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이 블랙 미러를 만났을 때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 번도 유튜브 오리지널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이미 재밌는 영상이 차고 넘치는 유튜브에서 굳이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원래 방송 제작을 목표로 한 플랫폼이 아니다 보니 드라마의 퀄리티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튜브 뮤직이며, 광고 제거, 백그라운드 재생 기능을 이용하다 보면 딱히 유튜브 프리미엄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유튜브를 들어갈 때마다 '위어드 시티- 1화 짝'이라는, 구글 번역기를 돌린 듯한 제목이 끈질기게 나의 시선을 앗아갔고, 나중에는 썸네일의 딜런 오브라이언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입을 쫙 벌린 채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나는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한 지 1년 만에 대놓고 B급 느낌이 팍팍 나는 이 영상을 클릭하고 말았다.
B급 감성일 것 같다는 나의 예상대로, 시작부터 위어드 시티는 SF에서 가장 흔해 빠진 설정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의해 양극화된 세상. 워낙 디스토피아라는 소재를 좋아하는 탓에 흥미롭긴 했지만, 보나 마나 알리타나 엘리시움처럼 주인공이 양극화된 세상의 경계선을 허무는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시작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아 비로우 더 라인(Below the line)의 거주자도 돈을 많이 벌면 언제든지 어보브 더 라인(Above the line)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거주지 사이에 검역소 같은 게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위어드 시티는 2019년의 여느 자본주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충격에 휘청거리기도 잠시, 이야기는 빠르게, 그리고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운명의 짝'이라는 실험실로 경로를 튼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상대가 정해져 있는 어보브 더 라인 사람들과는 달리, 비로우 더 라인에서 태어난 스튜는 자신의 데이트 상대를 찾기 위해 '운명의 짝'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운명의 짝'은 말하자면 미래판 틴더인데, 몇 가지 질문에 대답만 하면 알고리즘이 운명의 상대를 자정까지 배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운명의 짝' 실험실은 광고 영상부터 실험 방식까지 키치한 느낌이 가득하다. 바보 같지만 사랑스러운 광고 모델, 이상한 질문을 쏟아내는 실험자, 긴장해서 질문에 똑바로 답을 하지 못하는 스튜까지.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있지만, 헛웃음에 가까운 미소가 피식 새어 나오는 걸 막을 길이 없다.
12시가 되자, 스튜의 집 앞에 척 봐도 스튜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 버트 처드가 나타난다. 둘 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스튜는 이 황당한 오류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인 내가 더 당황한 느낌이다. 양극화된 세상이지만, 지금보다 차별은 덜한 세상인 걸까? 어쩌면 위어드 시티는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디스토피아'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버트와 스튜는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 밥을 먹으러 가는데, 분위기가 묘하다. 둘 다 지각쟁이에, 같은 고향 출신이며, 똑같은 TV쇼를 좋아하고 심지어 똑같은 방식으로 계란을 구워 먹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이번 만남이 오류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어색한 끝인사를 나누며 안녕을 고한다.
다음 날, 환불을 위해 '운명의 짝' 실험실에서 다시 만난 버트와 스튜는 빠른 속도로 연인이 된다. 작은 반전에 시청자가 놀라워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은 양가 부모님께 서로를 소개한 후 결혼까지 성공한다.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나이 차나 재혼 가정의 문제를 다룰지언정 아무도 두 사람이 동성이라는 사실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듯 위어드 시티 1화는 인물의 성별을 바꿈으로써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면을 유쾌하게, 그리고 통쾌하게 비튼다. 뻔뻔하도록 자연스러운 전개에 시청자는 웃음과 함께 동성커플을 향한 차별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위어드 시티를 마냥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엄청나게 스포일러를 당한 독자에게 1화의 결말은 맡겨두고, 이제 위어드 시티 3화로 넘어가자.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1화와는 달리, 3화는 넷플릭스의 유명 드라마, 블랙 미러의 향기를 강하게 풍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이를 통해 현 사회를 풍자하는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블랙 미러를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는 인물들의 기괴하게 뒤틀린 사고가 파국적인 결말을 야기하고, 이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서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까지 닮았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매화 다른 배우와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위어드 시티는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옴니버스형 드라마고, 블랙 미러는 세계관조차 공유하지 않는 앤솔로지다.
