무언가와 공명하는데는 내가 아직 찾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힘에 - 우리가 잘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 무심코 지나친 아주 오래된 꿈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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