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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Jun 13. 2017

탄탄한 일상이 만든 도시, 포틀랜드

그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유독 달랐다.

밤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아른아른 거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자마자 떠오르는 꿈이 있다. 관심사나 분야는 늘 변했지만,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윤곽이 분명해진다. 구성원 모두가 자기 주관대로 일할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싶다. 애초에 안 되는 목표를 세워놓고 아랫사람을 달달 볶고 괴롭힌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지속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을 테니 직접 한 번 해봐야 알 것 같다. 해 지기 전, 날 밝을 때 퇴근해 가족들, 이웃들과 한 상 차려 놓고 어울리며 그럭저럭 사는 삶은 진정 불가능한 걸까?


포틀랜드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너'가 식탁 앞에 모여 앉다 보면 어느새 '가족'(Kinfolk)이 된다고 말하는 잡지 <Kinfolk>의 도시, 포틀랜드가 궁금했다. 짧게나마 브랜드 전문 잡지에서 일하며 하나 배운 게 있다.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브랜드더라도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브랜드는 차츰 구려지다가 결국엔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진다. 물론 그렇다 해도 브랜드의 오너는 여차저차 해서 계속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욱 포틀랜드의 작은 브랜드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싶었다. 그들의 작은 직장이 어떤지 한 번 흘깃이라도 보면 잠깐의 유행인지, 오래도록 남을 브랜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고 낡은 미 북서부 도시, 포틀랜드

포틀랜드 시가지는 생각보다 작았다. 일 년 중 반 이상 비가 내릴 정도로 우중충한 곳답게 해가 떠도 LA의 창창한 햇빛에는 못 미쳤다. 집값이 싸서 왜 그런가 했더니 신시가지인 '펄디스트릭트', 중심지인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동네마다 오래된 농장 스타일의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교환학생 때 반년 동안 살았던 집의 삐걱거리던 마루 바닥, 구식의 부엌이 떠올라서 유난히 투박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초록색 이파리들이 집집마다 있어서 시원했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돼서 그런지 을씨년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집값이 LA만큼 비쌌던 신시가지, Peart District
Downtown 중심에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Powells Books-  규모가 도서관만했다.
미국서 가장 큰 독립서점인만큼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아쉬운 마음에 한 컷!
여느 동네의 골목길. 집마다 나무 울타리가 쳐져있고 초록 나무가 무성하다.


가게마다 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쫓기는 사람은 없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도시, 포틀랜드의 진가는 골목에 옹기종기 늘어서있는 가게들에서 비로소 드러났다. 가게 문을 한 번씩 열고 들어갈 때마다 자꾸 반하게 됐다.  

아침의 아이스크림 가게(Salt&Straw)에선 와플콘 굽기가 한창이었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의 자전거가게. Industiral District에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The finest name in tea, Smith Tea Maker HQ의 저녁 다섯시 반-

그저 그래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도 어디나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뭔가에 몰두해 있거나 아니면 손님과 자신이 파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간 보아온 표정이 없는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라서 새로웠다. 대기줄이 긴데도 누구 하나 서로 재촉하지 않는 여유가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이것저것 물어봐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촘촘한 일상, 탄탄한 브랜드

포틀랜드에서는 큰 브랜드 소위 말해 글로벌 브랜드를 찾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공항에도 맥도널드 대신 PDX Burger가 있었다. 이틀 내내 다니는 동안 맥도널드는 한 번, 스타벅스는 두 번 봤다. 어딜 가나 스타벅스가 한 블록마다 두세 개씩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 덕분에 동네 사람들이 하는 동네 카페나 빈티지 숍들이 성황을 이룰 수 있던 것 아닐까? 큰 브랜드가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상권을 교란시키는 거대 자본이 없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덜 한 듯 보였다. 가겟세가 안정적이고, 물가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미국 대개의 도시에서는 제품 가격에 얹어 세금까지 더 내야 하는데 포틀랜드에선 소비세가 0%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벽에는 State Of Oregon기를, 천장에는 천막을 훌훌 두른 게 포틀랜드다웠던 곳, Pip's Original Doughnut  
주문과 동시에 튀겨서 주기에 제법 오래 걸린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중충한 날씨를 사는 심심한 사람들이 아침이며 저녁마다 동네 가게들에 들르던 것이 포틀랜드에서 나온 여러 브랜드들의 기반이 된 것 아닐까? 동네 단골들이 로컬 브랜드들의 탄탄한 소비층이 되고, 로컬 브랜드들은 서로 협업하며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포틀랜드뿐 아니라 미국 서부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Salt&Straw의 경우, 포틀랜드산 seasalt 등 다양한 로컬 브랜드의 재료를 사용하고 적극 홍보한다.얼마 전에는 포틀랜드 및 LA에 있는 아이스크림 샵 가까이에 있는 초등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기상천외한 아이스크림 맛을 만들어 제품화, 수익을 해당 학교에 기부한 바 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Salt&Straw의 'Elementary School Inventor Series' (출처: Salt&Straw Official Blog)