위어드 시티와 블랙 미러가 주제와 형식면에서는 유사할지 몰라도,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위어드 시티 3화 '대학 진학'과 블랙 미러 시즌 3의 1화인 '추락' 모두 SNS를 향한 현대인의 집착을 풍자하고 있지만, 블랙 미러는 이를 굉장히 직접적인 방식으로 풍자하는 반면, 위어드 시티는 간접적이고-당연하게도- 이상한 방식으로 SNS의 폐해에 대해 논한다. 블랙 미러의 '추락'은 'SNS 점수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세상'이라는 설명만으로도 에피소드의 주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대학 진학'은 비로우 더 라인에 살던 장학생 레이나가 어보브 더 라인의 대학에 입학하게 된 내용으로, 초반 몇 분만 봐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레이나는 어보브 더 라인에 위치한 대학에 입학한 후 체스터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체스터는 레이나와 신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하고, 대신 섹스팅(Sex+chatting)을 하자고 제안한다. 체스터와의 섹스팅 이후 이상한 신체 증상이 지속되는 레이나. 병원을 방문한 레이나는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알고 보니 레이나는 자신도 모르는 새 신체 접촉 없이 섹스팅만으로 임신이 가능한 세상을 꿈꾸는 네자리 박사(여담이지만 1화의 '운명의 짝' 알고리즘을 만든 박사와 동일 인물이다)의 실험에 참여하게 된 것.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레이나는 재빨리 섹스팅 이모티콘을 체스터에게 보낸 후 체스터를 차단하고, 결국 체스터가 섹스팅으로 생긴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굉장히 간접적인 방식으로 SNS에 미쳐있는 현대인들을 불쾌하고, 역시나 이상한 방식으로 꼬집는다. 줄거리만 들으면 출처를 알 수 없는 B급 인터넷 소설 같은데, 막상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하루 종일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내 채팅창이 생각나 한 편으로는 우습고, 한 편으로는 불쾌하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 체스터와 레이나의 대비적인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에 행복한 미소와 당당한 걸음으로 캠퍼스를 걷는 레이나와는 달리 체스터는 징그럽기 짝이 없는 이모티콘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 미혼모(부)가 견뎌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성별을 반전시킴으로써 더 선명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1화와 3화를 살펴봤으니, 이제는 5화를 살펴볼 차례다. 5화는 어보브 더 라인에 사는 초나단, 물리아, 바슬리, 파페니가 비로우 더 라인 사람들에 대해 너무 무지한 나머지 후원을 명목으로 비로우 더 라인에 사는 아이를 납치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드세요!'라던 마리 앙트와네트의 말처럼, 비로우 더 라인에 대한 이들의 편견과 무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이 납치한 아이, 올리버는 편부모인 아버지 밑에서 행복한 게 생활하지만, 그들에겐 이 모든 것이 셰익스피어 비극의 한 장면처럼 보일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어보브 더 라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재벌가 자제들은 서민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까? 아마 거의 알지 못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 아프리카의 빈곤 포르노에 너무 노출된 나머지 아프리카 아이들은 모두 불쌍하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규정해본 적은 없는가?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영유아의 수는 아프리카보다 아시아에 훨씬 많지만, 한국 사람에게 아프리카란 죽음과 가난의 땅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에티오피아의 식수가 생각보다 깨끗하자, 후원 영상을 찍기 위해 아이들에게 일부러 오염된 물을 마시게 한 사례도 있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겠다는 생각 자체는 나쁠 것이 없지만, 그것이 편견으로 인한 동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5화에서는 제3세계를 향한 편견뿐 아니라 더 중요한 문제를 역설한다. 자본의 차이가 꼭 행복의 차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어보브 더 라인 4인방은 고급스러운 저택에서 매일 호화스러운 식사를 즐기지만, 아버지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올리버보다 불행한 삶을 산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피상적이고, 그들의 삶은 위선적이며, 가장 중요하게도, 그들의 삶은 불행하다.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달리 말하면, 행복이란 전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위어드 시티 5화 '초나단, 물리아, 바슬리, 페파니'는 어보브 더 라인 4인방의 비로우 더 라인 탐방기를 통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어쩌다 보니 홀수 회차만 리뷰하긴 했지만, 짝수 회차들도 홀수 회차 못지않게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니 옴니버스 드라마라고 재밌어 보이는 회차만 골라서 보지는 말길 바란다. 1화부터 이어지는 소소한 복선들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위어드 시티만의 통통 튀는 매력을 한 층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6화는 맥거핀이 복선이 되는 화로, 1화부터 차근차근 위어드 시티를 봐온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래도 위어드 시티에는 관심 없다고? 상관없다. 어쩌면 인생이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 말이다.
원문 출처: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4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