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넘나드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건 영화이기도 노래이기도 혹은 어떤 생각 한 조각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본 인터스텔라가 그렇게 좋았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공간을 사랑이 넘는다, 는 다소 낭만적인 이야기가 실제 현실의 중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가설이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와닿았다. 한편, 지금 앉아있는 카페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단골 식당에 만들어 권했다는 어떤 플레이리스트, 근 오 년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노래들과 함께했던 것 같다. 그 플레이리스트 중에 제대로 이름을 알고 있는 곡은 하나도 없지만, 얼마전에 칠리 곤잘레스라는 작곡가의 Gogol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아주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게 될 듯 하다. 그것으로 충분하고 말이다.
그래 결국 2024년이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신기하다. 그리고 어색하다. 그리고 아깝다. 조금은 졸립고. 조금은 그리우며. 조금은 혼란스럽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의 혼란이 다시 시작될 때마다 나는 익숙한 기쁨을 느낀다. 다시 태어나려는 과정은 나에게 삶의 동력원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밑바닥을 찍었으니 이제 다시 수면 위로 헤엄칠 때가 온걸까. 지금은 무엇을 위해 사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연히 집어든 정혜윤 작가가 쓴 소갯말을 한 자락 빌려서 방향을 가늠해본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지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