억지로 말을 짜낸 브랜드 가치 대신 작은 것에서부터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게 탄탄한 브랜드의 기본 아닐까? 포틀랜드에서는 동네마다 소소한 브랜드들이 동네 주민의 든든한 이웃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포틀랜드의 골목은 어딜 가도 비슷한 미국 대도시들의 거리와는 달리 저마다 자기만의 무늬를 띤다.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Kinfolk 같은 매거진으로 컨텐츠가 되고, 여러 골목 브랜드들은 포틀랜드 밖으로 퍼져 나가 그곳에서 새로운 거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브덕후 박코리, '보는 사람' 말고 '하는 사람'!

 Coava Coffee, Industrial District

수년째 남의 브랜드, 공간을 보고 감탄하고 동경하며 지내다 드디어 내 브랜드를 빚는 중이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실행이 느린 편이다. 생각이 많기도 하고 자원도 제약이 있다 보니 더 그렇다. 1년 걸려서 겨우 브랜드 이름을 정했고 상품 구성은 막 시작했다. 달팽이만큼 느리지만, 혼자서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이름을 짓고선 얼마나 신났는지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길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  



이 곳 LA에서 나는 홀딱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내 브랜드도 언젠간 누군가에게 즐거운 직장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피곤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질문을 쏟아내며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야지! 자유롭게!





*포틀랜드여행 Tips!

포틀랜드 시내는 생각보다 작아서 재밌는 상점들이 모여있는 스트리트들끼리 서로 가까운 편이다. 고작해야 이틀 동안 쓰윽- 훑은 수준이라 포틀랜드 구석구석을 잘 알지는 못 하지만, 일정이 빡빡한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팁들을 덧붙인다.


1. 자전거의 성지 포틀랜드, 하루쯤은 자전거로 빙 둘러보기

우리는 Industrial District에 있는 바이크 샵에서 예약 없이 자전거를 빌렸다. Brompton, Linus 같은 시티바이크부터 로드바이크까지 다양한 바이크 종류가 구비되어 있다. 대개 하루 빌리는 데 30불이면 된다. 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만큼 도시 전체가 자전거 타기에 편리하다. 원하면 자물쇠와 헬멧도 무료로 대여해준다. 자전거를 타다가 가게나 카페에 들어가고 싶으면 어느 가게 앞에나 있는 자전거 주차대에 묶어두고 들어가면 된다.


2. 튀기거나, 설탕 범벅이거나! 전형적인 미국 음식이 대세! 고추장이 엄청 당길 수 있다.

Thai, Korean, Chinese, Italian 등등 다양한 쿠진이 공존하는 LA에 있다가 Portland에 가니 당황스러웠다. 가는 곳마다 치킨, 와플, 비스킷, 도넛 등등 전형적인 미국식 식사가 주메뉴라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마침 Memorial Weekend 때여서 시내의 모든 초밥집, Poke Bowl 집이 문을 닫은지라 선택의 폭이 더 좁았다. 느끼한 와중에도 맛있었던 눈이 휘둥그레 해졌던 포틀랜드 맛집들을 소개한다.

브런치는 Tasty n Sons에서! 사진엔 안 나왔지만 그린샐러드, 비스킷을 먹고선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로컬 비어 셀렉션도 굿!
LA 친구들이 다들 알아보던 Pine State Biscuits. 미국 사람 입맛인 남편에게는 완벽했다고 한다.
Pine State Biscuits 바로 옆에 있던 Juice Bar. 압착쥬스인만큼 생한약 맛이 나지만, 느끼함만큼은 싹! 걷어준다.
미국 이모가 차려준 것 같은 미국식 저녁을 먹고 싶다면, Screen Door로!


3. 일정이 된다면, 간식을 싸들고 하이킹이나 캠핑을!

일정이 빡빡해서 근교 나들이는 가지 못 한다해도 속상해 할 필요 없다. 도심을 걷다 보면 푸르른 공원이 어디에나 있다!

휴대용 텐트나 매트를 하나 챙겨서 근교로 하이킹 가는 걸 추천한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Salt&Straw는 아침을 먹고 나서 피크닉 가기 전에 들리는 게 낫다. 미국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야식 거리로 생각하는지 밤이면 건물을 빙 둘러설 만큼 줄이 길다. 간식으로 먹을거리들이 넘쳐나니 스낵 한 봉지 사들고 하이킹을 가면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다. Pip's Original Doughnut 말고도 Blue Star 등등 꼭 한 번 먹어봐야 한다는 도넛 집이 즐비하다. 도넛도 좋고, Alberta St에 있는 프렌치 베이커리 La Provence의 햄치즈 크로와상도 좋으니 뭐라도 사들고 경치 좋은 곳에 나들이를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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